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7/30 9월에 생각한다 -정치 -
주 준희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교수. 정치학)
개혁은 성공해야 한다 개혁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모처럼 나타난 기독교 정치가의 "정직과 진실이 승리하는 사회, 정의가 강물같이 흐르는 사회"라는 비젼이 이 땅위에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우리는 이 사회의 부정부패를 퇴치하고, 번영하는 민주사회를 이루어, 복음 안에서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우리는 아세아태평양시대의 강대국으로, 아세아 복음화의 주역으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인가. 개혁은 성공해야만 한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 그리고 그것은 믿는 사람들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필요로 한다. 이제는 우리의 교회도 민족과 국가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주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해야 할 때이다. 우리 안의 하나님 나라가 누룩과 같이 이 세상에 번져감으로써 기독교 문화가 창달되도록 하여야 한다. 개혁의 성공은 변화하는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다수의 지지자를 필요로 한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지도자의 비젼과 추진력을 뒷받침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개혁을 붙들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간사하다. 그동안 높이 앉아 거드럭 거리던 사람들이 사정의 매서운 칼 앞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질 때에는 그것 참 속시원하다고 박수를 보냈지만, 경제가 쉽게 개선되지 않고, 물가가 오르고 실업이 해결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어제의 영웅으로부터 돌아서기 쉽다. 그래서 자고로 개혁의 지도자를 실추시키려면 경제를 파탄내면 되는 것이다. 이미 실업율이 6년만에 최악을 기록하고 있으며 경기회복이 이루어 지고 있지 않다. 동대문과 남대문의 재래 시장들은 계속되는 불경기로 8월 동안 거의 한달간 휴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노무라 종합연구소가 전망했듯이 내년부터는 아시아 신흥공업지역 국가들 가운데 가장높은 8.1%의 경제성쟝률을 기록할 가능성도 있다.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젖과 꿀이 흐르는 자유의 땅 가나안으로 자신들을 이끌어낸 하나님의 택하신 지도자 모세에게 충성과 지지를 보내기는 커녕, 환경이 좀 불편해지자 곧 먹을 것이없다 마실것이 없다 불평하고 불신하며 반역을 일삼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사람들은 옛날 괴롭던 시절을 쉽게 잊고 현재의 작은 문제에 불만불평하는 법이다. 고라당처럼, 자칫 그것이 민주적이라고 생각하고 반역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공동체와 가나안의 비젼을 위해 자발적으로 인내하며 리더를 따르는 백성이다.
집단이기주의의 위협 급격한 근대화와 산업화의 결과 우리 사회는 무척 다양해지고 분화되어 다양한 계층과 이익집단이 존재한다. 지금까지는 개혁과 사회정의의 실현이라는 일반적 원칙에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하더라도, 개혁의 구체적 정책들에 대해서는 다양한 집단의 이익이 균열될 것이며 갈등을 노정하게 될 것이다. 다양한 집단들이 민족사회의 개혁과 발전이라는 공익보다는 배타적이고 극단적인 집단이기주의 투쟁에 몰두함으로써 개혁에 장애가 되고 있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한의사와 약사의 분쟁, 정부의 긴급조정권이 발동되고 직장폐쇄까지 결정되었던 울산현대 쟁의 사태등 문제들에 의해 개혁정부가 비틀 거렸고, 보사부와 노동부의 효율성에 대해 여론의 질책이 있었으며 기득권층은 이에 힘입어 개혁에 제동을 걸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악성적인 노사분규는 수 조원에 달하는 엄청난 재정적 손실을 내고 기업의 위축, 국민경제의 침체, 국민생활의 불안등의 결과를 가져 옴으로써 특히 우려의 대상이 된다. 물론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근로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은 민주사회에 있어서 당연하고도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대화와 타협 보다는 "죽을수는 있어도 질 수는 없다"는 식의 전쟁을 방불케 하는 강경투쟁으로 점철되는 집단이기주의로서의 노사분규는 개혁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한가하게 노사분규로 인해 수 조원에 달하는 경제손실을 내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일본과 선진제국들은 엄청난 자본과, 자원과, 기술을 가지고서도 아시아의 추적에 대비하여 자국경제를 지키기 위해 신보호주의에 앞장서고 있으며 유럽통합과 NAFTA 등 지역경제블럭화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중국이 경제 초강대국이 되리라는 예측도 있으며, 북한은 핵을 놓고 미국과 흥정을 하고 있지 않은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의 레스터 서로 교수에 의하면 21세기는 1993년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연초에 이루어진 유럽 통합과 함께 21세기 경제전쟁의 막이 올랐기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유럽 공동체가 지배적 경제권으로 부상할 것이며, 그와 경쟁할 수 없다면 21세기 경제전쟁에서 낙오자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노사관계 한국자본주의가 한국병을 치유하여 다시 도약하기 위해서는 기독교 문화와 가치관 속에 새로운 노사관계가 정립될 필요가 있다. 아담스미스도 칼 마르크스도 아닌 그리스도 안에, 사랑을 통한 진정한 인간관계의 회복에 노사분규의 해결책이 있다. 무엇보다도 사농공상이라 하여 육체적 노동을 경시하고 인간 사이에 차별을 두며 위계질서를 두는 유교적 사고방식에서 탈피하여, 성경이 제시하는 노동의 진정한 의미가 회복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위해서 모든 사람에게 지위와 일을 주셨다. 인간은 노동을 통하여 이웃과 하나님을 섬김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노동은 괴롭고 천한 것이 아니라 축복과 섬김으로써 그 의미가 회복되어야 한다. 직업에의 성실은 하나님의 뜻이며 일터란 단순한 작업장, 생산장이 아닌 삶의 터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노동은 물질획득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행동, 사랑의 행동이기 때문에 노사관계에 있어서도 임금과 이윤만을 생각해서는 안되며 인간관계와 인간의 성취와 보람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직장폐쇄까지 이른 현대중공업의 경우 사용자는 임금 4.7% 인상 (3만 5천 5백원), 노동자는 6.1%인상을 내세웠으나 이보다는 다른 문제들이 타결되지 않아 직장폐쇄와 강경투쟁으로 맞섰었다. 현대중공업사태의 경우 회사측의 전근대적인 노무관리와 조합원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노조의 정치투쟁이 빚은 합작품이었다. 임금인상 자체도 중요하지만 기업가의 권위주의적인 경영 자세, 비인간적 차별대우, 노동자들이 관리직에 비해 느끼는 소외감, 상대적 박탈감등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분규를 격화시키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일터를 제품의 생산장이 아닌 "삶과 진정한 노동의 터전"으로 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되는 것이다. 두번째로,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노동자와 사용자는 지위에 귀천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능력과 은사, 책임과 권위를 가지고 상호협조하여 이웃과 사회와 하나님에 대하여 섬기는 일을 하는 한몸의 여러 지체라는 인식이 확립되어야 한다. (고전 12:12-20 참조) 세번째로, 자본주의의 물신숭배와 경쟁주의가 경계되어야 하며 청지기정신으로 재물이 다루어 져야 한다. 경제발전과 풍요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물신숭배와 퇴폐향락을 가져오기 쉬운 시험이 될 뿐이다. 예수님께서는 곳간을 더 크게 짓는데만 급급한 사람들을 정죄하셨고, 이땅에 보물을 쌓지 말고 하늘에 쌓을 것을 설파하셨다. 재물로 인해 사람의 구원이 위태롭게 되기도 하고, 부자는 재물로 인해 교만함과 자기본위에 빠지는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있는 자는 가진 것을 모두 팔아 이웃에 나누어 주어야 천국에 들어 갈 것이라고 하였다. 즉 재물은 하나님께 속한 것을 위임받아 이웃을 위해 관리하는 것이며, 경제적 권리보다는 경제적 의무가 중요하다는 가치관이다. 네번째로, 분배의 정의가 이루어 져야 한다. 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그 재산의 사용에 대해 헤아림을 받게 될 것임을 말한다. "옷 두벌 있는자는 옷없는 자에게 나누어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자도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눅 3:11). 우리가 진정한 크리스챤이라면 우리의 집을 집없는 사람들과 (사 58:7) 우리의 음식을 주리는 자와 함께 나누고 우리의 자유조차 갇힌 자들과 더불어 나누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분배의 정의가 폭력에의해 이루어져서는 안되는 것이며 그것이 구원의 복음보다 우위를 차지할 수도 없다. 예수님은 부의 재분배를 명령해 줄 것을 요구하는 형제에게 "누가 나를 너희의 재물 나누는 사람으로 세웠느냐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 "(눅 12:15)고 하여 그것이 기독교의 우선 가치가 아님을 분명히 하셨다. 분배의 정의는 자발적인 사랑의 행위에 의존해야 하며 합의를 거친 정당한 과정이어야 한다. 또한 법적 제도화, 즉 금융실명제의 실시나 부동산 투기의 근절, 정당한 초토세의 적용등 제도적 개혁을 통해 왜곡된 분배구조를 바로 잡아 가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다섯번째로, 노동자와 기업가의 상호호혜의 윤리가 확립되어야 한다. 노동자는 자신의 일을 섬기는 일로서 기쁘게, 정직하게, 성실하게 행하고, 동료와 상사와의 협조관계를 이루고 섬기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기업과 기업주를 사랑하고 설사 고용자가 까다롭다 할지라도 순복해서 성실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이다. (엡 6:6) 반복되는 악성 노사분규에는 반드시 기업인의 경영자세 문제가 있는 법이다. 기업인은 하나님 앞에서 고용인을 공정하게 다루고 애로점들을 배려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 기업이 이윤추구의 장일 뿐 아니라 각 노동자의 꿈과 이상을 실현시키는 삶의 터전이 되도록 하며 각자의 은사가 최대한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최선의 배려를 해야 한다. 기업가는 모든 사람을 말단 직원까지 한몸의 지체로 생각하고 존중하며 섬기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고 스스로 검소한 생활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노동자들의 주택, 자녀교육, 생활자금대부등 복지에 관심을 가지고 경영에 노동자의 동반자적 참여를 증진시킴으로써 노동자들이 부당한 임금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발전과 성취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신념을 심어 주어야 한다. 기업가는 또한 이윤을 부동산 투기등 한탕주의에 돌릴 것이 아니라 기술개발에 투자하고 보다 많은 노동자의 고용을 창출하는 성실한 태도를 가져야 할것이며, 무엇이 바람직한 사회발전, 지역발전인지를 염두에 두고 기업을 운영하여 그 이윤을 적절히 사회에 환원시켜야 할 것이다.
신한국의 가나안을 향하여 개혁은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민주주의의 명분 하에 집단이기주의를 내세우고 문제를 일으키는 고라당 같은 사람들이 아니다. 모세가 보낸 열명의 정탐꾼처럼 개혁에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사람들이 아니다. 민족의 미래에 대한 비젼을 하나님 안에 가지고 참고 인내하며 맡은 몫을 다하는 여호수와와 갈렙같은 사람들이다. 우리 민족에 대한 공동체 의식 속에,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고통을 분담하는 각자의 충성과 지지가 필요하다. 모든 국민이 각자가 속한 곳에서 하나하나 개혁의 주체가 될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신한국의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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