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치의 종교성 - 김일성의 신격화에 있어서 무속신앙의 영향을 중심으로 -
주 준희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교수)
I.서론
대부분의 전통사회에 있어서, 즉 근대화의 충격을 경험하지 않은 국가들에 있어서 종교와 정치는 언제나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지만, 또한 종교적 동물이기도 하다. 폴 틸리히가 종교는 문화의 내용이고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라고 하였던 것처럼, 모든 인간은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지 그의 종교를 갖고 있다. 일본의 천황은 신도의 수장으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며, 중국의 천제의 주요한 직책은 천에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이었다. 인도차이나의 민족주의는 불교와 분리하여 이해할 수 없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지아,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쉬의 이슬람은 정치권력의 정통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힌두교는 인도의 정치문화를 형성한 결정적인 요소였으며 간디의 민족주의의 정신적 근간이기도 했다. 역사상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 것은 종교개혁, 르네상스, 산업혁명, 프랑스혁명 등으로 이어지는 유럽과 미국 등 서구 기독교문화권의 근대화와 함께 정치영역이 종교에서 분리되는 세속화가 시작되면서 부터이다. 제 일세계라 칭할 수 있는 서구 기독교문화권에서는 근대화와 함께 교회와 정치의 분리현상이 확실하게 진행되었고 정교분리의 원칙이 확립되어 왔다. 이에 따라 영미 등 서구의 정치학이 정치를 종교에서 분리된 영역으로서, 권력을 둘러싼 제현상으로 연구해 온 결과는 비서구지역의 현실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설명되지 않은채 간과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근대화를 사회 내부로부터의 자연스러운 변화로서가 아니라 서구로부터의 주로 제국주의에 의한 충격으로 경험하게 된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소위 제 3세계의 많은 지역에 있어서 정치는 경험적으로 아직 세속화되지 않은, 종교와 밀접하게 관련된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북한정치에 관한 연구에 있어서도 일반적으로 서구 정치학의 개념과 시각과 이론에 입각해 연구가 전개되어 왔다 (김남식 1988; 염홍철 1990). 비교적 종교에 접근하였던 것은 역사문화론적 접근론자들과 그 현대적 변형인 정치사회화와 정치문화론이다(Dittmer 1983; Jowitt 1974; Brown and Gray 1978; White 1983; Almond 1983). 그러나 여기서도 "북한의 독특한 정신세계, 문화, 또는 영성"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은 많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김경웅 1993; 김영수 1991; 이문웅 1977; 김재영외 1990; 고성준 1992). 북한의 정치문화를 분석하면서 전통종교의 영향을 언급한 연구들은 주로 유교에 집중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유교문화는 지배계층의 문화로서 그 영향이 제한되어 있었고, 북한인민의 정서와 더욱 밀접한 민속신앙이 정치문화에 미친 영향이 심대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직 깊이있는 연구가 없다. 본고에서는 먼저 유교뿐 아니라 무속신앙 등 전통종교가 정치에 미친 영향을 고찰하고, 북한공산체제의 종교에 대한 관점과 정책을 살펴본 후, 김일성과 김정일의 신격화 과정에 나타난 종교와 정치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본고에서 북한의 정치에 대해 새롭게 제기되는 주장은 다음의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북한의 정치는 아직 세속화되지 않은 신격화 정치체제로 이해해야 한다. 둘째, 북한의 정치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전통사회 지배계층의 이데올로기인 유교뿐 아니라 인민의 정신세계에 지배적 영향을 미친 무속신앙의 영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북한 정치문화는 무속신앙, 유불선의 전통종교, 기독교의 영향을 반영하며, 한편 통치계층은 이러한 인민의 종교적 정서를 의도적으로 권력구축에 활용하였다.
II.종교와 정치의 관계: 이론적 틀
종교는 "인간들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절대적인 존재와 더불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인간경험의 영역"으로서, 즉 절대성에 대한 인간의 반응으로 정의될 수 있다(죠쉬 맥도웰 1987, 1). 한편 정치는 공동체의 정치권력을 둘러싼 현상, 보다 정확히 말해서 "모든 사회구성원을 규제하는 권위적 정책결정및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개인과 집단의 상호작용, 갈등, 경쟁, 협력 현상"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범준 1988, 12). 인간은 정치적 동물일뿐 아니라 종교적 동물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치와 종교는 인간사회의 보편현상이며 상호 밀접한 관계를 맺고 발전해 왔다. 종교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기존의 연구를 보면 주로 비교정치이론의 근대화이론의 맥락에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그것은 전통사회에서의 종교와 정치의 관계 유형이 근대사회와 다르다는 점에 착안하여, 근대화에 수반된 세속화과정, 즉 정치권력이 종교에서 분리되어 독자적 영역을 획득하는 과정을 분석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1.전통사회의 종교와 정치관계 유형
서구로부터의 근대화의 충격을 경험하기 이전의 대부분의 전통사회의 공통된 특징은 종교와 정치가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대다수의 전통사회에 나타나는 현상은 정치지도자가 신적인 존재로서 신격화되거나, 제정일치로서 제사장의 역할을 행한다는 사실이다. 정치지도자의 권력은 신비한 초월성, 범인이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신성성과 의 관계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다. 전통사회의 종교와 정치의 관계는 신격화유형, 제정일치 유형, 국교 유형의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번째로 지도자가 신성을 지닌 존재로 숭배의 대상이 되는 신격화 유형유형이다. 고대근동에서 이집트의 왕 바로는 성육한 신 (the god incarnate) 로 간주되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고대로부터 느부갓네살왕이 자신의 우상을 세우고 절하기를 강요했듯이, 역사상 수많은 정치적 지도자가 자신을 신격화한 기록이 있다. 알렉산더 대제와 시저를 비롯하여 근세의 김일성에 이르기까지, 신격화의 예는 많이 찾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신성과 인성의 구분이 확실치 않거나 연결선상에 있는 애니미즘, 샤마니즘, 다신론, 범신론 등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두번째로 제정일치 유형은 이슬람, 힌두, 유교, 신도문화에서 발견된다. 여기서는 정치적 통치자가 종교적 제사장의 역할까지도 함께 담당한다. 그들은 제사를 지냈고, 신과 신과 소통하였으며, 정치적으로 다스렸다. 중국의 유교체제에서 천자는 천 (天)에 제사지내는 직분을 독점적으로 담당하는 제사장이었다. 제정일치 유형에서는 정치구조와 종교구조가 중첩되며 종교구조가 따로 분리되어 발전하지 못한다. 세번째의 국교유형에서는 정치지도자와 종교지도자가 분리되어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정치에서 독립된 종교체제가 발전하는데 이것은 유대교, 기독교와 불교문화에서 발견된다. 기독교에서는 구약의 사울왕으로부터 종교적 기능과 분리되어 정의를 행하며 통치하는 정치적 권력의 전통이 존재했다. 이스라엘의 왕은 평범한 인간으로서, 세속적인 기능만을 갖는다. 즉 인성과 신성은 확연하게 구분된다 (Frankfort 1978). 예언자와 선지자는 남용되는 정치권력에 대한 견제역할을 수행했다. 북한의 경우 전통사회의 통치 이데올로기는 유교로서 종교체제가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보다는 정치권력과 체제 자체와 혼합된 제정일치 유형이었다. 한편 일반백성의 정신세계는 지도자를 신격화하는 무속신앙과 유.불.선의 한국종교의 혼합적인 영향이 지배적이었다.
2.세속화유형 서구의 충격으로서의 근대화에 대해 각 사회는 다양한 반응을 보였지만, 일반적으로 근대화는 종교와 정치의 영역을 분리하는 세속화과정을 수반하였다. 가브리엘 올몬드와 포웰은 정치발전을 "정치구조의 분화와 전문화및 정치문화의 세속화"로서 정의하였던 것이다 (Almond and Powell, 105). 메드허스트(Medhurst 1981)는 세속화의 특성에 따라 세가지의 정치체제 유형을 분류하였다. 즉 종교지배적 정치체제, 종교중립적 정치체제, 반종교적 정치체제이다. 첫째로 종교지배적 정치체제는 종교가 아직 정치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회이다. 세속화가 진척되어 과거의 제정일치적 형태는 사라지고 국교적 형태는 약화되었지만, 아직 정치지도자는 종교를 사용하여 통치의 정통성을 확보하며 한 종교를 공식적으로 후원한다.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지아, 중동국가들, 불교를 국교로 하는 태국, 미얀마, 캐톨릭이 지배적인 필리핀 등이 여기 속한다. 이것은 주로 전통사회의 종교가 국교유형이었던 경우, 종교집단이 근대화에 비교적 조직적으로 대처함으로써 종교의 우위를 고수하기 위해 노력했던 경우이다. 둘째로 종교중립적 정치체제에서는 세속화가 진척되어 종교가 정치권력의 정통성의 기반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한다. 한국과 대만이 그 예이다. 세번째로 반종교적 정치체제에서는 세속화의 극단적인 예로서, 정치권력이 반종교적 이데올로기에 입각하여 적극적으로 종교를 탄압한다. 공산체제가 그 좋은 예이다. 북한은 사회주의체제 수립이후 전세계에서도 보기 드물정도로 철저히 종교를 탄압하여 "지상에서 종교가 사라진 유일한 나라"임을 주장했지만, 표면상 반종교적 정치체제임에도 불구하고, 전통사회의 신격화유형이 인민의 정치문화차원에서 지속되고 있으며, 정치권력이 이러한 인민의 종교성을 신격화에 활용함으로써 실지에 있어 세속화가 이루어 지지 않은 종교지배적 정치체제의 특성을 띄고 있는 것이다.
III.북한의 전통종교와 정치: 무속신앙의 시조신 전통과 유교의 가족국가
유교를 강조하는 기존의 연구에서 간과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전통문화에서 일반 백성의 삶에 가장 깊은 영향을 미친 것은 단군이래 전해 내려오는 민간신앙의 주요한 부분인 무속신앙이었다는 사실이다. 이씨조선에 이르러 유교가 국교가 되었으나, 유교는 학식있는 지배계층인 양반의 문화였으며, 배우지 못하는 상놈 계층에는 무속신앙에 비해 깊이 침투하지 못하였음은 당연한 일이다. 북한에서는 조선인민공화국 수립이후 과거의 지주계층이 적대계층이 되고, 과거의 빈농이 핵심계층이 되는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으며, 이것은 북한인민의 "무속신앙적" 정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1.무속신앙
우리의 전통문화에서 무속신앙은 민중의 신앙이었으며, 민간신앙의 주요한 부분이다. 민간신앙은 "자연 속에 사는 자연인으로서의 민간인에 의해 생활을 통해서 전승되고 있는 자연적 종교현상"으로 정의될 수 있다 (고대 민족문화연구소 1982, 21). 민간신앙은 교주도 창시자도 없고 교단 조직도 교리도 희박하고 윤리관도 희박하며 논리도 많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김태곤 1982, 20-22). 신라시대 무속에 관한 자료가 보이며 이러한 기반 위에 삼국으로부터 고려에 걸친 불교, 도교, 조선 500년의 유교등의 외래 종교가 들어와 민간신앙과 결합하여 전통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따라서 한국종교란 애니미즘, 샤마니즘, 유,불,선의 혼합으로서 문화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1) 북한의 강신무(降神巫)와 샤만의 신격화 남북의 무속신앙에는 차이가 있으며, 이것이 남북의 문화적 차이에 영향을 미친다. 북한의 무당은 강신무로서 북방계의 샤마니즘이다. 제신이 몸에 내리므로 무당을 만신 (萬神)이라고 부른다. 남자무당은 박수로서 여복을 입고 굿을 한다. 반면 남한의 세습무(世襲巫)는 남방계의 주술사(呪術師)이다. 무당의 특징은 의식의 단순한 변화상태인 trance, 탈혼상태인 ecstacy, 憑依상태인 possession으로 논의되는데, 북한의 강신무는 초기의 신비적 종교체험인 신병체험으로부터 강신이나 빙의에 의한 영력을 기반으로 하는 possession 유형으로서 보다 영력을 강조한다. 따라서 북한의 강신무는 신의 영력을 얻기 위헤 제의에서 자신을 신격화해야 되기 때문에 신복으로서의 무복이 발달하여 무 하나가 12-20종의 무복을 입었다. 남한의 세습무는 영력을 소지하거나 신격화할 필요성이 없이 사제였기때문에 무복은 2-3종 정도이다 (최길성 1975, 406). 즉, 북한의 전통사회에서는 무당의 신격화가 드문일이 아니었다. 가무에도 남북의 차이가 있었다. 북의 강신무는 징, 꽹과리 등 타악기 위주로 가무의 가락과 속도가 빠르지만 남의 세습무는 그외에 피리, 가야금 등 현악기가 반주되어 가무의 가락과 속도가 완만한 차이점이 있다. 징, 꽹가리는 무의 심경을 자극하며 흥분상태로 몰아 엑스터시로 들어가 강신의 환상을 촉진시킨다. 김일성 김정일에 집단적으로 열광하는 북한주민의 정서 속에 이러한 엑스터시를 발견할 수 있다.
(2)무속의 신성과 인성 무속의 신은 굿 제의의 주제신, 무신도로 봉안된 신, 동제 신당의 제신, 가신 등 약 273종에 달한다. 이를 자연신과 인신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자연신계통이 63.6%, 인신계통이 33.3%, 기타 3.1%정도이다 (김기곤 1982, 285). 신은 공포의 대상으로서, 무서운 고통을 주는 벌로서 신의 의사를 전달한다. 인간의 생사, 흥망, 화복, 질병 등 운명 일체는 신의 의사에 따르는 것이다. 이들 신간에는 엄격한 위계질서가 있는데 최고신으로 천신이 존재하고 무신들 사이에는 계층적 격차가 있고 이것은 상층, 중층, 하층, 최하층의 4개층으로 구분된다. 이와 같이 신에 위계질서가 있다고 보는 관점은 인간의 위계질서를 인정하며, 나아가 상류층, 특권층을 신격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신과 인간의 관계는 한자의 무 (巫)에 잘 나타난다. 위의 一은 하늘 또는 신령을 표시하고 아래의 一은 땅 또는 인간을 표시한다. 가운데 작대기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며, 그 양편에 사람이 춤추고 있다. 즉 무속신앙이란 사람 (무당)이 춤추어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현상이라고 한다. 따라서 신성과 인성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으며 신성의 초월성을 찾기 어렵다 (유동식 1978,268). 신령들과 사람 사이에는 질적인 구분이 없다. 또 샤만의 만신전에는 신이라는 이름만 있으면 불교, 유교, 도교, 모든 신들을 다 받아들인다. 이와 같은 인간과 신의 경계의 모호성은 특출한 인간에 대한 신격화를 용이하게 했다.
(3) 무속의 자연신 먼저 자연신 계통의 무신을 살펴보면, 천신, 일신, 월신, 성신, 천체신, 지신 등을 숭배하였다. 이것은 김일성과 김정일을 "태양", "한울님" 또는 "별"로 숭배하는 북한인들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산, 하천, 마을, 집터에도 신이 있다고 믿듯이 수목에도 정령(精靈)이 있다고 믿었다. 또한 식물 특히 꽃들에게도 정령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사람이 죽어서 그 혼령이 꽃으로 화하기도 하고 꽃에서 사람이 나오기도 한다. 김일성 김정일의 신격화에 왜 꽃과 새가 많이 등장하는가 하는 것은, 무속신앙의 신앙대상으로서 이들 자연물이 민중의 정서에 친숙하고 신령하기 때문이다.
(4) 무속의 인신 한편 무속신앙에서는 인신을 섬겼는데, 그 종류는 국조신, 왕신(왕비신, 왕녀신), 장군신(부인, 딸), 대감신, 부인신, 각시신,무조신,불교신,도교신,일반인신으로 나누어진다. 인간은 사후 선신 (善神)이 되기도하고 괴롭고 한많게 살다가 죽으면 악귀 (惡鬼)로 남는다. 특히 생전에 훌륭하고 존경받던 인물은 사후 국가나 어느 특정지역의 수호신이 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한 나라를 이룩한 시조나 그 나라의 유명한 인물, 특히 무인을 사후에 민간에서 신으로 숭앙하여 받들고 있는 예를 흔히 본다. 영웅신앙은 영웅의 혼을 신으로 신앙하는 것이다. 이들 신은 일반적인 인간보다 뛰어난 인간의 영혼들이라고 생각되었다. 이들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신당에 봉안되어 매년 동신제 (洞神祭)를 지냈다.
가. 국조신 김일성과 같이 나라를 세운 인물이 사후에 신격화되는 것은 전통사회에서는 드문일이 아니었다. 국조신으로 섬겨진 인물 중에는 단군, 주몽, 혁거세, 왕건, 수로왕 등이 있다. 그 중 단군신앙을 보면, 혹자는 단군을 제정일치의 부족국가시대에 하느님을 제사하던 군장의 이름이라 하여 단군신앙을 무교의 근원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단군신앙은 단군을 태양신으로 혹은 산신으로 숭배하기도 하므로, 애니미즘의 형태이다. 태양신은 우리 말로 밝음님이라 표현되었으며 당시 우리 문자가 없어 이두표기로 할때 단군이라고 하였다. 공통된 교리는 단군을 국조로 보는 것과 홍익인간이라는 이념을 내세우는 것이다. 삼국시대에는 나라의 큰일이 있을때마다 주몽 등 각기 국조신에게 제를 올리고 국운을 기원하였다. 가락국의 시조 수로왕은 황천의 명을 받은자의 예시로 하늘에서 밧줄이 내리고 신성을 띠고 태어난다. 그는 하늘의 명으로 내려 온 사람이며 신통력을 쓰는 신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대가야의 시조가 되어 150세를 누리고 돌아가시매 백성이 신으로 삼아 높이 모셨다 (이병 1968; 문화재관리국 1975,p. 285.).
나.왕신 무속신앙에서는 시조신뿐 아니라 왕도 신격화했다. 경북 월성군에는 신라 최후의 왕인 경순왕을 무속신으로 모신 굿당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형산 (兄山)과 강건너의 제산(弟山)이 연결되어 비가 올때마다 물이 빠지지 못하고 막혀서 백성이 걱정하고 있었는데 경순왕이 용으로 변해서 그 꼬리로 산을 끊어 형산과 제산으로 나누어 놓고 그 사이에 형산강(兄山江)이 흐르게 했다고 한다. 태조 이성계, 고려 말에 불우하게 지낸 공민왕이나 억울하게 죽은 뒤주대왕 (사도세자)도 신으로 숭상되었다.
다.장군신, 대감신, 영웅신 장군신의 경우 억울하게 죽은 임경업장군,남이(南怡)장군 전몰한 득제(得濟)장군, 막강한 힘을 가졌던 김유신 장군이나 중국의 관유장군 등이 신으로 신앙된다. 개성 덕물산에 가면 고려말의 최영장군이 무속신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대감신의 경우도 일반인과 달리 막강한 권좌에 앉았던 고관의 영혼이 신으로 신앙되었다.
라.성모신 (聖母神) 국조신이 남신인데 반해서 여신으로서 국조신에 버금갈만한 신은 성모신이다. 북한의 강반석(김일성의 어머니), 김정숙(김일성의 처)의 신격화는 이러한 성모신 숭배정서와 일맥상통한다. 성모신은 고귀한 신분의 여인으로서 한 나라 시조의 어머니이거나 왕실의 여인 또는 국가나 왕을 위해 큰 일을 하고 죽은 자의 부인 등이 사후 신격화된 것이며 대체로 명산의 산정에 위치하여 숭앙되고 있다. 모성적 특징을 지니며, 성녀로서의 숭앙과 신으로서의 숭앙을 동시에 받는 것이 특징이다. 그 예로는 선도산 (仙桃山)성모, 고려의 동신성모(東神聖母), 지리산 성모 등이 있다.(고대 민족문화연구소 1982,406).
마.시조신 또한 마을을 개척하거나 처음으로 정착한 사람이 그 마을의 시조신으로 추앙받기도 했다. 마을을 위해 공헌한 위대한 인물은 신이 되었다.
(5) 정치와의 관계 무속신앙은 인간의 생사화복에 귀신 등 초자연적 존재들의 영향이 크다는 인식하에 현세적인 삶에 있어서 악운을 물리치고 축복을 받기를 기원하는 구복주의에 기초한 민간신앙형태로서, 그 특징은 초월적 존재에 대한 의존, 비합리적 신비주의, 운명주의 , 접신 등의 초월적 행동을 통해 인간과 귀신을 매개하는 중간자인 무당및 점장이에 대한 의존을 들 수 있다. 북한 인민의 정서는 이러한 무속신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북한의 정치문화, 인민의 정치체제를 향한 정향에 강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첫째로, 정치권력과 신성의 관계를 보면, 정치권력의 신격화가 특징이다. 지도자는 " 하늘이 내는" 사람이며, 신적인 존재이다 ( 김재영 1990, 64-90). 신내림, 초인간적 신성과 초자연성은 정치권력의 정통성의 기반이었다. 따라서 신화는 정통성 확립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둘째로, 이것은 정치권력과 피지배층의 위계질서, 나아가 피지배층 내의 엄격한 위계질서를 정당화하였으며 지배계층에 신성까지 이르는 우월성을 부여하였다. 셋째로,정치권력의 행사방법은 절대정치로 나타난다. 무당은 일단 강신무로 인정되면 그 권위가 신만큼이나 절대적이어서 모든 일이나 마을의 행사 등에서 절대적 권위를 가졌다. 넷째로, 정치문화의 측면에서 신격화된 정치지도자에 대한 인민의 태도는 "엑스터시"로 설명될 수 있다. 무당이 노래와 춤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은 신을 내려오게 하고 신과 인간이 하나가 되게 하는 경지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북한 정치문화의 열광적인 김일성 찬양집회는 인민을 엑스타시로 이끌어가는 현상이다. 다섯째로, 신과 정치체계의 관계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고 상호관계였다. 즉 제사를 잘 지내어 줌으로써 신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관계이다. 반대로 신이 마을을 잘 지켜 주고 마을이 잘되면 보다 큰 제사를 받고 성스러운 대접을 받는다. 마을이 제사를 드린다고 해도 부정이 끼거나 성스럽게 행하지 않았을 때는 역효과를 가져와 마을에 재앙이 드리곤 한다.
2.유교
유교가 한국의 정치문화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연구가 있으므로 여기서는 간단히 요약하기로 한다.
(1)제정일치와 지도자의 가부장적 권위 유교문화권에서는 정치권력자가 제사를 독점하여 주재하는 제정일치 유형이 나타난다. 제사가 종교적 사제자에 의해 행해지기 보다는 정치적 권력자에 의해 조직적으로 운영되었다. 그런데 중국과 한국의 유교는 차이가 있다. 중국의 경우 유교는 의인된 초월자인 상제가 공자에 의해 천으로 대체된 뒤 송대의 주염계가 周易의 음양론을 받아들이면서 太極으로 바뀌었다가 주희에 의해 理라는 추상적 개념으로 굳어져 성리학이 발전한다. 현세에 대한 개념은 천에 대칭되는 地 또는 人, 태극에 대립되는 無極, 이에 대치하는 氣 등으로 인성과 신성의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한국인의 경우 천인합일설, 역경, 이기론에서와 같이 신성과 인성 사이의 구분이 모호하며, 무속신앙과의 밀접한 관계로 인해 연결소통, 상호보완 등으로 이해된다. 세속주의적이며 인간중심적인 것이 한국유교의 특징이다. 따라서 무속신앙과 결합하여 정치권력을 신격화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2)정치권력의 정통성 유교적 정치권력의 정통성은 왕도로부터 온다. 왕도의 조건은 첫째, 세습적 왕권, 둘째, 신성과 인성의 조화를 실현할 수 있는 지혜, 세째, 학습을 통해 얻어지는 지식, 네째, 윤리성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정치적 정통성은 물리적 힘뿐 아니라 윤리적 당위성이 중요한 것으로 치지와 명덕을 통해 획득한 윤리적 우월성을 토대로 피치자에게 윤리적 모범이 되어야 한다. 유교국가는 정치공동체이면서 동시에 윤리적 공동체이다. 여기서 유교 공산체제의 지도자들이 한결같이 사상가로 자처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3)정치권력의 행사 정치권력의 행사는 가족의 어버이같은 지도자가 덕치를 이루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권력의 남용을 규제할 장치가 없고 대부분의 지도자가 평범한 인간으로서 권력을 남용하는 경향이 있었기에 유교의 덕치의 이상에도 불구하고 현실정치에 있어서는 전제정치로 나타났던 것이다. 또한 유교는 가부장적인 권위주의 정치체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것은 인간관계의 서열성과 위계성을 강조하는 특징 때문이다.
(4)피치자와의관계 유교사회에서의 관계는 가족구성원의 관계에서 유추되는데, 가족이란 정(情)의 공동체이므로 유교적 인간관계에 나타나는 계서적 질서는 언제나 정의적 (情宜的) 관계를 수반한다. 사회관계에서도 정의적 측면이 중시되며, 권력관계와 경제관계와 나란히 정의적 차원이 설정된다. 따라서 유교문화코드에서는 정이 수반된 계서적 관계속의 인간들의 공동체가 출현한다 (유정환 1995).
(5)정치문화 유교와 무속신앙의 혼합은 조상숭배로 나타났으며, 개인의 이해보다 가족이라고 하는 집단을 중시하는 가족주의를 강화시켰다. 개인은 가족이라고 하는 집단 내의 엄격한 위계질서에 복종하고 집단이 요구하는 제 규범에 얽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김일성은 이러한 문화전통을 다음과 같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데 이용했다. 첫째, 김일성을 어버이로 보는 관념이다. 정치권력을 가족의 어버이로 상징화하는 것보다 유교 사회에서 그 정통성을 공고히 하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정치지도자는 혈연적인 관계로 맺어지며, 설사 권력의 남용이 있다해도 거역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북한의 집단주의 사상을 강화한다. 사회 전체를 하나의 가족으로서, 김일성을 어버이로서 개념조작함으로써 "하나가 전체를 위하여 전체가 하나를 위하여"가 먹혀들어 가도록한다. 이러한 개념조작 하에서 개인의 권익의 신장이나 시민사회의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셋째, 사회주의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권력 세습을 정당화한다.
3.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식민통치의 전통
천황을 신성시하는 일본의 지배는 정치권력의 세속화에 전혀 이바지 하지 못했고 오히려 정치권력과 종교적 신성성의 밀접성, 제정일치성에 대한 정향에 이바지 했다. 그들은 정치권력이 어떻게 신도라는 민속종교를 이용하여 신격화를 강요함으로써 절대적인 충성을 요구하고 억압정치를 하는지 예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한국정치의 근대화와 세속화에는 전혀 기여하지 못하고 그 상흔은 오랫동안 정치문화에 남게된다. 결국 북한의 주민들은 신화와 미신의 민속신앙적 삶의 형태 속에서, 일본의 신격화된 천황숭배를 강요받다가, 김일성의 지배하에 들어가는 것이며, 근대민주주의가 탄생할 수 있는 평등, 개인주의, 자유, 권력의 세속화를 전혀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즉 그들에게 있어서 정치권력의 신격화는 익숙해져 있는 문화여건이며, 오히려 권력의 세속화가 그들에겐 낯설은 현상일 수 밖에 없다.
IV.북한의 세속화: 반종교적 정치체제의 구축과 신격화
1.북한의 종교관및 종교정책의 변천
김일성은 초기에는 맑시즘의 종교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를 답습하였으며, 권력장악 후 북한의 종교를 철저히 탄압하여 70년대에 이르러서는 지상에 종교가 없는 유일한 나라를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그는 종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다. "종교는 반동적이며 비과학적인 세계관입니다. 사람들이 종교를 믿으면 계급의식이 마비되고 혁명하려는 의욕이 없어지게 됩니다. 결국 종교는 아편과 같은 것입니다" (김일성저작집 5권 , 154). 북한의 철학사전에서는 불교가 브라만교와 카스트제도를 반대하는 귀족계층과 평민상층부의 정치적및 종교적 요구를 반영하여 발생했다고 보고, 그 기본교리는 모두 황당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불교는 4세기 후반부터 우리나라에도 침습하여 봉건통치배들이 인민을 기만하고 억압착취하기 위한 사상적 도구로 복무하였다"고 설명한다 (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1981; 최봉익 1976). 한편 유교는 철학적 사회정치적 사상으로 다루어지며 봉건유교사상은 "유교교리를 내용으로 하는 봉건통치배들의 보수적이며 반동적인 사상"이라고 정의된다. 봉건유교도덕에 대해서는 인의예지 삼강오륜이 중앙집권적 봉건제도, 봉건적 가족제도를 비롯한 봉건제도와 질서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진것으로서, " ...우리 인민의 사상, 정치생활과 윤리도덕에 막대한 해독을 끼쳐왔다"고 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신영하 1976). 그러나 후기에 가서 특히 김정일의 등장과 함께 김일성의 신격화가 가속화되면서 주체사상이 종교적 진리를 포함한다는 주장을 하게 된다. 마르크스주의는 종교를 부정하지만 주체사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의 사회적 생명을 중요시하는 점은 주체사상의 종교적 측면이다. 그러면서 주체사상과 종교의 접목을 통하여 주체사상을 하나의 종교적 교리로 부각시키는 노력이 경주된다. 즉 의식적으로 주체사상을 종교화하려는 노력이 경주되는 것이다. 북한의 종교정책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나와있다 (윤이흠 1990; 박완신 1988; 전현정 1987; 윤동현 1986; 고태우 1992; 법성 1990). 여기서 간단히 그 반종교정책의 실태를 요약하자면 1945년에서 60년대까지는 종교의 제거기로서, 외형적인 종교형태가 완전히 제거되는 시기이다. 70년대는 종교부재의 갈등기로서 주체사상을 강조하면서 종교부재의 갈등을 겪는 시기이다. 이 기간 중 북한에서는 불교, 천도교, 기독교 등의 종교단체들이 부활되었으나 이는 남북교류분위기에 편승한 전술상의 변화일뿐 "신앙의 자유"를 허용한 것은 아니다. 이시기에 북한의 종교정책은 통일전선의 맥락에서 남한의 반정부 종교인사를 포섭하려는 의도에서 전개된다. 1980년대에서 1991년까지는 해외 동포들의 북한방문, 국제환경의 변화에 따른 표면적 종교형태의 외부적 표출기이다. 대내적으로는 종교탄압과 폐쇄정책을 강화하고 대외적으로는 서방권 국가의 종교인과 단체에 문호를 개방 (1981), 가정예배처소나 보현사 공개, 성경의 번역출판사업 (1983-84) 등의 방법으로 종교자유가 보장된 것처럼 선전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김일성의 종교에 대한 태도에서 변화가 주목된다. 김일성은 제 2차 범민족대회를 앞두고 발표한 담화 "우리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자" (91년 8월)에서 "종교를 믿게되는 것은 대체로 현실생활에서의 고통과 불행을 숙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내세에 가서라도 행복한 생활을 누려보자는 염원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종교를 믿는 사람을 나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1992년 이후는 표면적 종교의 확장기이다.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이 채택된 이후 1992년 4월 개정된 헌법에서 북한은 그동안 비판의 표적이 되었던 "반종교선전의 자유"를 삭제하고 제 68조에는 종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 이 권리는 종교건물을 짓거나 종교의식같은 것을 허용하는 것으로 보장된다. 누구든지 종교를 외세를 끌어 들이거나 국가사회질서를 해치는데 리용할 수 없다" (통일원 1992). 북한은 사회주의 헌법개정 이후 "조선말 대사전"에서 종교에 대한 정의를 객관적 표현으로 바꾸었다. 92년 5월에는 빌리그래함 목사가 방북하여 봉수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하였다. 또한 92년 11월에는 김일성 어머니의 이름을 딴 반석교회 (칠골교회)가 세워져 개신교회가 두개가 되었다.
2.신격화과정
김일성의 신격화과정에서 교리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주체사상이다. 주체사상의 핵심은 수령으로서, 주체사상은 수령의 유일사상으로서 수령의 생각과 행동, 지도이념을 반영하는 것이다. 수령은 단순한 정치적 지도자가 아니라 근로인민대중의 최고 수뇌이며 통일단결의 중심으로서, "그 누구도 지닐 수 없는 비범한 예지와 고매한 공산주의 덕성, 한없이 넓은 포용력, 탁월한 영도력을 지니고 근로인민대중의 혁명투쟁 전반을 통일적으로 지휘하는 최고 영도자"로서 정의된다. "민족의 운명은 탁월한 수령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절대적 진리이다" (조선사회민주당 1995,39). 수령은 정치적 생명을 주는 "생명의 근원"이며 나아가 영생의 근원인데, 여기서 주체사상의 종교성이 출발한다 (박영철, 1990). 이러한 수령의 개념은 1952년 12월 15일 개최된 당중앙위원회 제 3기 제 5차 전원회의때 김일성의 연설후 장내에는 "우리의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에게 영광을 드린다"는 환호성이 퍼진데서 시작된다 (김일성 1954, 337). 그러나 초기에는 소련의 강한 견제, 소련 내의 우상화반대 움직임 등으로 본격적인 우상화는 없었다. 소련에서 스탈린이 사망하고 후르시쵸프가 등장하여 스탈린격화운동을 벌이면서 국내에서도 연안파, 소련파 등에 의한 김일성 개인 우상화반대 움직임이 강화되자 1956년 소위 "8월 종파사건"이 있었고 1958년 12월부터 1960년 말까지는 대숙청사업이 전개되었으며 일인독재정치를 위한 우상화작업이 시작되었다. 61년에서 66년은 일인체제 구축시기로서 김일성에 의한 우상화작업이 강요되며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역사조작이 이루어지고 초상화, 사진, 석고상이 등장한다. 이에 반대하는 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도 전개되었다. 62년에서 72년은 김일성 유일사상 구축기이다. 1967년 7월부터 김일성은 공식적으로 위대한 수령으로 불리우기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72년까지 유일사상이 구축된다. 이때부터 수령은 최고의 뇌수이며 통일단결의 중심이라는 개념으로 정착된다. 1972년에는 개헌을 통해 주석제가 신설되어 김일성이 정신적 제도적 측면에서 유일지배체제를 구축하였다. 72년 삼대혁명소조가 조직되고 "혁명은 대를 이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되기 시작하며 1973년 9월 김정일이 노동당 선전선동담당비서가 되고 사실상의 후계자로 부상한 이후 후계자의 유일지배체제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80년대에 김정일이 공식적으로 후계자가 되면서 김정일에 대한 신격화 작업이 본격화되었다. 김정일은 "당중앙"으로 부상하고, "혁명은 혁명전통을 이룬 김일성의 뜻을 아는 그 아들만이 계승할 수 있다"고 주장되고, 김정일이 "향토의 별"로서 부상되었다. 김일성의 신격화 내용을 보면 역사의 조작을 통해 항일유격활동 지도자로서 신격화가 이루어 졌고, 공산주의 지도자로서의 탁월한 천품이 강조되었다. 한편 김일성의 혁명사상이 그의 가계의 전통을 이어 받아서 나온듯이 위장하기 위해 가계의 신격화가 이루어졌다. 증조부 김응우, 부친 김형직, 모친 강반석, 작은 삼촌 김형권, 동생 김철주, 외조부 강돈욱이 모두 영웅적이었다. 물론 이를 뒷받침할만한 역사적 자료는 부재하다 (서극성 1978). 김정일에 대한 신격화작업은 1980년 10월 제 6차 당대회에서 김정일이 정치국 상무위원과 군사위원회 위원 등의 요직을 차지하면서 후계자로 부상하면서 부터이다. 수령의 신격화가 정식화된 것은 1986년 수령.당.인민이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이루고 이 생명체의 뇌수는 수령이 된다는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이 김정일에 의해 제시되었을 때이다. 이것은 1986년 7월 "주체사상교양에서 제기되는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라는 논문에서 체계화된다.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은 김정일의 논문 {주체사상에 대하여} (1982)에서 그 개념이 처음 나타난다. 이 담화의 의미는 1982년까지 막연히 제시되었던 사회정치적 생명문제를 체계화시켰다는 점과 우리민족 제일주의를 표방하였다는 것이다 (김정일 1986). 1990년대에 김정일은 인민의 운명을 책임진 혁명의 지도자, 위대한 수령, 친애하는 아버지 등의 호칭으로 불리우게 된다. 김일성 사후 김정일의 신격화과정을 보면 탁아소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집중적인 신격화가 이루어지며 특히 김일성 종합대학 역사학부에 속해 있던 "혁명력사학과"를 김일성학과와 김정일학과로 분리하여 김정일의 위대성을 조작하고 있다. 또한 혁명사적지 조성, 구호나무 조작, 전설집잘간, 불명의 꽃이라는 김정일화, 금강산 등 명산에 김정일 어록및 이름새기기 등으로 상징물을 통한 우상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3.신격화과정에서의 종교의 이용
(1)무속신앙적 요소 전술한바와 같이 비범한 인간에 초월적 성향을 부여하고 신격화하는 것은 무속신앙의 일반적 정서이다. 김일성의 신격화 과정에는 무속신앙의 일신, 성신, 산신숭배의 정서가 활용되고 있으며, 그가 시조신적인 지위를 차지한다. 북한에서 출판된 다음과 같은 책들에서 그 정서를 발견할 수 있다.
일신: 등대사, {사천만의 태양} (평양: 등대사, 1969); 조국통일사, {수령님의 따사로운 보살핌 속에서} (평양: 조국통일사,1973); 강경도, 김경무, {영원한 해발 } (평양: 근로단체출판사, 1989); 평양출판사, {향도의 태양} (평양: 평양출판사, 1994); 오룡복, {해와 별 우러러} (평양: 금성청년출판사, 1987); {영원한 친위전사} (평양: 근로단체출판사, 1983); 최국범, {인류의 태양} (동경: 삼학사, 1982); 신덕규, {주체의 태양} (평양, 1979).
성신: 유희준, {조선의 별 노래 부르며} (평양:금성청년출판사, 1991); 김주영, {민족의 향도성} (동경: 구월서방, 1990).
산신: 차용구, {혁명의 성지 백두산 밀영} (평양: 금성청년출판사, 1992); {백두산 전설} (평양: 근로단체출판사, 1981); 리을실, {백두의 령장} (평양: 금성청년출판사, 1994); 조선로동당 량강도 위원회, {수령님과 백두산} (평양: 금성청년출판사, 1988).
김일성의 신격화는 과거의 시조신과 같이 탄생에 대한 신화의 조작으로 시작된다. 김정일에 대해서도 유사한 신화가 창조되고 있다. 그는 1942년 2월 15일 시베리아 툰드라 권에 속하는 아무르강 유역에 있는 와트꼬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를 신격화하기 위해 백두산 정기를 타고났다는 백두산 밀영출생신화를 조작했는데, 백두산은 민족의 성산으로 산신 숭배의 대상이 되었던 곳이다. 다음은 김정일의 탄생에 대해 {아동문학}(1995.5)에 게재된 "백두광명성 전설"을 요약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어느날 별안간 앞못보게 된 금동이에 관해 전개된다. 1942년 2월 중순 (즉 김정일의 생일을 전후해서), 그 여자친구 달레가 밤하늘을 바라보니 백두산 위에 솟은 장군별이 있었고 그 옆에 아직 보이지 않던 새별이 또 하나 솟아나 눈부신 빛을 뿌리고 있었다. '그 새별은 달처럼 점점 더 커지는 듯 싶었다... 그 중 한가닥의 빛발이 명안수를 내리비쳐 주었다. ....달레는 얼른 자그마한 쪽박에 샘물을 가득 떠서 금동이에게 주었다....' 그랬더니 장님의 눈이 떠졌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할아버지에게 하자 할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는 것이다. '천기변화는 다 뜻이 있거늘 예로부터 하늘에 새로운 별이 뜨면 나라에 성인이 내린다 하였는데 이것은 필시 삼천리 강산에 또 한분의 위인이 내리신게 분명하구나. 그 새별의 빛발이 명안수에 닿아 너에게 광명을 주었은즉 그분의 위덕이 묘향산에 비꼈구나. 그 분의 영기를 받은 이 묘향산은 장차 만방에 빛을 뿌리는 천하명산으로 될 것이 틀림없느니라.'"
한편 김일성과 마찬가지로 김정일도 신출귀몰하는 술법의 소유자인데, 천지확장술이 있어서 김정일이 손을 번쩍들면 조화부리던 자연도 머리를 숙이고 손길이 닿으면 바다가 옥토로 변하며 발길이 한번 미치면 심산계곡도 낙원으로 변한다고 주장된다. 김정일에 대한 다음과 같은 찬사들 속에서 무속신앙의 신격화 (일신, 성신, 장군신, 시조신)와 기타 전통종교의 정서를 발견할 수 있다.
- 태양의 위업을 태양으로 이어가시는 위대한 령도자 (일신) - 인류의 태양 - 민족의 향도성 (성신) - 민족의 태양 김일성 장군, 그 태양빛 이어갈 백두광명성 - 비범함: - 세기의 위인 . "하늘이 낸" 절세의 걸출한 위인. 사상리론의 영재 - 지인용을 겸비하신 장군중의 장군 (장군신 숭배) - 천하술법을 지니고 계시는 천출령장 김정일 장군님 - 하늘이 낸 단군민족의 하늘령수.(단군신앙적 요소)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과 김정일의 어머니 김정숙의 신격화에서 무속신앙의 성모신 숭배의 정서를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의 동상은 북한의 도처에 있으며 정기적인 참배의 대상이 된다. 그들에 대한 많은 책이 출판되어 북한여성들은 각종 정치교양을 통해 "강반석 녀사를 따라 배우자"와 "주체형의 혁명투사의 빛나는 귀감이신 김정숙 녀사"를 수백번 암송하고 생활화하도록 되어 있다. 강반석 녀사는 조선여성으로서의 덕성과 공산혁명에의 헌신및 적에 대한 증오와 불굴의 투쟁성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며, 이것이 주체적 여성의 특성으로 북한여성의 사회화에 이용되었다 (조선민주녀성동맹 중앙위원회 1967). 1970년대 초 김정일의 권력세습이 확실시되면서 그의 생모 김정숙에 대한 신격화 과정이 가속화되었는데,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정숙 여사는 영생하였으며, 그를 따라 배우는 것은 영원한 생을 받아 안는 것이라고 한다.
(2)유교적 요소 김일성과 김정일을 단순한 지도자가 아닌 어버이로 칭하며, 수령을 아버지로, 노동당을 어머니로 대비하여 국가를 하나의 커다란 가족으로 상징하는 것은 유교적 정서이다. 따라서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것이 인륜지사인것처럼 인민은 어버이 수령에게 효성과 충성을 다하고 수령은 자식인 인민들에게 육신적 배려를 한다. 대를 이어 충성한다는 세습체제의 구축 역시 가부장적 유교개념아래 쉽게 수용되었다. 김정일에 대해서 그의 지적 능력이 강조되는 것 역시 왕도의 조건과 덕치를 논하는 유교문화의 전통이다. 다음과 같은 신격화 내용에서 유교문화의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 위대한 주석의 숭고한 천품을 그대로 이어 받으심(세습 강조) - 주석의 위업에 끝없이 충실하심(가족주의) - 령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풍모와 자질을 최상의 수준에서 체현(덕치강조) - 민족의 위대한 어버이 - 권위있는 철학가, 리론가.(지적 능력 강조)
(3)기독교적 요소의 활용 김일성은 "하나님을 믿을 바에야 조선의 하나님을 믿어야지 무엇때문에 미국의 하나님을 믿겠습니까"(허정숙 1988,159) 라고 하면서 북한을 "지구상에서 종교가 사라진 유일한 나라" 로 만든 후 스스로 조선의 하나님의 위치에 올라갔으며 단군과 같은 국조신의 위치에서 인민의 경배를 받고자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 기독교적 요소가 도용되었다.
가.영생, 영원불멸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어 그를 믿는자들에게 영생을 은혜로 주신다는 것은 기독교 구원진리의 핵심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육체와 영혼으로 되어 있으며 영혼은 불멸한다는 것도 그러하다. 주체사상은 교묘히 영생과 영원불멸이라는 종교적 개념을 신격화에 활용한다. 주체사상의 생명을 집단적으로 정의한다. 개인이 자기 생명의 모체인 수령, 당, 대중에게 충성다하는 것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지니고 있는 사회정치적 생명의 근본요구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라고 주장된다 (리경남 1992). 또한 수령은 사회정치적 생명의 근원이며, 영생의 근원이다. 집단주의적인 사회정치적 생명이 개인적 육체적 생명보다 귀중한 제일 생명이라는 것이 주체적 관점이다. 사회정치적 생명의 모체는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이다. 1986년 7월 15일 김정일은 <주체사상 교양에서 제기되는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에서 수령은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중심이라는 고전적 정식화를 제시하였다. 개별적 사람의 생명의 중심이 뇌수인 것처럼 수령은 사회정치적 생명의 생명활동을 통일적으로 지휘한다. 이러한 관점은 기독교에서 연유한 고전적 조합주의와의 유상성으로 인해 "북한적 조합주의"라고 명명되기도 한다 (Cummings 1983,269-94). 다른 점은 하나님이 김일성으로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각 개인은 당조직을 통해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중심인 수령과 조직사상적으로 결합되어 당과 운명을 같이 하게 될때 영생하는 사회정치적 생명을 지니게 된다. 따라서 영생을 실현할 수 있는 참다운 길은 공산주의 리념을 실현하기 위한 성스러운 투쟁이다. 김일성이 영원불멸하며 불멸의 업적이 만대에 빛난다는 영원의 개념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나.사랑의 개념 기독교에 있어서 하나님은 사랑이며, 인간을 사랑하며, 예수를 통해 구원받은 인간은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받는다. 북한에서는 사랑의 개념을 즐겨 사용하며, 사랑이 주체사상에 의해 과학적으로 해명되었다고 주장한다. 사랑 역시 집단적으로 김일성 중심적으로 해석된다. 사랑은 "사회적 인간의 본성적 감정으로 사회적 집단의 고유한 생리"라고 정의된다 (김룡진 1992, 30-32). 사회적 인간은 집단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을 결합시키고 집단을 위한 활동에서 참사랑의 감정을 표출하고 구현한다. 수령, 당, 대중을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맺어주는 원동력 역시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이다. 영원한 사랑은 오직 수령님의 빛발 아래서만 개화된다. "세계가 처음보는 한없이 폭넓고 영원한 사랑, 우주와도 같이 공간적으로 무한하고 시간적으로 무궁한 사랑은 오직 위대한 수령님과 영광스러운 당 중앙의 빛발 아래서만 찬란히 개화 만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남순 1983, 135). "위대한 수령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은 실로 그 넓이와 깊이를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되는데, 이것은 성경의 하나님에 대한 표현과 동일하다.
다. 긍정적 사고/범사에 감사함 성경 데살로니가 전서 5:16-18 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고 있는바, 기독교의 특성중에는 긍정적 사고와 범사에 감사함을 빠뜨릴 수 없다. 북한 주민은 범사에 김일성에게 감사하고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이 김일성에게 온 것으로 감사하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도록 교화된다. 김일성은 "무슨일이든지 성공여부는 그 일을 맡아 하는 사람들의 사상 정신상태에 달려있다"고 주장했으며 (허정숙 1989, 50), 모든 공식석상과 출판물에 정치적 대상은 최상의 찬사로 미화되며 부정적 언사는 허용되지 않는다.
라.낙원 북한인민은 북한체제가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지상의 낙원이라고 교육받는다. "오늘 우리 인민들은 완전한 정치적 자유와 권리를 가지고 자주적 인간으로서의 가장 값높은 정치생활을 하고 있으며 고상하고 풍부한 사상문화생활과 건전하고 평등한 물질생활을 누리고 있다" (로동신문 90/12/11, 1). 또한 "조선은 인류에게 확고한 미래를 담보해 주는 이상사회"라는 것이다.
"우리 조국은 자유에 대한 인간의 갈망이 가장 아름답게 꽃핀 세상의 첫나라, 주체의 락원 인민의 락원 행복의 락원입니다. 위대한 수령님은 우리의 태양 우리 인민은 그 빛으로 반짝이는 뭇별 오, 우리는 이렇게 사는 것이 좋다 영원히...영원히..." (주민 1990,27)
(4) 조선민족제일주의와 민족문화복건사업 김정일은 1986년 7월 15일 "우리 민족제일주의" 또는 "조선민족제일주의"를 주장하며 민족문화복건사업을 전개하게 된다. 주체사상에서 사회주의가 퇴조하고 계급적 관점이 약화되는 대신, 민족주의개념을 전면화하면서 전통종교를 활용하면서 민족대단결론, 민족전통문화계승발전에 노력하고 있는 것은 대내외적으로 불리한 현국면으로 부터 탈출하려는 방어적 성격이 있고, 김정일 후계체계의 공고화작업과도 무관한 것이 아니다 (전상인 1994). 이것은 사회주의가 혁명적인 새로운 문화를 창조한다고는 하나 과거 역사와의 단절이 불가능하며, 인민이 혁명에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동일화되기 위해서 필요하고, 또 전통문화가 김일성 김정일의 신격화 세습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이우영 1993). 무엇보다도 자신과 자신의 가계를 신격화하고 시조신화하려는 김정일의 영성과 관계가 깊다. 그들은 "우리 민족제일주의의 원천력에서 근본 핵을 이루는 것은 가장 위대한 수령과 지도자를 모신 우리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라고 주장한다 (고영환 1988,38). 민족문화 복건사업으로서 1992년 5월 김일성은 황해도 개풍군에 있는 고려태조 왕건의 무덤을 방문하고 "왕건이 우리나라의 첫 통일국가를 세운사람"이라고 말하고 왕릉의 증축공사를 지시했다. 공사는 1994년 1월 31일 완성되었다. 또한 1992년 5월에는 발해유적 발굴조사사업을 연해주에서 대대적으로 벌인바도 있다. 93년 5월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왕릉과 개성시의 오아건왕릉, 고려 성균관, 대성산의 광법사, 정릉사 등 많은 건축물을 복원하였다. 그중 단군릉의 발굴은 주목할 만하다. 북한사회과학원의 단군릉 발굴보고문에 따르면 93년 10월 발견된 단군릉의 남자 뼈에 대한 연대측정의 결과 지금부터 5천 11년전의 것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는 것이다 (북한문제조사연구소 1993). 북한은 "단군릉"을 개건하고 "반만년 단일민족 혈통의 상징"이며 "민족의 원시조"로서 민족의 유구성과 단일성을 상징하는 단군을 내세우고 있다 (조선사회민주당 1995.1, 52). 이와 함께 북한은 조선의 역대를 고조선-고구려-발해-고려-조선-북한인공국으로 보고 신라통일시대를 말소하였다. 그 의도는 첫째, 통일시대를 내다 보면서 고려연방제 실현을 위한 민족대단결론의 당위성을 내세우기 위한 것이다. 둘째,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을 부정하고 평양에 역사적 정통성을 이음으로써, 북한이 통일의 주체가 되려는 시도이다. 평양이 우리 민족의 발상지이며 단군조선이 건립한 첫수도인 성지였다고 하면서 그 정통성을 북한이 이어받으려는 것이다. 셋째, 시조신 단군을 부상시킴으로써 김일성과 김정일의 신격화에 민족사적 정통성을 부여하려는 의도이다.
(5) 주체사상과 종교의 공식적 접목시도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1990년대에는 김정일에 의해 주체사상과 종교교리와의 접목이 시도된다. 이것은 주체사상이야 말로 모든 종교의 핵심적인 진리의 규합이라고 주장하기 위한 것이다. 먼저 천도교를 보면, 천도교의 지도자 최덕신은 1988년 김일성이 천도교의 숭배대상인 한울님이라는 "김일성 그이는 한울님"이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그이는 우리 민족, 우리 인민 속에서 나신 만사형통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한울님>>이시다. 그이께서는 인간이 지닐수 있는 모든 지혜와 능력, 지향과 념원을 한몸에 체현하시고 그것을 천품으로 지니신 인류의 심장이시며 뇌수이시다. 그이께서 한번 손을 높이 드시면 온겨레가 산악처럼 일어서고 그이께서 한번 말씀하시면 만민이 우러러 화답하여 열광하고 그이께서 한번 웃으시면 우주가 평안을 느끼며 그이께서 바라시면 사나운 광풍도 물러나고 해와 달도 머리를 숙여든다"(최덕신 1988, 283).
천도교에서 말하는 한울님은 우주의 대정신을 인격화한 것으로 우리 겨레의 민족신이라 한다. 제일먼저 자기를 수양하고 고양된 인간이 도달해야 할 최고의 지, 인, 용을 갖춘이가 한울님으로 된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그러한 한울님의 모습으로 가까와져 드디어 우주는 한울사람으로 화한다는 것이다. 불교의 경우 북한 불교도연맹 위원장 박태호에 의하면, 불교가 인간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는 사상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주체사상과 공통된 일면이 있다는 것이다. 아집과 욕망의 부정, 진실한 인간애와 인류에는 주체사상과 공통된 일면이다. 인간 개개의 생명은 유한하지만 개인의 생명이 사회적 생명과 연결될때 영원하다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일즉다 다즉일의 사상과 통한다는 것이다 (정태혁 288). 또한 우리민족 고유의 선사상은 주체사상에 의해 과학이론적으로 완전무결하게 체계화되어 현실로 활짝 꽃피게 되었다고 주장된다 (김수란 1992). 서경덕의 기일원론적 철학, 즉 세계의 본질, 시원이 기이며 세계의 모든 것이 기로부터 발생하고 자체로 끊임없이 운동한다는 기 사상에 대해 이를 한국의 유물론 사상으로 해석하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93). 1990년대에는 주체사상과 기독교의 접목이 시도되었다. 김일성은 "온 세상 사람들이 평화롭고 화목하게 살기를 바라는 기독교적 정신과 인간의 자주적인 삶을 주장하는 나의 사상은 모순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일성회고록 제 1권, 104). 조선기독교 연맹의 고기준 목사는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기독교 사상은 같은 것이며 기독교 정신은 북한의 정치제도에서 그 완성을 보게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완신, 183).
V.결론 마르크스는 종교가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을 착취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며 인민의 의식을 마비시키는 아편과 같다고 하였다. 이것은 종교에 대한 극히 편파적인 인식이지만, 북한에서의 종교와 정치의 관계에 대해서는 정확한 진단인 듯하다. 기존의 정치학이 북한의 정치를 종교적 영역에서 분리하여 다루는 경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정치는 아직 종교로부터 분리되어 세속화되지 않은 영역이다. 그 뿐 아니라 기존의 모든 종교가 탄압되는 대신 정치지도자가 신적 존재로 부상하는 독특한 신격화체제의 성격을 띄고 있다. 본고에서는 전통사회의 종교와 정치의 관계를 신격화, 제정일치, 국교의 세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였고, 세속화 유형에 따라 종교지배적 정치체제, 종교중립적 정치체제, 반종교적 정치체제를 구분하였다. 이렇게 보았을때 한국의 전통문화는 엘리트 차원에서 유교의 제정일치적 성격과 백성의 차원에서 무속신앙의 신격화적 정치문화가 공존하였다고 보여진다. 북한은 외형적으로는 반종교적 정치체제이지만 그 내용상에 있어서는 아직 세속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신격화체제의 성격을 다분히 띄고 있는 것이다. 무속신앙이 정치에 미친 영향은 신내림, 초인간적 신성과 초자연성이 정치권력의 정통성의 기반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무속은 사회의 엄격한 위계질서를 정당화하였으며 지배계층에 신성에 이르는 우월성을 부여하는 기능을 하였다. 엑스터시적인 정치문화, 신적 존재와 정치체계의 상호의존적 관계도 무속의 영향이다. 한편 유교는 중국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세속주의적이며 인간중심적인 성격을 띄고 무속신앙과 결합하여 정치권력을 신격화하는데 일조한다. 지도자의 혈연과 학문및 윤리적 자질을 중시하는 왕도, 덕치, 가부장적 권위주의, 가족주의 등이 북한정치에 영향을 미치고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세습통치를 정당화한다. 36년간 조선을 지배한 일본의 천황신격화는 정치권력의 세속화에 전혀 이바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치권력의 신격화라는 전통을 남긴다. 북한은 유물론적 공산주의에 입각하여 철저하게 종교를 말살하고 억압하지만, 정치지도자가 스스로 신적 존재가 되어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 되었고, 정치지도자는 이러한 사회의 종교성을 권력기반 구축에 활용한다. 김일성 김정일및 그 가족의 신격화 과정은 의도적이며 조직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해와 별, 산과 강과 용 등 무속신앙적 신화가 창출되었고 다양한 상징물의 조작이 이루어졌다. 김일성과 그의 가족은 국조신의 위치에 올라갔다. 유교에서의 어버이의 개념은 인민의 충성을 도출하는 유용한 것이었다. 국민의 유교적 문화에 부응하고 이를 활용하기 위해 김일성과 김정일의 지적 능력과 덕성이 강조되었다. 기독교의 영생, 영원불멸, 사랑,범사에 감사함, 낙원의 개념은 주체적으로 개조되고 활용되었다. 조선민족제일주의와 민족문화복건사업은 왕건, 동명왕, 단군릉 등 시조신의 복원으로 이어졌으며, 특히 93년의 단군릉의 복건은 시조신을 부상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신격화에 민족사적 정통성을 부여하려는 의도를 배경으로 이루어졌다. 최근에 와서는 천도교, 유불선, 기일원론 등 전통종교에 주체사상을 접목시켜 주체사상이 이들 종교의 완성이라는듯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북한의 정치는 유물론적 공산주의의 반종교체제가 아니라, 오히려 유사종교체제, 그것도 무속신앙적 정치문화로 특징지워지는 체제로서의 종교성을 갖는다. 이것은 북한주민들이 갖고 있는 김일성에 대한 집단적 열광 정서와 김일성 신격화에 대한 대중조작의 특징을 밝혀내는데 많은 것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북한 정치의 종교성을 감안할 때 통일 이후 정치적 동질성의 회복에 있어서 정치권력의 세속화에 우선 순위가 주어져야 한다고 본다. 근대적 정치사회화를 통해 정치권력이 무속신앙적 정서에서 분리되어 세속화되어져야 할 것이며, 인민의 권력에 대한 합리적 태도를 배양할 수 있는 구체적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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