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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의 국제여권과 한국외교정책의 과제


                           주 준희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교수)


1.서론
   국제관계론에 여성이 중요한 주체이자 연구대상으로 부각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로서, 이는 여성의 교육과 사회참여확대및 출산자녀수의감소와 여가의 확대를 수반한 근대화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남성 헤게모니의 쇠퇴와 여성파워의 등장은  탈근대 지구화 과정의 일부라는 견해도 있을 정도로  (하영선 1994, 17) 여성문제는 특히 유엔등 국제기구에 있어서 주변성 (marginality)을 벗어나 그 중요성을 더해 가고 있다.
   여성정치학이 학문의 한분야로서 자리잡아가면서,(주준희, 1995ab) 90년대에 들어서서 여성국제정치이론이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여성의 시각을 국제정치에 반영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있어왔다.  유엔의 국제여권에 관한 연구도 이러한 맥락에서 논의되고 있으며 향후 국제기구의 연구에 있어서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영역이 되리라 예상된다.
   1995년 9월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 4차 세계여성회의에서는 여성문제의 주류화 (mainstreaming) 전략을 채택하여 향후 모든 국제회의와 기구에서 여성문제가 주변적인 과제가 아닌 중요과제로 다루어 지도록 촉구한바 있다.
   유엔은 1946년 경제사회이사회(ECOSOC) 산하에 여성지위위원회 (Commission on the Status of Women)를 설치한 이후 인권의 한 분야로서 여성의 권리 (international human rights of women)를 도모하고 향상하는데 이바지 해 왔다. 1975년을 세계여성의 해(International Year of Women) 선포하였고, 1976-85년을 세계 여성의 십년(United Nations Decade for Women)으로 정하였으며 1975년 멕시코에서 제 1차 세계여성의 해를 개최한 이후 80년 코펜하겐, 85년 나이로비, 95년 북경에서 4차에 걸친 세계여성회의를 통해 국제여권의 개념을 정립해 왔던 것이다.
   전세계 200여개의 다양한 국가들, 종교와 문화와 인종과 언어가 다양한 국가들은 여성의 지위도 다양하고 여성의 권리에 대한 개념도 인권에 관련된 논쟁만큼이나 다양하다.  그가운데 공통분모를 창출하고 "보편적인 여권개념"을 도출하여 국제법의 지위를 갖는 국제여권의 보편규범을 모색하는 것은 쉬운 과제가 아니다.
    한국은 95년 10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비상임이사국으로 선출됨에 따라, 유엔의 다양한 활동 분야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기여를 해야할 입장에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유엔을 통한 국제여권의 발전 분야이다.
한국여성은 "보편가치"로서의 국제여권의 정립과 보호와 함양에 있어서 더이상 방관자나 수동적인 수익자로서가 아니라 문제해결에 방향성을 제시하고 새로운 시각과 철학과 방법론으로 기여함으로써 적극적인 리더쉽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본고에서는 지난 50년간 유엔에서의 국제여권의 발전과정을 간략히 고찰하고 한국 외교정책의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여기서 국제여권이란 국제사회가 공통의 규범으로 정의하고 그 보호와 신장을 위해 구체적 조치를 취해 온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제분야의 여성의 권리를 말한다.  즉 국제사회의 구성원들이 보호하고 함양하기로 동의한 여성의 권리를 말한다.

II. 유엔과 국제여권: 배경
1.유엔의 국제인권에 대한 관심
   전통적으로 서구 국제법상 인권은 국내법의 관할권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이에 대한 타국 또는 국제사회의 간섭은 부당한 내정간섭내지는 월권행위로 여겨졌다 (Sohn and Buergenthal 1973,842-48)  그러나 수천만의 인명을 앗아간 양차대전의 충격이후, 인권을 유린하는 정부가 호전적인 경향이 있다는 역사적 경험 속에서 국제인권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가 시작되었다.  히틀러의 유태인학살과 그의 침략적 대외정책 사이에 밀접한 관계를 발견한 연합국은 전후의 세계평화의 기초는 인권존중의 문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고 이를 유엔 헌장의 기본원칙으로 삼았던 것이다.  국제연합 헌장은 "우리 유엔의 사람들은 인간의 기본권과 개인의 존엄성과 가치, 남녀의 평등권과 대소국의 평등권등에 관한 근본적인 믿음을 재확인한다"는 문구로 시작한다.  즉 인권은 2차대전이후에 보편화되고, 국제화되는 과정을 겪는다. (Henkin 1977)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의 권리는 인권의 한 부분으로서 유엔에 의해 보호 신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2.국제인권의 특성
   국제인권의 정립에 있어서 다양한 문화 간의 상이한 개념사이에 공통분모를 도출하는데 상당한 진통이 있었음은 많이 연구되어 왔다(Nanda 1981; Pollis and Schwab 1979) 서구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있어서 국가는 인권에 대한 잠재적 위협이며, 인권개념에 있어서 개인의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권,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등이 중시된다.  한편 제 3세계는 인권을 집단적으로 정의하며 서구의 제국주의 , 신식민주의,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제 3세계 국가의 발전의 권리로서 정의하는 경향이 있다.  개인의 언론의 자유라는 것은 혼란과 불안정을 가져올 수 있으며 집단의 발전을 위해 유보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경제적 권리, 인간의 노동의 권리를 중시하고 서구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빈부격차와 실업등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이미 인권유린적임을 증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상황은 국제여권(international human rights of women)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서구문명권에서 시작된 여성의 권리라는 개념은 유엔을 통해 전세계에 확산되면서 비서구문명과 갈등을 겪게 되고, 국제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지는 보편적 개념이 정립되는 반면 아직도 상이한 문명권 사이에 합의에 도달할 수 없는 갈등요인이 해결되지 못한 체 남아 있다.
   또한 유엔에서의 국제인권의  논의에는 명백한  제한점이 있다 그것은  국가 자체가 인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많으며, 인권문제에 있어서도 국가주권과 내정불간섭을 주장하기때문에 인권규범의 실질적인 적용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국제인권의 기준을 개별국가에 강제하기는 어려우며 설득과 여론의 압력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Bennett 1991,351-380).
    이것은 국제여권에도 적용된다.  유엔에서 논의되는 국제여권이 어느 정도로 법적 효력과 구속력을 갖는가하는 것은 논란의 대상이 된다.  국제법의 원천은 국가간의 조약과 협정, 관습, 국제기구의 결의, 저명한 법학자의 견해등 다양하며, 국내법과는 달리 강제력을 가지고 법을 실행할 수 있는 권위가 부재하기 때문에 그 법적 성격에 관해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혹자는 유엔의 국제여권이 단순히 "국제사회의 선의(善意)의 표현"에 지나지 않으며 여성의 실질적 권익향상에 이바지한 점이 명확치 않다고 본다.
(Reanda 1981,21). 사실 유엔 성차별철폐협정을 위반하는 국가가 있다고 해도 유엔이 실질적인 법적 제재를 가하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다.  민족국가의 주권 원칙이 아직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의 권익에 관한 국제적 수준을 확립하는 일 자체가 비록 강제력은 없지만 장기적으로 세계여론에 영향을 미치며 국내적 차원에서의 여성운동을 정당화하고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  강제력이 없다고 해도 국제법은 법이며 대부분의 정부는 국제도덕과 여론의 평판과 명성을 고려해서라도 법을 준수하려 하고 노골적으로 위법행동을 정당화하는 국가는 드물다.  국제여권이 실효성있는 국제법의 보편규범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각국의 성실한 대화와 의견교환, 준수의지가 필요하며, 특히 선진국의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3.국제연합의 인권에 관한 일반문서와 국제여권
   국제연합 헌장은 남녀평등의 원칙을 보편규범으로 천명한 최초의 국제조약이다.  그 서문에서 유엔은 남녀의 평등권에 관한 근본적인 믿음을 재확인하였고, 다시 제 1조항에서 "인종, 성별, 언어, 종교에 의한 차별없이 모든 사람의 인권과 자유에 대한 존중"을 명시하고 있다.  제 8 조항은 유엔인사채용과정에 남녀평등원칙을 구현할 것을 명시하였고, 제 55.56 조항에서 각 회원국은 남녀평등의 목적과 원칙을 구현하기 위해 유엔과 긴밀히 협력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유엔헌장의 남녀평등원칙의 국제법적 지위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유엔헌장이 법적 구속력을 갖는 특별조약으로서 당연히 국제법의 지위를 갖는다는 것을 명백히 한바 있다.(Ireland 1978, 88). 남녀평등은 또한 유엔의 인권관계 일반문서, 즉 {만국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1948), {민법상의 권리와 정치적 권r리에 관한 국제규약} (1966)(The 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Internatinal Covenant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1966)등에서 재확인되었으며 이들은 국제권리장전(International Covenants on Human Rights)로 종합되어 1976년 효력을 발생하였다.  만유인권선언은 차별의 금지와 소수민족의 보호에 관한 조항이 포함되었다.
   인권에 관한 이들 일반문서는 인권의 다양한 측면을 다루는 특수문서들에 의해 보충되었다.  즉 학살범죄의 예방과 처벌에 관한 협정 (1951),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정 (1954), 인종차별철폐협정 (1969), 고문과 기타 잔인하고 비인간적이며 굴욕적인 처벌에 반대하는 협정 (1987),성차별철폐협정 (1979)등이다.
    1968년 테헤란 회의 이후 처음 열린 세계 인권회의에서 채택된 비엔나 인권선언(외무부 1993)은 기대 이상으로 인권개념에 있어서 각 문화간의 차이가 상당히 좁혀졌으며 이제는 인간의 권리와 자유의 보편규범성이 의문의 여지 없이 받아들여지는  보편가치요 규범임을 보여준다.  남북 간에 발전에의 권리(rights to development)를 둘러싼 교착상태가 예상되었으나 의외로 쉽게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결과 인권고등판무관 (High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이 설치된 것도 큰 성과이며, 인권이 유엔의 우선순위로서의 위치를 회복했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비엔나 인권선언은 여성의 권리에 대해 강화된 입장을 취하고 있고, 여성과 여아의 인권이 불가양도적이며 불가분한 권리임을 인정하고 있다.  또한 인간의 권리와 자유의 보편규범성이 의문의 여지 없음을 강조한다.
   특히 여성에 대한 폭력의 철폐, 성희롱문제, 인신매매와 착취, 사법과정에서 성차별철폐가 강조되었고, 주목할 만한 것은 "전통적 관습, 문화적 편견, 종교적 극단주의"의 부정적 영향과 여성의 권리사이의 갈등을 해소할 필요성이 강조되었다는 점이다.
   비엔나 인권선언이 채택된 1993년의 시점은 냉전이 종식되고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감소되면서 탈냉전기 신국제질서 속에서 오히려 인종문화적인 갈등이 강화된 시점이다.  1993년 7월에 헌팅턴은 미래의 인류의 갈등은 종교를 중심으로 한 문명의 충돌이 되리라는 문명충돌론을 주장한바 있다(Huntington 1993).  그와 함께 인권논의에 종교가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티베트와 6.4 천안문 사태등에서 서구의 인권논의에 대해 중국이 "인권제국주의"를 비난하는 것으로 맞서고 있는 것처럼, 아직도 인권에 대한 각 문화권의 상이한 시각은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으며,  "문명 충돌"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동 선언은 또한 여성에 대한 폭력에 관한 선언안을 마련할 것과, 2000년까지 모든 국가가 1979년 성차별철폐협정에 조인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들 국제연합의 인권에 관한 일반문서는 여권의 국제 수준을 정하고 남녀평등의 원칙을 보편규범으로 함양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유엔의 주요관련기관들은 여권을 부차적인 것으로 경시해온 경향이 있으며 실질적인 여권의 보호에 있어 이들 문서의 효율성은 극히 제한된 것이었다 (Reanda 1981,18). 유엔에 있어서 여권문제는 인권위원회와는 별도로 1946년 설립된 여성지위위원회 (Commission on the Status of Women)가 전담해 왔다.

4.여성발전관련 유엔기구협력체제
   국제여권의 발전에 주체적 역할을 담당한  유엔 여성지위위원회는 1946년 경제사회이사회 (ECOSOC) 산하의 기능위원회로 설립되었다.  그 주요 기능은 정치적, 민법적 권리뿐 아니라 경제.사회.문화 제 분야의 여권을 보호 신장하기 위한 추천서와 보고서를 작성하며 '남녀평등 원칙에 비추어 긴급조치를 요하는 사항을 경제사회이사회에 건의하고 건의안의 실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행정지원을 담당하는 유엔 사무국의 여성담당부서는 사회개발 인보센타 소속 여성지위향상국이다.  지역차원에서는 경제사회이사회 산하 5개 지역위원회에서 여성사업을 담당한다.  아태지역의 여성사업은 ESCAP의 사회개발국 내에 속해 있는 여성개발부가 주도하고 있다.  그외에 유엔의 전문기구인 UNESCO, ILO, UNFPA, UNDP, FAO, WHO등도 각기 전문분야에서 여성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아태지역에서는 APDC(Asian & Pacific Development Center)가 아태지역의 경제사회발전에 여성을 통합하기 우한 방안을 모색하는데 주력하고, APSDEP(Asian & Pacific Skill Development Programme)은 직업및 기술개발을 지원하며, APEID (Asian & Programme of Educatinal Innovation for Development)는 교육에 주력하고 있다.  WINAP (Women's Information Network for Asia & the Pacific)은 여성발전과 관련되 자료를 수집분석배포한다.
   국제여권은 주로 여성지위위원회를 중심으로 여성의 권리에 관한 협정, 조약, 또 70년대에 들어서 유엔의 주요한 정책결정 유형으로 등장한 국제회의를 통해 정의되고 발전되어 왔다.

III. 국제여권의 변천
   국제여권은 국제환경의 변화에 따라 그 개념의 변천을 겪어 왔는데 그 과정을 편의상 네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초기 단계 (1946-1970)는 유엔여성지위위원회가 설립된 후 1970년의 "여성과 발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기 까지의 기간으로서, 서구중심적 여권개념의 성문화가 이루어지는 단계이다.  미국이 주도권을 행사하던 이시기에 서구에서 발전된 여권개념이 국제법의 규범으로 성문화된다.  두번째로  여성과 발전 단계로서, 발전을 중심으로한 비서구여권개념의 등장하여  갈등가운데 공통규범을 모색하는 단계 (1970-1995)이다. 3차에 걸친 세계회의가 개최되며 1985년 나이로비 미래지향전략(Nairobi Forward Looking Strategieis)이 채택되어 10년간 (1985-95) 전략이 실천되었다.  제 3세계의 등장과 함께 수적다수인 비서구국가들이 기존의 서구중심적 개념에 비판을 가하고 대안적 여권개념을 제시하며, 상이한 여권개념의 갈등이 노정되는 가운데  공통분모가 모색되는 시기이다.  유엔에서의 동서냉전과 남북의 경제적 갈등이 진정한 여권개념의 모색에 장애가 되었다.  세번째로  1995년 베이징 회의 이후의 기간 (1995-)으로서, 젠더와 문명충돌의 단계이다. 여성의 성적 권리를 둘러싼 통합된 EU의 진보적 여성관이 캐톨릭-이슬람-기독교등 종교권과 충돌하면서 새로운 갈등가운데 공통규범이 모색되었다.

1.초기: 서구중심적 여권개념의 成文化(1946-1970)
   초기 유엔여성지위위원회의 활동은 정치, 경제, 문화, 민법, 교육,과학등 제분야에 걸쳐 여성의 권리를 성문화하는 작업에 집중되었으며 많은 국제협정, 연구보고서, 추천서가 창출되었다.
   1952년에는 {여성의 정치적 권리에 관한 협정}(Convention on the Political Rights of Women)이 채택되어 54년 발효되었다.  58년 효력을 발생한 {기혼녀의 국적에 관한 협정}(Convention on the Nationality of Married Women: Historical Background and Commentary)은 기혼녀의 국적 선택권을 명시하였다.  64년에는 {결혼동의, 최소연령, 결혼신고에 관한 협정}(Convention on Consent to Marriage, Minimum Age, and Marriage Regisitration)이 발효되었다.  경제적 권리의 분야에서는 국제노동기구 (ILO) 에 의해 {남녀동등임금에 관한 협정과 권고문}이 1951년 채택되었고, 교육,과학, 문화 분야의 여성의 권리에 대해서는 유네스코 (UNESCO)와의 긴밀한 협력 하에 다수의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이렇게 단편적으로 성문화된 국제여권의 개념이 단일체계하에 종합 수렴된 것이 1967년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여성에 대한 성차별 철폐에 관한 선언}(Declaration on the Elimination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이다.   이 선언은 정치적 권리, 국적 선택권, 민법상의 권리, 형법상의 성차별조항, 여성의 인신매매, 교육권, 경제권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때 가장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은 결혼, 재산, 가족에 있어서 여성의 법적 평등권을 명시한 제 6조항이었다.  후술하는 바와 같이 시간이 흐르면서 민법상의 평등은 전세계적으로 보편화되었으나 새로운 쟁점들이 부상하게 된다.
   성차별철폐선언은 종래의 분산된 국제여권의 개념을 체계적으로 종합수렴하였다.  그러나 그 한계는 법적 구속력을 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국제여권이 정의되어 있으나 이러한 권리가 침해되는 경우 유엔이 이를 시정하기 위해 구체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인권위원회는 1967년 경제사회이사회로부터 인권침해사례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여 깊이있는 연구를 하도록 권한을 부여받는등 보다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비해 1981년 효력을 발생한 성차별철폐협정 (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은 별도로 성차별철폐위원회를 설립하여 회원국으로부터 보고서를 접수하도록 규정하고 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였다.
   이러한 초기의 국제여권은 서구중심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  개인주의적 전통을 따라 여성의 권리에 있어서도 남성과의 자유경쟁에 있어서 여성의 평등에 중점을 둔다.  남녀불평등의 원인은 성차별주의 (sexism)에 있다고 보았고 사회화를 통해 이를 시정할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개인 여성의 교육, 취업과 승진, 결혼과 이혼, 가사분담, 자녀양육에 있어서의 평등권에 압도적 관심을 부인다.  그리고 이러한 여권인식이 서구문화에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 객관성을 가진다고 생각되었다. 한편 비서구지역 여성의 문제와 권익에 대해서는 관심과 지식이 결여되어 있었다.

2.여성과 발전: 비서구여권개념의 등장과 갈등 (1970-1995)
(1)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한 국제협력방안과 발전
 1970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한 국제협력방안"(A Programme of Concerted Action for the Advancement of Women)은 국제여권개념의 발전에 획기적 전환점을 기록한다.    이것은 한마디로 유엔에 있어서 국제여권을 발전개념에 연계시켜 정의코자 하는 제3세계 여권론의 등장을 의미했다.
   그 배경을 살펴보면 1960년대는 신생국독립의 해라고 불리울 정도로 많은 신생국이 독립한 해이며, 유엔에 새로운 회원국이 확충된 시기이다.  이들 소위 제 3세계로 지칭되는 국가군은 기존의 미국과 서구중심의 유엔질서에 새로운 시각의 도전을 제기하게 되며, 1961년에서 70년까지의 "발전을 위한 10년"(United Nations Decade for Development)에 뒤이은 1970년에서 80년까지의 "제 2차 유엔 발전의 십년"은 바로 그러한 갈등 속에서 새로운 국제질서 창출을 위한 모색의 시간이었다.  이기간에 유엔은 반미(反美)적이고 반서구적인 시각에 의해 지배되게 된다.
   1955년의 반둥회의에서 비동맹중립주의를 표방하는 정치적 집단으로 등장한 제3세계는 무역발전회의 (UNCTAD), 산업발전기구 (UNIDO), 발전계획 (UNDP)등의 기구에서 소위 77 그룹과 같은 압력단체로 제도화되었으며 1974년의 유엔 제 6차 특별총회를 계기로 세계적 부의 재분배를 요구하는 신경제질서 (New International Economic Order)를 제창해왔다.  이로서 제 3세계의 발전주의는 종래 유엔의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던 기능주의를 대치하기 시작했다(Cox and Jacobson, 1974, 403-422).
   이처럼 유엔에 지배적으로 등장한 제3세계 발전의 관심사는 국제여권의 내용에 변화를 가져오기에, 발전과 여성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핵심적이다.

(2)멕시코 세계여성회의(1975)
   유엔은 1975년을 세계여성의 해로 선포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한 세계여성회의를 멕시코시에서 개최하였다.
   그 국제적 환경을 보면 미국의 재정적자로 71년 닉슨대통령이 브레튼우즈 체제의 종식을 선언한 이후 미소간에는 72년의 SALT등 데땅뜨의 분위기 속에서 미일과 중국의 관계가 개선되고 중동전쟁과 석유위기 이후 OPEC 회원국이 제 3세계 운동에 새로운 리더쉽을 제공하면서 신국제경제질서를 요구하기 시작한 때이다.  또한 73년 베트남에서 철군한 이후 미국은 신고립주의에 빠져들고, 이슬람과 사회주의진영사이에 연계가 발전되기 시작하며 서구국가들이 수세에 처하는 시기이다. 이러한 국제환경은 세계여성회의를 상당부분 정치화하는 영향을 가져온다.  그결과 멕시코 세계여성회의에서는 신국제경제질서와 인종주의문제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멕시코 세계여성회의의 주제는 평등, 발전, 평화인데, 이것은 제 1세계, 제 3세계, 제 2세계의 여권개념을 각각 반영하고 있다.  처음 여성비정부기구 지도자들이 여성지위위원회의 제 24차 정기총회에서 세계여성의 해 제정을 요청하였을때  여성지도자들은 서구여권개념의 핵심인 평등과 아울러 발전의 상관관계를 강조하여 수적 다수인 제 3세계의 지지를 획득하려 하였다.  평화의 개념은 총회에서 제안되어 통과되었으며 "민족해방과 정치적 경제적 독립"으로 정의되고 "식민주의와 신식민주의, 피시즘과 유사이데올로기, 외국에 의한 무력정복과 인종차별주의, 그외 모든 형태의 차별제거"를 요구하는 것으로 제기되었다.
   멕시코 세계여성회의에서 채택된 {세계여성의 해 목표실천행동안}(Plan of Action to Implement the Goals of the International Year of Women)은 다음과 같이 평등, 발전, 평화의 국제여권의 도식을 설명한다.

               1                 3
 +-------- +-----+----------+
 | +------>|평등 | <-----+ |
 | |  2 +-----+     1 | |
           v | |  v
 +---+--+      2 +-+--+--+
 | 발전 | -----------> | 평화 |
 +------+ <---------- +-------+
                       3
1.세계 평화와 발전은 여성의 최대 참여를 요한다.
2.1. 발전은 평등과 평화를 함양하기 위한 주요 수단이다.
2.2. 발전은 개인과 사회복지의 지속적 개선이며 이를 위해서는 신국제경제
     질서가 선행되어야 한다.  여성은 부당한 국제구조에 의해 남성보다
     더 생존을 위협받고 있으며 따라서 신국제경제질서는 남녀평등의
     선결조건이다.
3.1. 평화는 민족해방과 정치적.경제적 독립을 요구하며 식민주의와 신식
     민주의, 파시즘과 유사이뎅올로기, 외국에 의한 무력정복과 인종차
     별주의, 그외 모든 형태의 차별을 제거하고 개인의 존엄성을 신장할
     것을 필요로한다.
3.2. 평화는 평등과 발전의 필수요건이다.
3.3. 평화는 여성이 남성과 함께 신경제질서 수립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이루어질 수 없다(United Nations 1975,21-25).

멕시코  세계회의 선언문은  평등에 대해  인간으로서 남녀의 존엄및 가치의  평등과 남녀의 권리, 기회및 책임의 평등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한국여성개발원 1986, 16) 발전에 대해서는  "발전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인간이 보다질적으로 향상된 생활을 누리도록 하는데 있으며, 이것은 경제적 물질적 자원의 개발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육체적, 도덕적, 지적, 문화적 성장을 의미한다"고 정의한다. (한국여성개발원 1986, 18).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발전과 평화는 여권과 직결되지 않는 상당히 정치화된 이슈이다.  멕시코회의에서도 정부대표간 회의에서는 여성의 평등권보다는 발전과 평화에 대한 정치적 분쟁이 계속되었다.   소수의 입장에 처한 서구국가는 국제회의가 여성문제와 직접 상관없는 정치적 토론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유엔의 국제여권에 강한 회의를 표시했다.
   한편 제 3세계 여성들은 발전과 평화가 정치적 구호만은 아님을 주장했다.  그들에게 국가의 저발전은 여성이 겪는 고충의 근본요인이었다.  인간의 기본적 생존이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서구여성들이 주장하는 이혼에 있어서의 평등권같은 것은 사치스러운 개념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여권의 우선적 과제는 생존과 발전이며 이를 위해서는 제국주의가 종식되어야 하고 국가간의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Whitaker 1975 , 175).
   서구 여성들은 경제발전이 여성문제의 해결을 자동적으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며, 경제적 저발전보다는 성차별주의가 여성의 지위를 위협하는  핵심적 요인이라고 보았다.
   서구의 여권개념이 개인주의에 입각하여 남성에 대한 여성개인의 상대적 지위를 강조하는데 반해, 제 3세계 여성들은 집단주의적 관점에서 자신들이 속한 집단의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는 구조적 변화를 강조한다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1975년 멕시코 세계여성회의의 성과는 바로 이러한 다양한 견해차가 부각되고 의견 교환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 멕시코 회의 행동강령은 문맹, 직업훈련, 교육, 직업기회, 정치참여, 고용, 건강, 민법, 정치적 사회적 권리의 평등분야에서 1980년까지의 행동강령을 제시하였다.  이 회의는 국제기구내에 여성문제전담기구의 설치를 촉발하였는데, 멕시코 세계여성회의의 건의에 따라 국제여성연구훈련원 (INSTRAW)가 설립되어 연구및 정보를 위한 교환의 장으로 활동하게 되었고, 1976년 설립된 유엔여성 10년 기금은 84년 유엔여성발전기금 (UNIFEM)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79년에는 유엔차별철폐협약의 이행과정을 심의하기 위해 여성차별철폐위원회 (CEDAW)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멕시코회의의 결과가 제출되었던 제 7차 유엔 특별회의에서 여성의 발전에의 공헌이 간과된 것은 주목할만 하다.

(3)성차별철폐협정(1979)
   1979년 총회에서 채택되어 1981년 9월 20개국 이상의 비준을 받아 효력을 발행한 {여성에 대한 성차별 철폐에 관한 협정}(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은 이와 같이 다양한 여권개념을 광범위하게 종합한 국제문서이다.
   그 전문은 멕시코대회에서와 같이 평등, 발전, 평화 개념의 상호연관성을 강조하고 있고 본문은 정치적 권리, 경제사회적 권리, 민법과 가족법상의 권리를 정의하고 있으며 강제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제 1장에서 인종차별협정 (Racial Discrimination Convention 1965)의 차별에 대한 정의를 받아들이고 있는데 즉 차별이란 " 여성이 혼인유무와 관계없이 남녀평등권에 입각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기타 공적분야에서 인권과 근본적 자유를 인정하고 누리고 행사할 수 있는권리를 저해하거나 무효화하는 효과나 목적을 가지는 성을 근거로한 구별, 소외, 제한"으로 정의된다.
  1968년의 성차별철폐선언에 비해 그 차이를 보면 첫째, 법적구속력이 강화되었다.  비준국은 26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를 설치하며 위원회는 각국에서 4년마다 제출하는 보고서를 검토하여 매년 여성위원회와 경제사회이사회를 통하여 총회에 보고서를 제출한다.  둘째, 평등의 적극적 실현이 촉구되고 있다.  여성의 평등권을 제한하는 법이나 계약은 무효로 간주되며 각국은 출산과 결혼을 이유로 여성을 해고하는 경우에 대해  벌칙규정을 두어야 한다.
   셋째,  국제여권의 범위는 훨씬 확대되고 세분화되었다.  특히 새로운 분야로서;
- 가사의 평등한 분담
- 사회복지 서어비스
- 보건 서어비스
- 가족계획
- 농촌여성의 지위등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이 협정의 효율성은 사실상 극히 제한되어 있는데, 그것은 그 전문(前文)에 강조된 신경제질서와 반제국주의등의 "정치적 수사학"으로 인해 미국, 영국, 프랑스등 서구 강대국들이 비준을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강대국들의 비준이 거부된 상태에서 성차별철폐협정은 국제적 합의를 체계화한 문서가 아니라, 기존의 서구중심적 여권개념과 새로운 발전에의 관심및  정치적 갈등이 뚜렷한 체계없이 팻치워크(patchwork)되어 있다. 서구의 국가들은 또한 이 협정이 1980년 코펜하겐 세계회의에 때맞추기 위해 날림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유엔이 스스로 인정하듯이 이 협정은 "완벽한 법제도는 아니다." (though far from being a perfect legal instrument)   많은 나라가 협정의 제정과정에 유감을 표시하고 비준을 거부하였다.
   성차별철폐협정의 성격은 원칙을 선포하고 행동을 촉구하는 것으로서,  즉각적 법적 구속력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회원국이 "모든 적절한 수단을 취할 것을" 요구하는데 그친다.  협정을 위반하는 사항에 대해 조사할 수 있는 제도가 없고,유엔의 타 협정에 비해 취약하고 보수적인 성격을 지닌다.

(4)코펜하겐 세계여성회의 (1980)
   1980년 유엔여성발전 10년 (1976-1985) 사업의 중간점검을 위해 개최된 코펜하겐 세계여성회의는 멕시코에 비해 훨씬 규모가 크고 참가자의 수도 증가한 반면 정치적 논쟁이 격화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그 배경이 되는 국제환경을 보면 이란혁명, 미대사관 인질사건,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동서냉전이 심화되고 미국의 국내여론이 보수화하면서 레이간대통령의 재무장정책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이러한 국제환경은 여성회의를 정치화하였고, 코펜하겐의 세계여성회의의 결과인 사업계획은 그 서문에 여성의 평등, 발전, 평화를 저해하는 요소로서 유대민족주의 (Zionism)를 열거하여 미국, 캐나다, 호주, 이스라엘등이 거부표를 던졌고 22개국이 기권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한 가운데 동 사업계획의 특징은 첫째로, 여성의 사회진출에 대한 장애요인을 제거하고 여성의 사회진출을 도모하기 위한 국제협력의 전략을 상세히 열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고용, 보건, 교육이라는 부제를 설정하여 이문제에 치중하였다.  그 중에서도 적절한 건강대책및 교육시설 대책을 통해 남성과 평등한 자격으로 경제활동과 고용기회를 증진시키고 발전과정에 여성을 참여시키기 위한 행동지향적 계획을 수립하는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권고하였다.
   둘째로, 평등개념이 확대되어 발전에 있어서 여성이 수혜자임과 동시에 책임있는 주체로서 발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의 평등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추가되었다.  또한 사회주의 시각에서 불평등을 유발하는 근본요인의 하나로서 성별간 노동분업을 지적하였다. (한국여성개발원 1986, 72).

(5)나이로비 미래지향전략(1985)
   1985년에 나이로비에서 개최된 세계여성회의에는 150개 국가에서 14,000명의 여성참여하여 1100개의 워크샾 개최하였으며  정부대표는 157개국에서 2000명의 대표가  참석하였다.  이 회의의 주요성과는 나이로비 미래지향 전략 (Nairobi Forward Looking Strategies Toward 2000)으로서,  1986년부터 2000년에 이르는 기간의 여성지위 향상을 위한 향후전략에는 여성사회진출을 저해하는 요인들을 극복하기 위한 확고한 조치가 제시된 것이다.
   특기할 사항은  과거의 멕시코회의와 코펜하겐 회의에서 정치적 차이로 인해 합의가 어려웠지만, 나이로비 회의에서는 미래지향전략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는 것이다.  아직 유엔에서 제3세계가 지배적인 분위기에서 미국등 서구국가들은 제 3세계 주도적인 전략의 곳곳에 유보사항을 표시하였다.
   이 전략에 나타나는 국제여권개념의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여성을 과거와는 달리 지식인, 정책결정가, 기획자, 발전에의 공헌자이자 수혜자로서 정의하고 있다. (15항)  이것은 여성을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서 간주하는 획기적인 표현이었다.  즉 발전을 위해 활용되어야 하는 인력자원, 노동력이 아니라 발전을 정의하는 독립적 인간 이자 발전정책형성과 수행의 동반자로서 묘사되기 시작했다.(Pietila and Vickers 1990, 47).
   둘째, 여권개념이 정교화되고 발전되었다.
   평등에 대한 조항에서 " 자신들이 소유한 능력과 기술을 완전히 개발하여 국가의 발전에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여성에게 있어서 평등이란 문화, 제도, 사회의 가치관및 행동에 배어 있는 차별로 인해 여성에게 거부되어 온 권리의 실현을 의미한다"는 새로운 조항이 삽입되었다. (개발원 1986, 145).  이것은 불평등의  원인으로서 이슬람, 유교등 전통문화와 가치관의 영향을 강조하는 것이다.
    발전이란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발전뿐 아니라 인간의 육체적 지적 도덕적 문화적 성장을 의미한다.  발전은 "도덕적 차원"을 요구한다.(12항) 멕시코와 코펜하겐의 전통을 이어 신국제경제질서의 형성을 방해하는 선진국의 책동을 발전에의 장애로 규정하고 있고, 경제발전이 자동적으로 여성의 지위향상을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회의론을  포함하고 있다.
 평화란 전쟁과 폭력과 악의의 부재일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정의, 평등, 인권과 근본적 자유의 향유를 의미한다 (13항)고 정의되었으며 인종차별 (apartheid)를 비난하는데 토론이 집중되었다.
   셋째, 85년 나이로비 포름에서는 제 3세계 여성의 새로운 발전론이 모색되었다. 특히 DAWN (Development Alternativies with Women for a New Era)은 22명의 제3세계 여성학자들과 활동가들로 구성되었으며 84년 8월 처음 인도의 방갈로어에 모여 세계발전에 대한 제3세계여성의 독자적 시각을 제시하기로 결의하였다.  회의 직전 출간된 Development, Crises and Alternative Visions: Third World Women's Perspective 는 포름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고 발전에 대한 기본적 문서로 간주된다 (Sen and Grown 1985).
    넷째,  특별관심분야로서  한발지역의 여성, 도시의 빈곤여성, 노인여성, 젊은 여성, 학대받는 여성, 극빈여성, 여성매매와 강제매춘, 전통적 생계수단을 빼앗긴 여성, 여성세대주, 장애자 여성, 구금및 형법에 저촉된 여성, 피난민, 난민여성과 어린이, 이주여성, 소수민족및 원주민 여성등 대상별로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평가할때, 유엔에서 발전한 국제여권은 강제력은 없지만 전세계에 보편규범의 척도를 제시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 나이로비 이후 남녀고용평등법 (1988), 모자복지법 (1989), 가족법개정 (1988)이 이루어진 것 처럼 각국에서 평등법제정및 여성정책 개선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나이로비 회의 이후 (Pietila 1990, 94)  나이로비 이후 유엔은 전체계적 여성발전계획 (The System-wide Plan for Women and Development, 1990-1995.)을 채택하였는데, 이것은  나이로비 미래지향 전략의 실천이 유엔체계 내에 구조적으로 유입되어 이루어지고 있고, 유엔 모든 기구가 공동의 책임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United Nations 1987).  과거에 유엔체계내에서 주변적이었던 여성문제가 핵심문제중의 하나로 부상한 것이다.  유엔여성의 십년 기간에 여성문제가 연구되고 자료가 수집되었으며,다양한 유엔 기구에서 여성관련 결의가  채택되었다. 여성은 유엔 체계 내에서 "문자그대로 가시적인 존재가 되었으며, 이는 역행불가능한 상황인듯하다." (Pietila 1990, 95). 또한 국제여권분야에서 유엔은 전세계의 여론 수렴의 입장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선도적으로 회원국들에  앞장서서 높은 수준을 제시해왔다.
   그러나 유엔내에서의 국제여권의 발전에는 다음과 같은 한계점들이 노정되었다.  첫째, 동-서 남-북의 정치적 분쟁속에 있는 정부대표들이 여성문제와 직접적 관계없는 정치적인 문제들을 내세워 국제여권의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였다 (Winslow 1995).
둘째, 다양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상황 속에서 여권에 대한 개념이 다양하므로 공통분모가 창출되기 어려웠고 지도적인 파라다임이 부재했다.  세번째, 핵심적인 평등, 발전, 평화의 개념에 대한 깊이 있고 일관성있는 성찰이 부족하였다.

3. 젠더와 문명충돌: 베이징 이후(1995- )

(1)베이징세계여성회의의 주요의제
     1995년 9월 4일 - 15일 사이에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 4차 세계여성회의 (The Fourth World Conference on Women)는 189개국으로부터 정부대표 5,700여명, NGO 대표 4000여명, 언론인 3200여명등 총 13000명이 참가한 최대규모의 국제회의였다.  정부대표회의와 별도로 8.30 - 9.8일간 병행 개최된 NGO Forum 에는 3만여명의 각국 민간대표가 참석하였다.   회의의 목적은 나이로비 이후 10년간의 여성발전을 평가하고, 21세기 여성발전 행동강령을 채택하는 것이다.
   여기서 논의된 주요문제는 다음의 열두가지이다.
1. 빈곤의 부담, 빈곤의 여성화
2. 불평등한 교육기회
3. 불평등한 보건서비스
4. 여성에 대한 폭력
5. 무력갈등상황이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
6. 경제구조와 정책에 있어서 불평등
7. 정책결정참여에 있어서 불평등: 정책결정참여를 통한 empowerment
8. 여성담당기구의 취약성
9. 여성의 인권
10.미디어에 나타난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및 미디어에 있어서의 불평등
11.자연자원 관리와 환경보존에 있어서의 불평등
12.여아의 생존, 보호, 발전
     이 회의는 아동정상회의 (90년), 리우 환경회의 (92년), 세계인권회의 (93년), 인구개발회의 (94년), 사회개발정상회의 (95년)의 결과를 여성지위향상이라는 측면에서 통합한 것으로서, 아동, 환경, 인권, 인구, 사회개발에 대한 인류의 공통관심사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여권이 인권임이 강조되었고, 여성아동의 권리가 강조되었다.
(2)국제환경의 변화가 국제여권에 미친 영향
     국제환경의 변화를 살펴 보면 먼저 구소련이 붕괴되고 동구가 자유화되며 독일이 통일되고 중국베트남등 사회주의경제가 개방개혁으로 변화하였고, 탈냉전 신국제질서를 모색하는 가운데, 유럽이 통합되었고 경제문제가 주요관심사로 부상하며 블럭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이데올로기가 퇴조하는 가운데 인종.종교.문화적 갈등이 표출되는 시기였다.  전세계적으로 종교적 근본주의가 강화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것은 세계여성회의에도 영향을 미쳐서 베이징 회의는 과거와는 전혀다른 베이징 선언및 행동강령을 도출하게 된다.  즉 평화에 있어서 제국주의, 신국제질서등 과거의 이념적 논의가 자취를 감추고 보다 진지하게 여성문제가 논의되었다.  국제경제환경의 변화로서 불황, 군비경쟁, 해외원조의 감소, 우르구아이 라운드 등이 여성에게 미친 영향이  분석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갈등이 노출되는데, 그것은 유럽연합 (EU) 의 특히 성생활에 있어서 진보적인 여성관과 캐톨릭, 이슬람, 개신교등 종교적인 국가들의 여성관이 팽팽히 대립하였다는 사실이다.  또한 경제수준이 다른 선진국과 G77이 세계경제발전문제를 중심으로 의견갈등을 빚었다.
(3)베이징 선언및 행동강령의 특징
   베이징선언및 행동강령의 특징은  첫째, 비엔나 행동강령의 영향으로 보편적 인권으로서의 여성의 권리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모든 민법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인권과 발전에의 권리는 만유적, 불가분, 상호의존적, 상호관련된 개념이라고 천명되고 있으며 비엔나 국제인권선언은 여성과 여아의 권리는 불가양도, 통합적, 불가분한 인권이라고 선언함을 상기시키고 있다. 남녀평등은 독립된 여성의문제가 아니라 인권과 사회정의의 문제이다.(43)  또한 국제여권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평등권, 여성의 재생산권리 (인구개발회의 행동강령에 포함된 권리), 여성에대한 폭력   (가정폭력, 인신매매, 성희롱, 포노그래피, 중교적 비종교적 극단주의 등등), 인종, 언어, 종족, 문화, 종교, 장애, 사회경제적 계층에 따른 인권침해, 난민여성, 법적 해득력등의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둘째,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 여성의 권한증대 (empowerment)및 조직화(networking)이 필수불가결하다는 점을 전제로 한 점이다.  empowerment 와 networking은 베이징회의의 핵심주제로서,  남성들에게 여성을 제대로 대우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능동적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정책결정에 참여하는 방법 모색하며  여성들 스스로 조직적 연대를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셋째, 이전의 국제여권에서 논의되지 않았던 종교가 광범위하게 논의되고 있다. 즉  여성의 삶에 있어서 종교, 영성, 믿음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사상과 양심과 종교의 자유에 대한 인권의 불가양도성이 강조되며,  종교, 사상, 양심, 믿음이 남녀의 도덕적 윤리적 영적 필요를 채우는데 공헌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단주의는 부정적 영향을 줄수 있으며 폭력과 차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점이다.(선언 25조)
   넷째, 국제여권이 보다 세분화되고 새로운 개념들로서 재정의되고 있다.
   다섯째, 발전에 대한 강조가 감소되고 평등분야에 있어 젠더와 성적권리조항이 강조되었다.  과거에 비해 약세가 된 G77은 베이징 선언이 발전보다 평등에 치중해 있다고 불만을 표시하였으며 빈곤, 폭력, 종속문제가 다루어지지 않고 성문제에 치우쳤다고 비판하였다.

(4)논쟁점
   평등, 발전, 평화 분야에 따른 논점은 다음과 같다.
A.  평등
   평등분야에서는 서구페미니즘으로 대표되는 진보세력과 이슬람, 교황청, 기독교의 보수세력의 갈등이 있었다.
   먼저 남성과 여성의 구분에 있어서 종래의 생물학적인 성 (sex)의 개념에 대하여 여성학에서 제기되어 온 사회학적인 성 (gender)의 개념이 채택되었다.(28조)  이것은 남성성과 여성성이 생물학적인 차이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성역할이라는 서구 페미니즘의 기본시각을 반영한 것으로서 진보적 변화이다.  보수세력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신에 의해 주어진 것이므로 sex의 개념을 쓸것을 강조했으나 통합유럽의 gender개념이 채택되었다.     또한 평등에 있어서 보수세력은 남녀의 차이를 인정한 채로 형평 (equity)의 개념을 도입하자고 하였으나 여권론자들의 절대평등 (equality)개념이 채택되었다.
   가장 어려운 논쟁점은  카이로 국제인구개발회의에서 제기됐던 여성의 생식권리가 성생활과 임신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 (Sexual and reproductive ehalth right) 확보로 발전된 것이었다. 이슬람권은 성관련 보건서비스를 규정한 보건분야에 대해 유보하였으며, 논쟁이 격화되어 "각국의 종교문화전통규범을 존중한다"는 내용의 주석을 행동강령에 첨부하는 선에서 절충점 도출하려 했으나 진보세력은 이 문구를 삽입할 경우 보편성이 약화된다며 반대하여 총론에만 삽입키로 의장직권으로 결정되었다.  또한 교황청은 "여성의 성생활에 관련된 권리는 모든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all human rights 대신에 universal human rights 의 개념을 주장하였으나 진보세력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또한가지는  여성상속권 인정의 문제로서, 이 역시 진보세력이 승리하였다.  이슬람 국가들은 여성의 인권과 여아상속권문제에 대해 유보하여, 인권및 특히 여성문제에 있어서 문명충돌을 예고하였다.
  레즈비안 문제에 대해서는 보수세력이 승리하여  레즈비안들이 원한  "성적취향"의 권리는 거부되었고, 가족의 개념은 동성부부도 가족으로 인정하는   families가 아닌 전통적인 family가 채택되었다.  낙태에 관해서도 보수세력의 승리이다. "어떤 경우에도 낙태는 가족계획의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되고, 낙태와 관련되 정책은 각국의 법률적 절차에 따라야 한다"는 조항이 삽입되었다.
   교황청은  청소년의 성생활및 임신 출산 건강관련 정보와 교육을 제공하는데 있어서의 부모의 권리와 책임을 강조하였고,유럽연합은 청소년의 독립된 성권리를  옹호하여, 결과는 부모의 권리와 책임을 인정하면서 독립된 사회생활을 보장받을 청소년의 권리도 명시하게 된 것이다.     또 가족에 있어서 사회의 기초단위로 강화되고 보호되고 지원되어야 한다는 조항과, 모성의 사회적 중요서오가 가족및 자녀양육에서의 부모의역할에 대한 조항이 삽입되었다.(30조)
   여성에 대한 폭력행위에 포르노와 매춘을 포함시키자는 G77 과 교황청의 주장도 일부받아들여짐으로써, 평등분야에서는 보수종교세력의 반격이 어느때보다도 강화된 시기가 베이징 세계여성회의였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이전에 없었던 조항으로서  남아선호사상 (son preference)이 태아의 성감별, 여아의 사망률, 여아의 낮은 취학율을 가져온다고 지적되고 있다.(40조)
   여성의 정치참여에 있어서 멕시코회의에서는 "여성의 선거권, 피선거권, 공무분담권"을 논의했으나, 베이징 회의에서는 진일보하여 여성의 정치참여확대를 위한 쿼타제등 적극적 조치의 필요성과 여성리더쉽 훈련문제를 다루었고, 정당이 적극적 역할을 담당하여야 함을 역설하는등, 여권개념이 상당히 정교화되고 진일보하였다. 경제분야에서도 단순한 고용문제에서 벗어나 경제구조와 정책및 생산과정에서의 남녀평등방안이 제시되었다.
B.  발전
   발전이 무엇을 의미하는 가는 지금까지도 논쟁이 대상이 되고 있다. 발전이란 보다 나은 상태로의 변화과정을 의미하기에 무엇이 보다 나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관과 가치체계에 따라 상이한 정의가 있을 수 있다.  초기에 그것은 서구화와 근대화로 이해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70년대에 들어서서 제 3세계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혼합된 시각에서 종속이론적인 발전론을 추종하는 경향을 보였다.  즉 후진국의 발전은 국제경제체제의 구조적 모순이 해결되고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져야 가능하다고 보고 주로 서구 자본주의국가의 신식민주의와 제국주의를 저발전의 원인으로 규탄하는 것이다. 1980년대 중반이후에는 사회주의경제체제의 붕괴와 변화, 개방개혁과 함께 종속이론적 설명이 약화되면서, 서구의 발전모델에 있어 환경의 파괴와 과학기술문명의 비인간성의 약점을 보완하는 "인간중심적이고 지속가능하며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발전개념이 대두되게 된다.
    베이징에서는  발전의 사회적 차원이 강조되었다.  또한 삶의질이 강조되어, 경제성장은 그 자체로서는 삶의 질의 향상을 가져오지 않으며  오히려 사회적 불평등과 소외를 가져온다고 지적되었고,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혜택받을 수 잇는 새로운 대안이 모색되어야 한다고 주장되었다.  발전의 모든 측면에 대한 총체적 접근(holistic approach)이 강조되었으며, 발전은  성장, 남녀의 평등, 사회정의, 환경의 보호, 지속가능성, 결속, 참여, 평화, 인권의 존중등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정의된다.(16조)  또한 발전을 대치하는 안보 (security)의 개념이 등장한 것도 베이징 선언의 특징이다.  정치발전 면에서는 . 전세계적 민주화운동이 정치적 진보를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동반자적인 정치참여가 부족함을 지적하였다. (17조)
    새로운 발전개념을 반영하여. 사람중심적 지속가능한 발전 (people-centered sustainable development)의 필요성이 강조되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여성의 리더쉽의 필요성이  강조되었다. (19조)
C.평화
   한편 평화부문에 있어서의 논쟁은 정신대등  전쟁 중 성폭력을 전쟁범죄로 규정하고  성희롱을 성폭력개념에 포함하는 것이었다.  한국등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분쟁상황에 포함된다고 주장했으나 일본은 외국의 점령상태를 전쟁및 분쟁상황에 포함되싵키는데 무리가 잇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이 문제는 앞으로도 해결될 과제이다.
  마지막으로,  재정문제에 관련해 개도국은 새로운 재원의 마련을 주장했고 선진국은 기존의 재원을 적절히 사용하자고 주장하여 절충안으로 "모든 재정기구가 개발도상국에 새롭고 추가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개별구가 또는 국제적 차원에서 재원을 적절히 동원할 것을 요청한다"고 표기했다.  이것은 베이징회의가 개도국 중심으로 조직된 회의로서 행동강령 실천을 위한 자금마련 방안이 구체적으로 약속되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IV. 한국외교정책의 과제
   21세기는 아시아태평양시대가 되리라고 한다.  한국은 경제성장과 정치개혁을 바탕으로 한 통일된 세계중심국가의 비젼을 가지고 세계화를 준비하고 있다.  이제 한국의 외교정책의 과제의 하나는 자신의 국력성장에 걸맞는 이미지변화를 가져 오는 것이다. 강대국의 리더쉽을 추종하던 입장에서 탈피하여 스스로 강대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리더십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요청된다.  한 국가의 리더십이란 경제력이나  군사력에 의해 자연히 행사되는 것이 아님은 일본외교 정책의 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일본은 경제부국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서 대세추종적이며 소극적인 외교정책을 장기간 유지했던 것이다.  리더십을 구성하는 요소는 경제력 군사력 못지 않게 인류공동체의 복지와 발전을 위한 가치와 비젼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모범된 삶의 양식을 제시함으로써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고 살아보고 싶고 투자하고 싶고 흉내내고 싶은" 사회를 발전시켜가는 능력을 포함한다.
   통일된 한국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사회의 통합을 이루어내고 , 동과 서를 조화시키는 가운데 새로운 발전 모델을 국제사회에 제시함으로써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세계화가 시급한 분야중의 하나는  여성의 지위이다. 유엔이 발표한 95년도 인간개발지수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겨우 31위이며, 남녀평등지수는 37위이고, 여성의 정치경제정책참여도는 최하위권인 90위라고 한다.  한국의 외교는 이제 안보강박관념에 입각한 강대국중심의 외교가 아니라, 세계로 나아가 바람직한 삶의질을 제시하며 민주주의와, 인권과, 자유와, 복지와, 생활과 환경의 개선에 이바지하는 리더십을 지향해야 한다.
   여성이 억압받고 차별당하는 한국은 결코 국제사회에서 누구나 흉내내고 싶은 사회로서 앞장서서 갈수가 없다.  누구나 존엄성을 지닌 인간으로서 평등한 기회를 누리며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한 개발하며 살아가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여성의 지위가 세계화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50년간 유엔에서의 국제여권은 초기의 서구중심적 여권개념의 정립에서 70년대 이후 비서구지역의 발전 중심의 개념이 도입되고 수차의 세계회의에 걸쳐 보다 공교하게 발전하면서 탈냉전 신국제질서 속에서 유럽연합의 새로운 진보적 리더쉽과 이슬람, 캐톨릭과 기타 종교의 보수적 반격의 충돌 속에 재정립되는 과정을 겪고 있다.  서구중심에서 비서구중심으로, 다시 유럽연합의 리더십으로, 평등에서 발전으로 다시 평등으로 강조점이 변화해 왔다.  앞으로 유엔에서의 국제여권논의는 다양한 지역블럭과 문명권의 충돌이 예상된다.
   1994년 여성지위위원회에 4년 임기의 위원국으로 선출된  한국의 외교정책의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여성은 아시아태평양시대에 국제사회의 발전과 세계적인 여성 권익의 보호를 위해 연구하고 경험을 공유하며 보다 바람직한 여성의 삶의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리더십을 담당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상이한 문명권 사이에 합의에 도달할 수 없는 갈등요인을 해결하기 위한 창조적 이니시에이티브가 필요하다.   다양한 문명권의 여성문제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비교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국제여권의 침해사례에 대해 정보를 입수, 깊이있는 연구를 바탕으로  구체적 조치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즉 자국의 입장만 선전하는 자세에서 벗어나서 여성의 실질적 권익보호에 공헌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국내여성의 지위향상을  필수전제로 한다.  국제기구및 국제회의를 유치하여 의견수렴을 선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둘째, 유엔의 사무국 요원등 국제기구에 진출할 여성국제협력전문인의 확보와 양성이 필요하다.  유엔은 1995년까지 여성전문인력을 현재의 30%에서 35%까지 충원시킬 방침으로 있으므로 한국여성의 참여가 확대되어야 한다.유엔이 배정하는 유엔사무국 T/O에서 여성에게 30%를 할당하여야 할 것이며  유엔사무국직원 채용시험에 여성에 일정비율할당이  필요하다. 또한  Junior Professioinal Officer제도에 여성의 참여가 격려되어야 하다. 여성문제뿐 아니라 국제기구의 각분야에 한국여성의 참여가 필요하다. 나아가 각종 유엔회의에 파견하는 국가대표단의 일정비율을 여성으로 해야 할 것이다.
   셋째로,장기적 안목에서 여학생이 참여하는 정치외교학과에서 모델 유엔, 모델국제회의등이 도입되어 국제활동에 자질있는 인재가 발굴육성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젊은 여성들의 국제정치학을 담당하는 교육자들의 의식개혁이  중요한 과제이다.  국제법, 국제기구론에 국제여권의 발전이 통합되어야 하며 국제관계론에 여성국제정치이론이 통합되고, 정치학교육에 여성정치학이 필수적으로 포함되어 남녀 학생이 함께 수강하여야 한다. 이것이 장기적으로 한국외교의 성공에 이바지 할 것이다.
   넷째,  우리나라 외교정책수립과 추진과정에 여성의 시각이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군사안보외교경제 중심적인 사고를 탈피하여 삶과 생활과 환경과 평화와 화해를 지향하는 여성의 보살핌의 리더쉽이 국제협력에 확산되어야 한다.  직업외교관의 일정비율(critical mass) 20-30%가 여성인 것이 바람직하다.
   넷째, 국제여권정책의 일관성과 전문성을 기할 수 있도록 체제가 정비되어야 한다.  외무부의 UN2과와 정무제2장관실, 한국여성개발원의 책임및 관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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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essor of Politics, L.A. Institute of Interntional Stud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