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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발표용 요약본 '98.6

한국의 통일과 교회의 역할

 

              주 준희 (정치학박사, M.Div.)

I. 서론

   소련이 붕괴하고 이전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자유화되며 개방개혁정책을 추진하고 독일의 흡수통합이 이루어 졌음에도 한국만이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아 있는 20세기 말의 상황에서, 통일에 대한 열망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다.  한국의 분단이 근본적으로 남북 국민의 선택이 아닌 역사적 상황 속에서 강대국의 결정에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분단의 원인이 되었던 냉전의 당사자들이 더이상 경쟁자가 아니며  모든 공산주의 국가들이 개방개혁과 자유화를 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독 한반도에만 분단이 지속된다는 것은 오직 인간의 비합리성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민족이 평화통일을 이루어 21세기 아시아태평양시대에  손을 마주 잡고 통일된 세계 중심국가로서 세계선교를 담당하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 한국기독교인의 공통된 비젼이며 소망이다.  21세기를 앞둔 시점에서 북한의 식량난, 남한의 IMF등으로 남북이 공히 시련을 겪고 있지만 이것은  통일을 향하여 더 빨리 나아가게 하는 풍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의 통일에 있어 필수적인 것은 북한의 개방개혁과 남한의 검소, 절약, 저축, 내핍, 과소비 억제와 절제의 습관이다.  또한 통일이후 대량실업사태  (주로 북한의 )가 예상되는바, IMF는 이에 대한 예방주사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북한과의 소득격차가 가급적 적은  상태에서 경제협력을 통해 함께 발전해 가는 것이 통일비용부담의 충격을 완화하며 통일을 앞당기는 길이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통일은 무척 가까이 온듯하다.
   물론 통일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점진적 평화통일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면서도, 인간의 비합리성 때문에 가장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체제붕괴, 전쟁, 흡수통일 같은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에 의해 통일이 급진적으로 이루어 질 가능성도 많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통일이 되더라도 우리는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또 수동적으로 통일을 기다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우리"속에는 물론 교회가 포함되며, 사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 본 논문의
기본 주장이다..
   한국의 교회는 지금 당장 통일이 되더라도 북한에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파하며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구제하며 개인과 사회의 상처를 치유하고 북한주민이 예수를 믿어 영생을 얻고 복받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섬기며 사랑 속에 통일이 이루어지도록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 뿐 아니라 사회 각처에서 활동하는 평신도들의 활동을 통해, 그리고 교회의 공식적 활동을 통해, 통일을 준비하고 통일에 유리한 환경을 적극 조성하며 통일이 하나님의 뜻속에서 이루어지도록 관심을 가지고 적극 통일과정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교회는  신자들이 모여 예배하고 교제하는 "xx교회"와 같은 공식명칭으로 대변되는 가시적 공적종교집단뿐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보내신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의 불 가시적인 집단을 총칭한다.  통일에 있어서 교회의 역할은 공적종교집단으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소명에 충실한 평신도의 역할을 포함하여 논의 될 것이다.  과거에 통일을 위한 교회의 역할을 논의하는데 있어 공적 종교집단으로서의 교회의 역할에 중점을 두어 상당히 제한적인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통일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각분야의 평신도들이 어떻게 기독교적 가치관 속에서 각자의 활동을 통일과 교회와 조화시킬수 있는가에 관심이 주어져야 한다.
   80년대 중반 소련의 개방개혁과 함께 탈냉전기로 접어들면서, 한국에서는 88년 NCC의 통일선언과 이에 대한 보수진영의 공방이 시작되면서  통일신학을 정립하고 교회가 통일에 준비하기 위한 노력이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다.  남북나눔운동등 신학적 중도를 표방하는 평신도운동들도 나타나고 있다.  개교회와 교단별로 많은 북한선교연구기관이 수립되어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제는  신학자와 선교학자, 그리고 일선의 목회자와 평신도전문인들 사이에는 원활한 대화와 협력을 통해 다양한 시각을 종합하고, 통일을 대비한 구체적인 정책을 수립하며 교회간 협력의 제도화를 앞당기고 교회 안에 실질적인 프로그램을 이행하며 전문적 복음사역자와 평신도 선교사를 집중 훈련 양성할 시기, 즉 교회의 적극적 행동과 실천의 시기이다.
   본 연구의 목적은 한반도의 통일과정에서 한국교회가 어떠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지를  고찰하여 통일에 대비한 구체적 정책및 전략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한국교회의 역할을 통일신학의 정립, 통일환경의 조성, 통일과정에의 참여, 통일이후 사회에의 준비로 나누어 제시하고자 한다.  연구자가 전공한 정치학, 신학, 여성학의 시각에서 주로 논의되었으며, 따라서 그 분야에만  집중된 경향이 있다.  앞으로 다양한 분야의 시각이 합하여 선을 이루어 통일에 대비하는 총체적 전략이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II. 통일신학의 정립

    1. 통일신학  정립의 필요성과 방법

    통일을 준비하는 교회의 일차적인 과제는 복음을 모르고 지옥의 심판으로 갈 수밖에 없는 동족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파하여 그들도 우리처럼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아 영생의 소망을 갖고 복받은 삶을 살게 하는 것이며 북한에도 하나님 나라가 확산되게 하는 것이다.
    북한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작업은 "알곡을 뿌리고 가라지를 뿌리지 않도록" 하나님 나라의 건강한 씨앗을 준비하는 것이다.  어떤 씨앗을 뿌릴지 씨앗에 대한 신학적 입장이 정립되어야 한다.  일례로 봉수교회에서의 문익환목사의 부활절 설교, 조동진목사의 김일성종합대학에서의 강의, 통일희년신학, 민중신학 등을 보면,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에 대해서는 말이 없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우리를 위해 어떠한 은혜를 주셨는지의 증언이 없고, 복음에 공산주의의  옷을 입혀 마치 예수가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자인양 복음을 상황화하고 있는데, 그러한 복음이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고 영생을 줄수는 없다.  복음의 본질을 변화시켜셔는 안된다.  기독교 종교의 중심진리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참되심과 그의 공의로우심과 영광을 견지하는 일이요, "그의 보내신자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을 온세계에 이루어 나가는 일이다.  
     따라서 통일에 대비하는 교회의 우선적인 과제는 분단과 통일, 북한선교에 관한 신학적입장을 정비하는 것이다.  또한 공산주의, 주체사상, 수령론, 신격화와 조선민족제일주의및 민족문화 복건사업, 주체사상의 혼합주의에 대한 복음주의 입장에서의 명확한 변증 (apologetics)이 제시되어야 한다.    통일 이후의 바람직한 사회상에 대한 기독교인의 비전이 성경의 진리에 입각하여 제시되어야 한다.  이것은 통합론적 사고에 기초한 신학, 선교학과 정치학의 대화를 필요로 한다.
   기존의 한국의 통일과 교회의 역할에 대한 논의를 볼 때  평신도학자들의 논의는 신학이 약하고, 신학자들의 논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가 약한 경향이 있었다.  앞으로는 신학, 선교학과 일반학문과의 대화와 학제간 협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2. 국제환경의 변화와 한국교회통일론의 변천

      기존의 한국교회 통일논의는  국제정치환경의 변화에 따라 냉전기(1945- 1972), 데땅뜨기(1972 - 1986), 소련의 개방개혁시기(1986-1989), 그리고 소련의 붕괴 및 탈냉전 신국제질서시기 (1989-현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냉전기의 승공통일론

   2차대전 직후 소련이 발틱 3개국, 동유럽, 터키, 그리스, 이란, 몽고, 베트남, 북한, 중국 등으로 진출하면서 이를 "무신론적 악마의 제국의 세계적화야욕"으로 인식한 미국의 봉쇄정책이 채택되고 한국전쟁으로 냉전이 국제화되었으며 북한공산주의에 의한 교회의 핍박이 시작된 시기에 교회는 반공, 승공통일의 입장을 택했다.  혹자는 "민족의 화해와 서로간의 용서를 먼저 추구했어야 할 기독교가 '북진통일론'을 넘어서지 못했던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본다"고 하며 분단에 있어서 교회의 책임을 논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당시의 국제정치의 현실과 공산주의의 종교에 대한 근본적인 적대성을 무시하고 "민족의 화해"라는 추상적인 단어에 맹목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이데올로기적인 입장이라고 생각된다.   지금의 시점에서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며 보다 나은 길이 있었다고 비판하기는 쉽지만, 한편 교회는 당시의 긴박한 상황에서 가능한 모든 정보에 입각하여 가장 합리적인 정책을 세울 수밖에 없다.  냉전기라는 국제 정치적 상황에서 한국의 교회가 민족의 화해를 내세웠다고 통일이 앞당겨졌을 리 없으며 그러한 입장은 오히려 베트남 공산화와 같은 결과로 이어졌을 수 있다.  민족통일을 앞장서서 부르짖던 월남의 불교승려들이 통일이후 제일의 숙청대상이 되고 종교의 자유를 박탈당한 사실은, 어떤 종류의 통일이건 통일이 우선 이라는 통일지상주의에 경종을 울리는 역사적 예이다.

(2)데땅뜨 기의 선민주화 후통일론

   1970년대의 브레턴우즈체제의 붕괴, 데탕트와 월남전쟁에서의 패전이후 미국에 "회개의 정치"가 나타나면서, 십자군적 정신으로 민주주의와 자유우방을 수호하는 역할을 자처하던 기독교 국가 미국에도 실수와 문제가 있고 공산주의체제에도 배울 점이 많다는 수정주의 및 외교상의 신고립주의의 대두와 함께, 한국에서는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었고 유신독재가 시작되었으며 KNCC는 '교회와 사회위원회', '인권위원회' '기독교 신앙과 이념문제협의회'등을 통해 인권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그러나 아직 교회가 통일문제에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지는 못했다.

(3)소련 개방개혁기의 NCC의 통일선언

   1980년대에는 국제 정치적으로는 소련에서 골바쵸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정책이 시작되는 시기에 국내에서는 광주사태이후 반미감정과 주사파, 마르크스레닌파등의 반체제적 급진적 통일론이 강화되면서 북한은 그 동안의 종교말살정책에서 종교이용기로 들어가 남한의 반체제적 기독교인과의 통일전선을 위해 평양에 봉수교회를 세웠으며, 신학적으로는 민중신학, 해방신학, 혁명신학등 상황신학들이 남한의 통일과 교회의 역할에 대한 신학적 논의를 주도하였다.
북한은 남한에서의 민중봉기를 통해 친북적 정권이 들어서고 고려연방제적 통일을 이루어 결국 김일성 주석의 품에 남북이 안기기를 소망하였고, 김일성은 1995년을 통일의 해로 선포하고
통일거리가 건설되었으며 , '통일아 이제는  더 못 참아'라는 가요가 유행하였다.
   이러한 국내외 상황 속에서 1986년 9월 스위스 글리온에서 만난 남북교회는 1988년 2월 KNCC 의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의 선언'이 있은 후 11월 스위스 글리온에서 '제2차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협의회'로 열려 김일성이 정한 1995년을 통일의 희년으로 함께 선포하였다.  희년통일신학은 구약의 희년법이 지향하는 해방, 노예의 귀향, 토지소유권의 회복과 빚탕감, 땅의 휴경으로부터 불의한 사회적 구조 때문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의 법적 권리, 기본적 생존권회복, 자연에 대한 생태학적 고려를 주장하면서 정의실현과 화해를 주장하였다.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포로된 자들에게 해방을, 눈먼 자에게 눈뜸을, 억압받는 자들에게 해방과 구원을 선포하는 희년선포의 정신이 현시기의 통일희년운동에 있어서도 관철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89년에는 문익환목사, 임수경, 문규현신부의 방북운동과 함께 통일에 대한 기대가 고조되었다.  이러한 80년대의 통일신학은 주로 자유주의 신학, 상황신학, 민중신학, 해방신학, 혁명신학, 종교다원주의 성향 등으로,  엄청난 복음의 진리를 협소한 이데올로기로 왜곡하고 축소하는 위험이 있었으며  또한 정치적 행동에 있어 낭만적 통일지상주의로 공산주의의 통일전선전략에  이용당하는 인상이 짙었다. 

(4)복음주의 통일운동의 대두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인간의 방법과 달랐던 것 같다.
1989년 소련의 붕괴와 함께 역사는 예측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전개되어 갔다.  동유럽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민주화를 택하고, 북한과 쿠바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공산국가들이 개방개혁을 추구하는 가운데, 공산주의가 실패했으며 "20세기의 희귀한 에피소드"로 남게되리라는 예측이 지배적이 되어 갔다.  북한은 90년 이후 마이너스 경제성장을 거듭하게 되었고,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95년과 96년의 수해는 기아사태를 유발하여 경제위기를 맞게 되었다.  남한은 문민정부로의 정권이양,  여야의 평화적 정권교체등 비서구국가에서 보기 어려운 민주화를 이루어가면서 GNP 10000불 시대를 자축하며 샴페인을 터뜨리다가 98 년  현재 IMF 의 시련 속에
경제개혁의 힘겨운 길을 가고 있다. 
   소련의 붕괴, 독일의 통일로 "북한의 붕괴에 의한 흡수통일" 과 같은 시나리오가 가능하게 됨에 따라, 90년대에는 복음주의 권에서도 통일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NCC와 같은 통일 신학적 열정이나 행동력있는  리더십은 아직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NCC의 통일선언이후 복음주의 권은  이를 비난하는 성명서를 저마다 발표했지만, 희년통일신학에 필적할만한 복음주의 통일신학은 아직 체계적으로 제시되고 있지 않다.   김영한 교수가  1988년 5월 제시한 "십자가적 정치신학"으로서의 통일신학은  분단된 민족의 고통과 고민을 주님이 주신 십자가로 맏아들이고 이민족의 통일을 한국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야적 구원행위와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행위의 지평 속에서 소망하고 믿음으로 시행해나가야 한다고 보았다.   김영한의 연구는 분단의 신학적 의미- 우리자신과 민족의 죄과 - 를 규명함으로써 민족현실과 교회현실을 분리시켜 생각하는 근본주의적 사고에 전환을 시도한 의미를 갖는 한편, 분단이 우리 민족의 죄과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라는데 논쟁의 여지가 있겠고, 제 3의 길에 대한 구체성이 결여되는 등, 정치적 처방이 약한 듯하다. 
   한편  복음주의 권에서는 "하나님 나라운동"의 신학적 바탕을 74년의 로잔언약에 두고 서서히 사회참여를 통한 하나님나라 확장운동에 나서기 시작했으나 ,    주로 "북한교회재건운동" "북한선교회" 설립, "북한선교센터"등 에 시각이 제한되는 한계점이 있고, 교회가 민족교회로서 민족의 아픔에 동참하고 통일을 위해 기여하고자 하는 열의가 부족했다고 생각된다.
   이제는 복음주의 교회가 통일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할 때가 되었다. 
그것은 통일을 교회와 분리된 세속적 영역이 아니라 바로 교회의 과제로 인식하고, 선교를 선교사에 의한 말씀전파와 영혼구원뿐 아니라, 복음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토양의 조성과 양육까지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평신도 역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일꾼을 준비하고 훈련하며 구체적인 정책방향을 수립하는 것이다.

   3. 통일과 교회의 역할에 대한 통합론적 접근의 필요성

(1)두가지 오류에 대한 경계

   한국의 통일과 교회의 역할을 논의할 때 다음과 같은 오류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첫 번째로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주로 보수 복음주의 진영에서 발견되는 시각으로서,  극단적인 이원론의 입장에서 통일과 교회를 명확히 구분되는 별개의 영역으로 이해하여 교회는 영혼구원의 비정치적 영역으로서 선교는 성직자들에 의해 비정치적으로 전개되어야 하고 통일은 세속적, 현실적, 정치적 문제로서 정치가들이 해결할 문제라는 생각이다.  이들은 "통일이 되면 우리가 선교하겠다"고 말하지만 "통일을 이루겠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통일과 교회는 현실에 있어서 밀접하게 상호작용 하는 영역이며, 교회의 임무는 영혼구원뿐 아니라 그 결과로 이웃사랑이  실천되며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확대되게 하는 것이다. 특히 그것은 분단으로 고통받는 민족에게 평화와 화해와 통일을 가져오도록 노력하는 임무를 포함한다.   북한선교에 있어서는 선교풍토를 조성하는 평신도의 역할이 중요함이 인식되어야 한다.통일은 교회의 진정한 역할이 없이는 이루어 질 수 없다.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제도화만으로는 진정한 통일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성령의 역사를 통한 교회의 희생적인 사랑과 섬김과 상처의 치유야말로 분단된 민족을 하나되게 하는 진정한 세력이 될 것이다.  교회는 공적조직으로서, 또 평신도들을 통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체제가 하나님의 정의와 뜻에 맞게 발전하고 있는지 감시하고 비판할 예언자적 의무가 있다.
    선교역사는 교회가 정치에 잘못 종속되거나 무관심할 때 선교에 막대한 지장을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16세기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프랑스, 네델란드등 기독교 국가의  "God, Glory, Gold"를 내세운 남미, 인도, 동남아지역에서의 제국주의는 국가권력이 선교를 표방하면서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복합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정치 경제적 목적이 선교적 목적을 압도함에 따라 선교의 열매를 맺는데 실패하였다. 
   19세기에는 영혼구원을 추구하던 선교사들이 "제국주의의 앞잡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고, 기독교는 서구 제국주의의 종교로 인식되었고, 중국을 비롯한 대다수의 아시아 국가들에 있어서 저항민족주의는 개신교 선교를 거부하였던 것이다.  교회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정치경제 사회적 오류를 시정하지 못함으로써 선교에 시행착오를 가져온 역사적인 예이다.  영국이 제국주의정책을 쓰는데 영국 선교사가 전하는 복음이 인도 민족주의자에게 받아들여 질리 없다. 
   공산주의가 대두하게 된 배경에는 19세기 초 자본주의의 모순을 보면서도 사회현실에 무관심 내지는 불간섭하였던 교회의 책임이 없지 않다.  교회가 자기가 속한 사회의 정치 경제적  불의에 대해 침묵하였기 때문에, 교인들의 정치 경제적 삶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제국주의나 공산주의는 교회의  영혼구원 사역에 치명적 타격을 입히고 장애의 벽을 두껍게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거의 역사는 예를 들어서, 남한이 북한에 복음을 전하는 국가가 되는 경우, 남한정부의 정책이 제국주의적이 되지 아니하고, 북한을 살리며,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짐을 담당하며" "으뜸 되는 자가 섬기는" 정책이 될 수 있도록 교인들이 각자가 속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교회가 압력단체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선교의 한 부분임을 깨닫게 한다. 
    통일과 교회의 역할에 대한 논의에서 두 번째로 발견되는 오류는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주로 진보 자유주의진영에서 발견되는 것인데 교회를 통일에 종속시켜서 기독교의 복음을 정치적 평화와 해방으로 왜곡 해석하는 문제이다.  이것은 복음의 내용을 변질시키는 것으로서 복음주의 입장에서 가장 경계하는 오류이다. 
    KNCC의 통일선언, 즉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에서는 예수그리스도가 '평화의 종'으로 이 땅에 오셨으며 분단과  갈등과 억압의 역사 속에서 평화와 화해와 해방의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다고 하고 있는데, 여기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 메시야, 어린양, 인간을 위해 피흘려 죄사함과 의롭다함을 얻게 하고 중생 하여 영생의 소망을 얻게 하는 영적인 측면은 모두 희석되고, 마치 인간간의 갈등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제한된 목적을 위한 운동가로 축소시키고 있다.  인간사회의 화해와 해방은 구원의 결과이지 목적이 아니다.  민중신학과 해방신학, 혁명신학은  예수를 불의한 사회구조에 항거하는 민중의 계급투쟁의 영웅으로, 축소 왜곡한다.   또한 분단이 모든 악의 근원이며, "분단의 극복이 악의 제거요 악에서의 구원"이라는 것은 지나친 비약으로 구원의 진정한 의미를 왜곡하는 것이다.  모든 악의 근원은 근본 적으로 인간의 죄성이며, 인간개인의 밖인 사회구조에 핑계가 돌려 지면 안되겠다.  구원은 한 인간의 영혼이 회개하고 믿음으로 죄사함 받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며 사회구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2)통합론적 사고의 필요성

    이와 같은 두가지 오류를 경계하면서, 통일에 있어 한국교회가 효과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통일과 교회, 넓게는 정치와 종교의 관계에 대한 보다 창조적이고 통합적인 사고가 보다 적절하다고 본다.  교회는 통일의 능동적 주체가 되어야 하며, 통일은 민족이 화해하고 평화 하여 세계선교로 나아갈 수 있는 필수전제조건이다. 
   남북한의 분단은 가시적인 영토의 분단과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분단뿐 아니라, 불 가시적인 영적 분단을 포함한다.  세계사의 전개과정은 하나님의 구속사,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고자 하는 세력과 이에 대한 방해세력과의 영적 갈등의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통일은 영적 분단의 극복이 수반될 때만 온전해질 수 있다.  분단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 그리고 죄성의 결과라면, 진정한 통일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인한 죄사함과 구원, 하나님과의 화해와 믿는 자의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것은 영적 투쟁에서의 승리,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의미한다.
   통일은 북한을 복음 화하고 통일된 세계 중심국가로서 세계선교를 향해 나아가는 중요한 전기로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통일과정에 생기는 고통과 문제점은 교회에도 영향을 미친다.  교회가 통일과정에 적극 참여하여 고통을 최소화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민족교회의 역할을 담당해야만 한국교회의 미래가 있다.

(3) 통일선교학의 전환적 사고

   선교란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도하기 위해 복음을 들고 문화의 경계를 넘는 것이며 또한 사람들을 권하여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게 하여 교회의 책임적인 일원이 되게 하여 성령이 인도하시는대로 전도와 사회정의를 위한 일을 하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이 정의는 서구신학에 있어서 영혼구원과 사회참여의 논쟁을 복음주의적으로 절충한 입장이다.  그러나 공산권이나 이슬람같이 "문화의 경계를 넘는 것"자체가 금지되어 있는 지역에 대해서는, 문화의 경계를 넘기위한 방법까지가 선교의 개념과 전략에 포함하는 전환적 사고가 필요하다.
    선교의 방법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모색될 수 있다.  예수님의 씨뿌리는 비유는 좋은 예이다.  씨를 뿌리는 것뿐 아니라, 가시덤불을 걷어 내고 돌을 고라 내고 거름을 주어서 좋은 토양을 만드는 것도 선교의 중요한 방법의 하나이다.  땅을 준비하는 작업, 계절과 날씨를 선택하는 작업, 씨를 뿌리는 작업, 그리고 돋아난 싹을 돌보고 양육하는 것이 통합적으로 선교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과거에는 선교를 "신학을 전공한 복음사역자"를 중심으로 하여 북한선교라 하면 방송선교, 문서선교, 밀수꾼선교, 연변조선족을 통한 선교등 전문 복음사역자의 활동을 중심으로 모색되었고, 따라서 아직도 그 효과가 미미한 현실이다.  북한은 정치적으로 복음에 대해 폐쇄되어 있는 나라이다.  북한 선교는 씨앗을 뿌리기 전에 우선 폐쇄된 장벽을 열고, 아스팔트를 깨서 땅을 일구어 옥토를 만드는 준비작업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가시적 교회가 아닌, 정치경제사회문화분야의 평신도들의  조화로운 활동을 필요로 한다.  즉, 북한선교의 개념에는 "선교토양의 조성"과, 이를 한 평신도의 역할 및 평신도 훈련의 중요성이 포함되어야 한다.
    북한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선교사가 직접가서 교회를 세우고 활동하는 것 뿐 아니라, 각분야의 평신도들의 활동을 통한 "토양을 준비하는 작업"이다.
즉 정치권력을 세속화하고, 종교중립체제를 구축하며, 종교자유를 보장하고 인권사상을 확립하는 것, 새로운 정치사회화와 시민교육등이 모두 북한선교를 위한 정치적 차원에서의 전략이 될 수 있다.  선교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복음전파를 위한 총체적 활동을 포함한다.  따라서 교회는 공적활동과 평신도의 활동을 통해 통일환경을 조성하는데 적극 참여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절대무오한 성경에 계시된 복음의 중심은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이 유일하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받고 중생 하여 하나님의 자녀 되며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구원받은 인간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믿음을 실천하며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신시키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 구조적 해방이나, 평화와 같은 한시적이고 상대적인 가치에 비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엄청난 영적 은혜이며 축복이다.  그야 말로 복된 소식이다.  마치 기독교복음이 공산주의나, 주체사상이나, 타종교과 동질적인 것인 것처럼 왜곡하고 저하시키고 변질시켜서는 안 된다. 

(4)공적종교집단으로서의 교회와 평신도 역할의 조화

    한편 통합론적 접근의 방법론에 있어서, 정치와 선교의 통합에서 오는 문제점을 인지하고 뛰어넘어 긍정적 방향을 지향할 수 있는 고도의 소피스티케이션이  필요하다.  교회는 비둘기같이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로울 필요가 있다.  단순한 통합자체만이 선은 아니며 이분 화된 양 영역의 통합자체는  긍정적인 결과와 부정적인 결과를 다 가지고 올 수 있다.  교회가 통일에 이바지하고 통일이 교회에 기여하는 plus - sum 의 결과 뿐 아니라, 자칫 정치적 목적에 교회가 이용되는 zero sum의 결과도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교회가 통일에 이용되어서는 안되며, 통일이 교회의 사역을 방해해서는 안되며,  통일이 선교에 이바지 할 수 있도록 교회는  주도적으로 상황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의 아마추어적인 정치참여는 위험하여 그보다는 오히려 교회가 비정치적이라는 비난을 받는 것이 더 유익할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한국의 통일과정에 있어서 교회는 평신도전문인의 역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활용하며 지원해야 할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각분야에서 학자로서, 전문인으로서 활동하고 있는 평신도들에게 있어서 각자의 전문분야와 기독교적 관점 사이에는 묘한 단절고리가 있는 듯 느껴질 때도 많다.  현대의 사회과학에 있어서 "기독교적 시각"이라는 것은 비과학적이고, 주관적이고, 비경험적인 것으로서 학문의 논의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학자들간의 토의와 의견교환의 주제가 되지 못한다.  한편 신학에서 "기독교 사회윤리"는 때로 현실에 대한 소피스티케이트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현대사회에서 묘하게 기독교와 단절되어 있는 학문들을 기독교에 비추어 점검해보는 노력이 지원되어야 한다.  그럴 때 사회 속에 보내어진 평신도 선교사들의 역할을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 각분야에 서 활동하는 평신도들이 무엇이 기독교적인 것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서로 대화하고 발전해 의견을 수렴하고 의식을 개혁할 수 있는 세미나, 심포지엄, 좌담회 등을 지원하여 그들이 각자의 속한 분야에서 선교의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한편  공적 종교집단으로서의 교회의 역할은 보다 신중할 수밖에 없다.  교회집단 자체가 민주화, 인권문제, 세속화 등을 주장한다면 아직 통일이 안된 과정에서 북한은 경계심을 가지고 오히려 더 복음에 방어적 태도를 취할 수 있다.  교회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당신들의 체제나 지위나 기득권을 위협하려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해서 당신들이 구원받아 영적 축복은 물론 이 땅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도록 돕는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한편 일단 통일과정에 들어가서는, 교회의 정치적 태도가 분명하게 요구되고 이것이 복음 화에 유리할 경우, 종교집단으로서도 정치적 태도를 분명히 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공적 종교집단으로서의 교회는 남한의 정치 경제적 이익에 입각한 남한민족주의를 넘어서서, 남한 교회의 입장을 넘어서서, 북한주민의 이익을 진정으로 생각하여 희생하고 섬길 수 있는 입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4. 분단대립하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교회의 입장 정립
  
   통일 이후의 사회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무엇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회인가에 대한 비젼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유주의, 자본주의, 공산주의, 민족주의등 근대의 분단대립하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기독교적 시각에서의 고찰과 교회의 입장 정립이 있어야 할 것이다. 북한의 신격화, 주체사상, 수령론과 사회생명체론등에 대해서도 복음주의 입장에서의 변증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논문은 세미나를 위한 요약본이므로 전체의 균형을 위해 이 문제에 관한 필자의 논의는  간단하게 요약 제시하는데, 너무 설명이 부족한 것같아 죄송하지만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데오롤기는 인간의 정치사상이다.  따라서 시간과 공간에 제한되는 상대성을 띄고 있다.  근대의 우상은 이데올로기이다.  인간이 만들었으면서도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의 경배를 받고, 결과적으로 전쟁과 파국과 재앙을 가져 온다.  교회는 하나님의 구속사에 비추어 이데올로기의 상대성을 바라보고, 편협하고 경직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한민족의 미래에 가장 합당한 정치경제체제를 하나님 안에서 모색해야 할 것이다.

(1)민족주의

   한국교회는 특히 통일에 대비하여 민족의 비극에 눈물흘리고 통일을 염원하며 하나님의 뜻에 맞는 통일이 이루어지도록 적극 동참하는  민족교회가 되어야 한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소속감과 애착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으며, 사도바울이 유대에 대해 느꼈던 민족주의, 그리고 구약전체를 통해 나타나는 유대인의 민족주의처럼 국가와 민족에 대한 애정과 충성심으로서의 민족주의는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또한 근대사는 배타적 민족주의이데올로기에 의한 전쟁과 갈등으로 얼룩져 온 것도 사실이다.  아시아의 각지역에서 서구의 선교가 실패한 것은 서구 제국주의에 대한 아시아 저항민족주의가 전통종교와 결합하여 두터운 장애를 형성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독교 선교에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이것이 "서구의 종교", "제국주의의 앞잡이", "반민족적 종교"로 인식되며 저항민족주의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북한을 비롯한 아시아지역의 선교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점을 시사한다고 본다.
첫째, 기독교를 서구 제국주의로부터 분리하여 각 민족을 위한 종교로 정착시켜야 한다.  물론 그 복음의 진리의 절대성은 불변하며 상황화될 수 없다.  그러나 그 형식은 얼마든지 전통문화와 결합할 수 있으며 해야 한다.  즉 교회건축양식, 찬송가, 교회에서 예배방식, 각 지역사회에서의 조직방식등은 민족정서에 맞는 방향으로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문화선교사역자가 양성되어야 한다.
둘째, 이미 선교지에 세워진 자국민에 의한 교회에 의해 복음화가 이루어지도록 지원하며, 자국민 지도자를 양성지원해야 한다.
셋째, 선교사는 타민족의 민족주의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 겸손하고 섬기는 자세로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 "이방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 모두 하나"이기 때문이다(갈 3:28)  선교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자신의 민족주의를 초월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와 언어와 종족의 장벽에 상관없이 그리스도 안에 한 형제자매로 여기며 잃어진 영혼을 구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넷째, 교회는 각국 민족주의의 진정한 주체가 되어야 한다.  복음이 전파되는 지역의 민족적 자긍심을 존중하고 민족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종교가 되어야 한다.  또한 "우상숭배"라는 요소를 조심스럽게 배제하면서, 민족의 전통문화중 긍정적 요소를 발굴하여 살리고 발전시켜 새로운 토착화 기독교문화를 발전시키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다섯째, 타민족의 전통종교와 민족주의의 밀착된 관계가 이완되는 것이 필요하다.  신사참배를 해야 일본인인 듯이 생각되는 문화에서 한 개인이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대단히 용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2) 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가 서구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비서구지역에서 자국가의 상황과 동떨어져 이를 보편이념으로 추구하는 경우 상당한 혼란과 좌절을 겪어 오기도 했다.  기독교와 민주주의의 관계는 사실 단순하지 않다.  기독교문화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했으며, 지금도 전세계의 민주주의 국가와 기독교문화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도 한국, 필리핀등 기독교인의 수가 높은 국가에 민주화가 이루어진 확률이 높다.  
    성서에 나타난 바람직한 정치체제는 반드시 민주주의라고 이름할 수는 없지만, 근대 서구의 역사상황 속에서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로 발전해 나갈 씨앗을 성서에서 발견할 수 있다.
즉 섬기는 권위(servant leadership), 권위의 근원을 하나님께 두고 지도자, 정부, 국가의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난것이므로 언제나 보다 높은 하나님의 뜻, 정의에 의해 규제받게 된다는 주권사상과 법치주의,  개인의 존엄성 및 인권에 대한 신념, 자유, 평등, 정의와 사랑의 보편성이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보편규범들은 믿는자들이 각자가 속한 곳에서 신앙을 실천한 결과로 누룩처럼 번져간 하나님의 나라의 결과이다.
    캘빈주의는 자본주의의 발전과 민주주의 정신형성에 큰영향을 미쳤다.    강요 4권 20장 31절에서 캘빈은 개인적 차원에서 가능한한 공직자의 권위에 복종해야 하지만 한편 입헌적 저항권을 제창하였고 독재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인가하였다.  강요 4권 20장에 나타난 시민정부론, 국가공직자와 정부형태론, 국가법론, 국민의 순종과 저항권은 현대에 필요한 "기독교적 민주주의 원리"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기독교적이라고 보는데는 무리가 있다.  민주주의를  형성한 사상에는 인본주의적 요소도 많고, 상황에 따라 민주주의는 혼란, 무질서, 비효율성과 같은 문제들을 가져올 수도 있다.   그것은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현대라는 상황에서 정의를 이루는 최선의 방법인 것이 사실이다.  한편 교회가 세계를 향해 선교하고자 한다면 우선 교회질서를 민주화해서 사회의 모범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민주국가가 선교에 유리한 상황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권력으로부터의 개인의 신앙의 자유, 양심의 자유, 선교의 자유에 대한 기본적 합의가 존재하는 것이 선교에 필요한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3)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서구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은 종교개혁이후 개신교도들의 경제활동에 기초하고 있다.  캘빈과  루터등 종교개혁자들은 노동과 직업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소명의식을 주장했으며,  프로테스탄트의 세속적 금욕은 재화의 추구를 전통적 윤리의 억압에서 해방시켰고 이윤추구를 합법화한 반면, 향략고 사치적 소비를 반대하여, 그 결과 자본주의가 나타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근면, 검소, 철저한 직업의식, 재투자, 그리고 쾌락과 탐욕을 거부하고 계획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삶의 형식이 근대적 자본주의 정신과 부합을 이루는 경제윤리였다.  초기 자본주의 발생에 있어서 청교도 정신은 서구의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발전을 끌어간 동력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기독교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기독교적이라고 말하는 것만큼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아담스미스의 국부론에 이르러 자본주의는 청교도 윤리와 결별되어, 이윤추구 그 자체가 합리적 목적으로 인정된다.  자본주의는 기독교 윤리의 제재에서 벗어나, 물질주의, 경쟁,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적 불의등 인본주의적으로 치닫게 되었다.  19세기 초 영국의 자본주의는 확실히 마르크스가 바로 본대로 모순에 가득차 있었다.  교회는 사회적 불의에 침묵했고 믿음을 경제적 삶에서 실천하지 못했다.  경제적 발전 자체는 하나님의 축복으로서 감사하고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의를 떠난 물질의 추구는 죄와 사망을 낳는 것이다.
   하나님이 공산주의를 허락하신 것은, 타락한 자본주의로 인해 물질의 우상을 섬기며 사회정의를 멀리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교회에 대한 각성제가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케인즈경제학이후 자본주의가 자체모순을 수정하여 노동조건을 개선하며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이루는 복지국가로 나아간 것은 이러한 도전이 없이는 훨씬 지연되었을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하고 유신론을 부인하는 공산주의의 기본전제는 유물론이다. 그들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성을 따라 영혼과 육체로 창조되었음을 부인하고 물질과 노동을 삶을 이끌어가는 본질로 보았다.  인간의 존재가치를 노동자로 축소한 것이다.  영혼은 비과학적인 것으로서 부인되며, 경제적 하부토대의 반영으로서만 이해될 뿐이다.  인간고통의 근원이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 죄성의 노예가 된 것임에도, 마르크스주의는 이를 경제적 문제, 노동분업과 인간소외, 억압과 지배와 계급갈등이라는 피상적이고 부분적인 문제로서 설명한다.  따라서 죄인을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어지는 구원은 허황된 얘기일뿐이다.  그대신 그들은 프롤레타리아 무력혁명에 의해 인간에 의한 유토피아의 건설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물론 그 유토피아는 영생과는 무관하다.  (북한에서는 놀랍게도 영생까지도 정치체제의 소산으로 귀결하려는 노력이 있지만.) 
   "인간이 그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을 창조했다"고 주장한 포이에르바하의 영향을 받은 마르크스는 1943년 "신이 주권자인가 아니면 인간이 주권자인가?"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인간은 자신을 속박시키는 주인을 가질 필요가 없으며 신에게서 자유로와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1844년 출판된 {헤겔의 법철학 논고}에서 그는 "종교비판이 모든 비판의 전제"라고 주장하였고, "종교는 인간의 아편"이라는 유명한 말과 함께 종교를 공산주의 혁명의 최대의 적으로 간주했다.  그러기에 공산주의 사회는 종교말살에 우선적인  총력을 기울여 왔다.  마르크스는 종교를 파괴한 후에야 인간은 환상의 태양인 하나님 주위를 맴도는 것을 중지하고 자기 자신 곧 참된 자기 자신의 주위를 선회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기술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사상을 역사적으로 구현시킨 모든 공산주의 사회는 종교를 인민의 적으로 보고 철저히 탄압하였다.  러시아에서, 중공에서, 북한에서, 베트남과 캄푸챠와 라오스 그리고 동유럽과 큐바에서 수많은 순교의 피가 흘려졌다.  그러나 20세기 말을 바라보는 지금, 공산주의는 패망하고 있으며 종교는 오히려 부흥하고 있는 것이다.  단 한세기 만에 나타나는 이러한 공산주의의 발흥과 쇠퇴는 2000년 폭력을 거부하고 십자가 위에 희생의 죽음을 당했다가 부활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확산일로에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공산주의는 복음에 비추어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으며, 따라서 그 일시성과 몰락의 필연성은 예견된 것이다.
    첫째로 인간에 대한 환상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고통과 문제는 하나님으로 부터 단절되어 타락하였다는 죄성의 문제에서 기인한다.  인간이 구원받는 길은 예수그리스도로 인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는 것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이 "공산주의적으로" 개조될 수 있으며, 탁아소와 유치원부터의 세뇌교육으로 브르조아적인 인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인간이 형성될 수 있다고 믿었다.  1963년 Leonid Ilyichov에 의하면 공산주의 건설자는 풍부한 지성과 도덕적 완전성, 성숙한 미적 감각과 육체적 완전성을 지닌 완전히 발전한 사람이었다. 즉 자본주의 하의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인간이 사회주의 체계 안에서는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집단주의적인 공산주의 인간으로 개조될 수 있다고 믿었다.  "우리의 과업은 인간 본성의 변화에 있으며, 각 개인이 스스로 완전하여 단하나의 전체, 곧 보다 큰 전체의 일부로 변화되는데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인간을 개조할 수 없다.  인간의 한시성, 불완전성, 죄성은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 극복될 수 없다.  구원은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선물로서 주어지는 것이다.  중생이 없이 성화된 삶을 살 수 없다.
   둘째로, 평등이데올로기의 인위성과 전제성이다.  제도적으로 강요된 평등은 하향성 평등, 빈곤의 평등을 가져 왔을뿐이다.  진정한 권위가 붕괴되었고, 인간의 다양성이 억압되고 무시되었으며, 평등을 강요하다보니 더 심각한 종류의 권력집중, 일당독재, 폐쇄사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셋째로, 일부 보편적으로 보이는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수단의 문제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일견 인도주의적이고 평등과 정의와 유토피아의 아름다운 가치를 지향하는 듯하나 이를 이루기 위한 수단은 계급투쟁, 없는자의 증오심, 폭력과 억압이다.
   결국 금세기의 공산주의의 실험은, 인간의 구원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로 주어지는 은혜에 있는 것이며, 인간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음을 또다시 확증하였다.
   통일한국은 정치적 민주주의, 시장경제와 복지정책을 민족문화 속에 혼합한 복지국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는 경제적 효율의 추구 속에 나타나는 사회적 병폐에 민감하여 경제정의를 실천하고 청교도정신에 입각한  건강한 기독교 소비자 문화를 확산하여 한국자본주의가 기독교정신에 입각하도록 하며 특히 북한에 대해 남한제국주의적 정책이 이루어지지 않고 온전한 남북간의 정의가 이루어지도록 감시하고 참여해야 할 것이다.


5. 북한정치지도자의 신격화에 대한 복음주의의 변증

   점진적 평화통일과정에서  교회는 인권문제등의  체제비판에 관련되어 스스로 선교에의 장애가 되어서는 안된다.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로운 교회는 북한의 기득권층의 이해를 위협하지 아니하고 북한이 필요로 하는 비정치적 분야에서 섬김으로서 복음의 문을 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통일 이후의 사회에서 이념적 혼란이 예상되는바, 북한의 과거 체제와 이념에 대한 명확한 복음주의의 변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1) 김일성 일가의 신격화에 대한 비판
   북한의 정치지도자 김일성은 모든 종교를 말살한 바탕에서 스스로 주체사상이라는 교리에 입각해 신흥종교의 교주와 같은 입장에 올라갔으며,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신적인 존재로서 숭배의 대상이 되게 하였다.  그런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신화를 활용하였고 초자연적인 신비한 능력의 소유자로 자신을 제시하였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것이다. 십계명의 제일은 "너는 나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고 하였다.  제이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위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다.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니라" (출애굽기 20:1-17).
   김일성은 기독교 가정에 태어났으며 외조부 강형욱은 장로였고 어머니 강반석은 신실한 여성이었다.  복음을 몰랐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믿을 바에는 조선의 하나님을 믿지 왜 미국의 하나님을 믿는가" 라고 하면서 복음을 대적하였고 하나님을 대적하였고 스스로 조선의 하나님이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에 이르기까지 그 죄를 갚으리라 하셨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우상으로서 군림하고자 하였으며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였다.  천사 루시퍼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자만하여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 하다가 천국에서 쫓겨나 사탄이 되었다.
   역사 이래 많은 지도자들이 자신의 권력에 취하여 자신을 신격화하였다.  시이저, 알렉산더, 고대 중근동의 많은 지도자들이 자신을 신으로 칭하였다.  이집트의 바로도 자신을 태양신의 화신이라고 주장했다.  구약에 보면 느브갓네살 왕은 자신의 황금우상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경배하게 하였다. 
   그러나 경배를 받으실 분은 참되고 유일하신 살아계신 하나님 한분이다.  칼마르크스는 종교가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한바 있는데, 이는 종교에 대한 매우 피상적인 이해이지만 북한에 있어서의 종교의 역할에 대한 정확한 표현이다.  김일성은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인민의 종교적 심성을 이용하였다.

   (2)주체사상
   주체사상은 "사람이 모든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 고 주장한다. 이것은 첫째, 극히 인본주의적인 사고방식이며, 잘못된 인간관에 입각하여 있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것은 진정한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부인하고, 피조물인 인간이 자신의 분수를 넘어 조물주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과대망상이다. 맹용길교수가 지적하듯이 "이것은 만유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도전하는 논리이다".  절대주권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주체는 하나님이다.
   그뿐 아니라 인간과 그의 사상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은  마르크스의 경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역사적 혹은 경제적 결정론과도 정면으로 모순되는 것이다.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인 치유와 몰락의 예방도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다는 논리적 근거를 제공한다.
   이러한 모든 것은 인간에 대한 부정확한 인식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피조물로서 제한된 존재이며 인간이 주인이 되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적은 범위이다.  인간은 자신이 어떠한 가정에 태어날 것인지 선택할 수 없다.  인생에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인간은 자신의 외모, 키, 몸무게를 결정할 수 없다.  병에 걸릴것인지 죽을 것인지 결정할 수 없다.  배우자와 자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심지어 자기자신의 행동까지도 온전히 자신의 뜻에 맞출수 없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자신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존재이다.  마음에는 선을 원하면서도 육신이 약하여 악을 저지르는 것이 인간이다. 하나님의 종이 아니면 마귀의 종이 되는 것이 인간, 죄성의 노예된 인간인 것이다. 
   두번째로, 주체사상은 사람에게 있어서 자주성은 생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은 자주성이라는 작위적 개념으로 축약될 수 있는 값싼 것이 아니다.  물론 자주성은 중요한 개념이나, 그것은 개인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확보할 때 지킬 수 있는 것이지, 집단에 의해 개인을 말살당하고 수령에 철저히 예속하는 전제주의 사회에서 생산되고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실로 자주성은 예수 안에서 가능하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 8:32) 김일성체제의 극악함은 바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귀한 생명의 개념을 언어의 작위를 통해 공산당 독재에 귀속되는 것으로 바꾸어 버렸다는 것이다.  자주성이 생명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자주성은 수령에의 예속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창조성, 의식성같이 주체사상에 강조하는 인간의 특질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창조성과 의식성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창조된 인간이, 그가 비록 하나님을 떠나 타락하고 부패하였으나, 그 형상을 일부분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주체사상은, 물질로 만들어진 인간이 어째서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과 같은 성품을 지니는가에 대해 답변하지 못한다.  결국 당과 수령의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이 인민 개개인의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을 좌우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생명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며,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와 연합하여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고 부활하는 길 밖에는 없다.  인간의 생명은 영혼이다.  죄인이 구원받고 거듭나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될때, 그의 일그러진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도 다시 온전히 회복되는 것이다.  이것은 순전히 개인적 차원의 일이며, 어떠한 지도자나 당이나 이웃이 대신해 줄 수 없다.  영생은 개인의 믿음의 결단에 의해 선물로서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세번째로, 주체사상은 사람들의 모든 행동을 규정하는 것은 사상의식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관습, 무의식, 본능, 감정, 영성등 다양한 요소가 있다.   인간은 육신과 영과 혼으로 구성된 존재이며, 결코 사상에 의해서만 행동하는 존재는 아니다.  따라서 사상의식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극히 비현실적인 인간관에 입각한 것이며, 이는 사상의식의 유물론적 기초를 주장하는 마르크스레니니즘의 관점 역시 벗어나는 것이다.  북한의 주체사상은 결코 인간을 개조할 수 없다.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사역만이 인간을 변화시켜 진정한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체득하게 한다.
   즉, 주체사상은 잘못된 인간관에 입각하였기에 한사람의 수령의 주체와  전체인민의 예속을 가져온 예속사상으로 귀결되었다.

(3)수령론과 사회정치생명체론 비판
   주체사상의 인간은 자주성, 의식성, 창조성을 지닌 사회적 존재로서 육체적 생명보다 고귀한 사회적 생명을 누릴 수 있으며 이것은 수령이 중심된 주체사상세계에 충성을 다함으로써 가능하고, 수령에 충성하는 것이 영생을 얻는길이라고 주장한다.
   사회적 생명이 육체적 생명보다 고귀하다는 것은 명백한 가치의 전도이다.  생명에는 두가지가 있는데 한가지는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인간이 누리는 육체적 생명이요, 또 하나는 예수를 믿음으로 얻게 되는 생명으로서 영원한 생명이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 6:3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 11:25)
   소위 사회적 생명이라는 것은 김일성 김정일에게 충성하는 것이고, 그것이 영생을 얻는 길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말장난이고, 생명과 영생이라는 엄청난 의미를 평가절하시키는 것이다.  사회적 생명의 개념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관해 이름을 부치고 마치 그 이름으로 인해 실제가 존재하는 듯 위장하는 허위적인 개념이다.  김일성, 김정일, 당은 진정한 생명을 줄 수 없다.  
   사회정치생명체 역시 조작된 개념이다.  그것은 실지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는 사회일뿐 생명체가 아니다.  수령에 충성하는 길이 영생을 얻는 길이라는 것은 수령을 생명을 창조하는 창조주로 격상시키고자 하는 주체사상의 적그리스도성을 가장 확연하게 드러내는 대목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한 17:3) 수령론은 김일성 김정일이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하나님이 가장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시도로서, 주체사상의 사이비 종교성의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4)주체사상의 종교혼합주의 비판
   마르크스레니니즘을 앞세워 철저히 종교를 말살한 후 김일성 김정일 부자는 주체사상의 종교성을 내세우기 시작하였으며, 각종 종교의 요소를 혼합하여 조선의 종교를 창출하고자 하였다.  주체사상이야 말로 모든 종교의 핵심적인 진리의 규합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즉 그들에게 있어서 어차피 종교는 만들어 내는 것이며, 믿을 바에는 김일성이 만들어낸 김일성의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이다.  인민이 종교가 필요하면 당이 종교를 주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북한 인민의 강한 종교적 심성에 대한 반응의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은 천도교의 한울님이며, 기독교의 하나님, 예수님과 마찬가지이며, 무속의 무당과 마찬가지이다.  불교와도 상통하며 선, 기일원론과도 통한다.  또 주체사상과 기독교는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는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는 절대자의 자기계시에 대한 인간의 반응,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에게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 지를 아는 지식이다.  그것은 인간이 함부로 조작하여 인민의 통제를 위해 부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주체사상은 기독교를 대적하는 것이며, 그 안의 그 무엇도 기독교의 진리와 상통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영생, 사랑, 불멸, 낙원의 단어들을 사용한다고 해서 기독교와 상통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를 흉내내었을뿐이다. 
   김정일이 1986년부터 전개해온 우리민족제일주의, 조선민족제일주의, 민족문화복원사업등도 영적인 배경에 있어 사악한 것이다.  그것은 단군, 왕건, 동명왕등과 같은 시조신과 자신을 같은 반열에 놓음으로서 신격화를 가속화하고 통일한국의 시조로서의 정통성을 주장하려는 것이며, 그는 또한 단군을 숭배하는 대종교와의 혼합주의를 시도하고 있다.  

III. 통일환경의 조성과 교회의 역할
    

1. 평신도활동을 통한  통일환경 조성

   아스팔트가 깔려있는 땅은 씨를 뿌리기 전에 우선 아스팔트를 깨고, 씨를 뿌릴 수 있는 부드러운 토양을 조성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장애의 제거와 토양의 조성"은 교회의 종교적 방법이 아닌, 정치경제사회 각분야의 평신도들의 활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일을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어 인간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평신도들을 불러 토양을 조성하고 계시다.  그곳에 건강한 씨앗이 떨어질 때 하나님의 나라는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이다.
   통일을 준비하는 가운데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 다양한 분야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기독교인답게 살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통일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고자 노력할 수 있다.  그것은 정치적으로는 정치권력의 세속화를 주장하고, 종교중립체제를 구축하며, 종교자유의 보장 및 인권사상을 확립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확산하는 등 체제의 반종교성을 약화하는  활동을 포함한다.  경제적으로는 북한과 경제협력을 추진하고, 근대화를 추진하여 체제 개방을 유도하며, 그 과정에 남한의 제국주의적 행태가 없도록 경제정의에 유념하고, 북한의 개방개혁을 유도하는 활동을 할 수 있다.  사회 문화적으로, 커뮤니케이션과 정보통신을 통해 언어를 통일하고 동일의식을 확산하며 동질적 문화를 형성하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등의 일이다.
  
(1) 체제의 종교에 대한 적대성 약화

    a. 정치권력의 세속화와 종교중립체제의 구축
  북한의 정치체제는 무속신앙적 영성에 입각하여 정치지도자를 신격화하고 있는 체제이다.  정치적 차원에서 선교를 위한 땅고르기는 바로 정치권력의 세속화를 이루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신적인 존재들이 지상낙원을 건설해 준다는 거짓말에 속아왔다.  그래도 그들은 감히 정치지도자에 대한 도전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신격화 체제 내에서 사회화되어 왔다.  일차적으로 필요한 것은, 복음주의적 인간관에 입각하여 정치지도자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죄성의 노예이며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인하지 않고는 구원받을 수 없는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며 하나님 앞에 죄인일 뿐이다.  인성과 신성 사이에 는 엄연한 구분이 있다.  절대 선이고 완전함이신 하나님과 절대 부패한 인간을 다시 이을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밖에는 없다.  어떠한 지도자도 신성에 접근할 수는 없다.  절대 부패한 인간에 절대 권력을 맡긴다는 것은 권력의 남용과 폭정만을 자초할 뿐이다.  라인홀드 니버가 말했듯이, "인간은 민주주의를 필요로 할만큼 악하지만, 이를 가능케  할만큼 선하다".  인간의 절대부패성은, 정치권력이 제한될 것을 요구한다.  민주주의란 지배자의 권력의 남용에 대한 피지배자의 규제가 제도화되어 있는 것이다.
   정치권력은 신성에서 분리되어 세속화되어야 한다.  정치권력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국민을 통해 위임받은 것이며, 국민을 위해 사용되어 져야 하는 것이다.  지도자는 섬기는 종의 심정으로 국민을 위해 봉사하여야 한다. 
   북한이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정치체제가 최소한 종교중립적이 되어야 하는 것은 중요하다.  종교의 영역이 정치와 분리되어야 하며, 정치가 종교를 통제할 수 없도록 하여야 하고, 어떠한 정치권력도 특정 종교를 옹호할 수 없도록 하는 중립체제가 수립되어 종교의 자유 하에 복음이 자유롭게 전파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 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일소하고, 개인의 종교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하며, 전반적으로 종교의 자유, 인권개념이 확립되는 것이 선교에의 장애를 형성하는 첫번째 길이다.

   2)종교자유의 보장및 인권사상의 확립
   통일로 가는 길에 있어서 정치적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종교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이에 대한 당이나 공권력의 힘의 남용으로부터 개인을 지키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개인에게는 집단이 침해할 수 없는 권리들, 생명과 존엄성과 프라이버시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 인정되어야 한다.  특히 인간의 자유는 하나님이 주신 불가양도의 권리라는 인권사상이 확실하게 정립될 필요가 있다.
   예수님께서는 한마리 잃어버린 양을 위해 아흔아홉마리 양을 놔두고 그 한마리를 찾을 때까지 산넘고 물건너 양을 찾아 오는 선한 목자의 비유를 하셨다.  한 명의 죄인이 회개할 때 하늘에서 천군천사가 기뻐한다고 하셨다.  이처럼 한사람의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  누구도 당의 이름으로, 이데올로기의 이름으로 한 사람의 인권을 짓밟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인권사상이 전파되는 것은 선교에 유리한 상황을 조성한다.  신앙의 자유는 인권사상이 있는 곳에서 인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크리스천들이 평신도로서 정치가로서, 외교관으로서, 정치학자로서, 인권단체에 속해서, 국제무대에서, 국내에서 인권, 특히 북한의 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옹호하는 활동은 고무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북한의 유린된 인권을 내일처럼 (갇힌 자를 내몸처럼 생각하여) 생각하고 갇힌 자를 자유케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공적 종교집단으로서의 교회가 점진적 통일을 대비하는데 있어서, 교류의 초기단계에서 조직으로서의  교회가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서 직접적 비판은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것은 북한체제를 더 방어적으로 만들 수 있기 대문이다.  한편 간접적으로 북한의 인권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각종의 노력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2) 폐쇄적 체제의 개방 유도
 
   반드시 기독교에 대해서 만이 아니라도 일단 체제가 개방되면 복음의 통로는 넓어지게 된다.
전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과정이 개방을 유도하고 복음의 토양을 마련한다고 생각된다.
 
a. 근대화과정 일반
   근대화는 그 많은 인본주의적이고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문화로부터 소용돌이쳐 나왔으며 전세계에 파급되어 복음전파에 용이한 토양을 마련하는 과정이었다.
   첫째로, 과학과 교통통신기술의 발전은 "땅끝까지 가서 내증인이 되라"는 대위임령을 용이하게 했다. 산업혁명, 도시화, 대중교육, 대중매체등은 모든 사람이 복음을 듣고 읽을수 있는 기회를 앞당겼다.
   둘째로, 근대화는 많은 기독교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과학기술,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질병으로부터 해방되었으며, 산업혁명의 파급은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을 가져왔다.  민주주의의 발전은 불평등으로부터의 부분적인 해방을 가져다 주었다. 근대화의 발전개념 자체가 기독교적이다.  기독교는 종교개혁이후 그리이스의 순환사관으로부터 탈출하여, 발전이 가능하며 새로운 것이 과거의 것보다 낫다는 새로운 발전개념을 도입했던 것이다.  그것은 타종교의 윤회설, 허무주의, 역사관의 결핍등과 대조된다.
   물론 근대화 자체가 기독교적인 것은 아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단절되어 불완전한 인간의 죄성에 의해, 민주주의나 자본주의나 기독교의 뿌리에서 나온 다른 모든 현상처럼, 근대화는 부정적 요소를 포함한다.  빈곤으로부터의 해방 이면에는 물질주의라는 맘몬숭배가 있다.  개인의 소외, 공동체와 가족의 파괴, 정신병, 환경문제, 인구문제등 역시 근대화의 부정적 측면이다.  평등과 자유 이데올로기의 이면에는 권위의 붕괴, 퇴폐향락, 방종, 성의 상품화같은 문제들이 있다.
   셋째로, 근대화는 타 종교문화권의 세속화를 가져옴으로써 보다 복음전파가 용이한 토양을 마련한다.  Gunnar Myrdal이 지적했듯이  많은 아시아의 전통종교가 사회적 침체의 원인이며 사회발전에 기여하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다.  근대화는 비서구지역에서 인간을 전통종교와 미신으로부터 해방하는 과정이었다.
   복음화에  필요한 환경은 타종교 신앙고백 공동체나 반종교적 정치체제가   종교적 중립정치체제로 변화해 가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세속화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근대화와 세속화는 그 자체가 광의의 선교전략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이슬람과 같은 신앙고백 공동체, 공산체제와 같은 반종교적 정치체제에 대해서 세계화와 국제화, 개방개혁및 경제발전은 그 자체로서 강력한 선교전략이다.

b. 경제협력
c. 정보화, 과학기술 교류
d. 세계화

  
2. 교회의 사회교육기능을 통한 통일의식의 확산

 (1). 세미나, 토론회 등을 통해서 교인전반에 통일의 필요성을 고취하고 통일 이후의 상황에
      대한 마음의 대비를 하도록 하는 사회교육을 실시한다.
 (2) 복음주의 통일설교 예화집을 준비한다.
      -  하나님 안에서의 민족주의
      -  지나친 개인주의와 가족중심주의에서 벗어나 공익을 앞세워야 함
      -  하나님 안에서 하나된 평등사상
      -  나누어 가지기, 주린 형제에게 나누어주기,
      -  참된 이웃된 선한 사마리아인
      -  민족적인 용서와 치유
      -  물질에 대한 청지기 정신
  (3) 특히 여성리더쉽을 통한 내핍, 절제, 과소비 억제하는 사회분위기 조성

3.  북한 식량문제와 교회

   교회가 북한의 식량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며 또 통일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것일까.  그동안 한국교회의 활동을 보면, 북한의 식량문제가 천연재해라고만 보고, 국민을 먹여 살리지 못하는 체제, 리더쉽, 이데올로기에 있다는 사실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경우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식량문제에 대한 정책수립을 위해서는 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즉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원초적 문제점, 경제정책의 비효율성, 사회주의권 대변혁에 의한 국제 정치적 충격 등이 맞물려 천연재해에 대처할 수 없는 체제의 취약성을 가져온 것이다  오경찬이 지적하듯이 북한 식량난의 원인은 쌀 생산에 불리한 자연적 조건, 중공업. 군수산업에 홀대받는 농업, 허구와 비합리로 가득한 이른바 '주체농법', 다락밭 개간등 농지확장의  대실패, 외화부족, 에너지 및 원자제난으로 가중되는 식량난, 무능한 지도층 및 농업관리들, 각종 농작물에 대한 품종개량사업 부진, 개인의 의욕과 생산성을 저하시키는 체제, 비료.종약등 영농자재 태부족, 식량난을 심화 확대시킨 수혜등 복합적이다.  . 
   따라서 그 해결을 위해서는 체제가 개방되고, 군비가 감축되며, 남북협력등 북한의 자구노력이 선행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군량미를 방출하고, 군사력의 유지와 강화를 위한 비용을 식량구입비용으로 전환하며, 김일성 부자 우상화및 체제 유지비를 삭감하고, 고위층의 호화사치 비용을 삭감하며, 농업정책의 개혁과 개방, 근본적으로는 북한체제의 개혁과 개방을 추구해야 한다.
   또한 주의해야 할 점은 북한은 미사일을 개발하고, 군비를 확충하며 죽은 김일성을 위해 수억 달러를 들여 생일잔치를 벌일 수 있어도 굶어죽는 국민의 식량문제는 다른 나라 정부, 구호기구, 단체, 교회의 몫으로 남겨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연변과학 기술대 김진경 총장이 밝힌 것처럼, 북한은 1995년 6월 한국의 지원으로 청진항에 도착한 쌀 15만 톤중 10만 톤을 군량미로 전환했다고 한다.  북한이 연간 군사비의 5%만 전환해도 온 국민을 먹여 살릴 수 있다.  그러나 통일이 안된 분단상황에서 남한으로부터 위협이 있다고 생각하는 북한이 군량미를 풀고 군사비를 전환하는 것은 비현실적으로 생각될 것이다. 
   따라서 식량문제는 북한으로 하여금 대화와 교류, 평화공존과 통일로 나아가게 하는 강력한 유인이 된다.  먹고사는 기본문제가 해결 안된 체제는 아무리 그럴듯한 정치선전으로도 그 정통성을 유지하기 힘들게 된다.  굶주린 국민의 불만과 저항이 체제에 위협적이 될 때 체제유지를 위한 자구책으로 군량미를 풀고  군사비전환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은 대외적으로 대화와 교류, 평화공존과 통일정책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도적 식량지원"은 체제가 군사력 유지강화를 계속하면서 외부로부터 식량지원을 받음으로써 체제 개방개혁을 저항하는 조건을 조성함으로써, 통일을 지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즉 국민의 기아문제는 정부가 해결해야 하고 해결하지 못한다면 물러나야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해도 당장 굶주리는 이웃에 대해 교회가 무심할 수는 없다.  주님은 굶주리는 형제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진정 나를 따르는 자라고 하셨다.  원수라도 목마르면 마시우고 배고프면 먹이라고 하셨다.  먹을 것, 입을 것을 보내되, 까다롭게 해서, 국제기구를 통해 반드시 북한주민이 직접적으로 수혜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동시에 북한의 개방개혁을 촉구하며 자구적 노력을 촉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남북교류에 있어서 교회는 비정부기구로서 정부를 초월하는 (transnational) 초국가기구로서 국익의 갈등을 넘어서 순전히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  이것은 북한주민에게 교회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주게 될 것이다.  한편 농업기술지원, 비료생산등을 통해 북한의 농업생산성을 높이는 지원도 필요하다.


IV. 통일과정에의 참여

   교회는 통일의 전과정에서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지며 남북한이 골고루 잘사는 통일이 이루어지도록 적극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

1. 평신도 정책결정자로서

2. 압력단체로서

3. 개별시민으로서


V.  통일이후 사회에의 준비

1. 범한국교회 통일준비 통합위원회와 통일기금의 설립등 제도적 장치 마련.

    현재 초교파적인 북한선교 통합기구, 민족복음화 선교협의회 결성등이 추진되고 있으나, 북한선교가 통일과 분리되기 어려운 특성이 있으므로 북한선교나 교회재건에만 초점을 두기보다는 민족교회로서 통일과정 정체에 관심을 가지고 준비하는 범한국교회 통일준비 통합위원회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 산하에 통합 선교센터를 설립하여 정보수집연구, 선교전략 모색 및 전문인 선교사를 훈련한다.
    또한 평신도 통일위원회를 설치하여 평신도 학자들의 전문분야에서의 기독교적 시각에서의 연구를 지원하고 평신도전문인들의 연구결과를 종합조정하도록 한다.
   한국 뿐 아니라 세계교회, 해외 한국교회를 통해 통일을 세계화하는 노력이 경주되고 한국의 통일이 세계교회의 문제임을 인식시키고 협력해야 할 것이다..

2. 재정적 준비

   통일헌금, 통일기금의 적립등을 통해 지금 당장 통일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도 재정적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며 교회를 세울 준비와 직업훈련원, 기독교문화관 설치, 고아원, 양로원, 장애자 복지시설, 모자복지시설, 유아교육, 여성사회교육, 시민교육등 다방면에 시설, 재정, 기능과 인력면에서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교회재정운영에 있어 교회건물에 돈을 너무 들이기 보다는 가난한 남북한의 실업자와 절대빈곤인구의 실질적 삶의 질의 향상에 관심을 가지고 효율적으로 기금이 투자되어 골고루 잘사는 사회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3. 교회설립준비

(1) 전통문화에 입각한 민족교회양식
   북한에 설립하는 교회는 반드시 남한교회의 형식을 따를 필요가 없다.  서양식 건축양식을 따를 필요도 없으며, 미국에서 19세기에 부르던 찬송가를 주장할 필요도 없다.  민족문화에 바탕하고 북한의 고유의 삶의 방식과 조화를 이루는 교회형태, 예배방식을 권장해야 할 것이다. 

(2) 북한교회는 북한주민의  주체성을 통해 
   북한교회의 담당자는 북한주민이 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목회자의 부족현상을 참조하여 지도자가 양성되는 동안 과도기적으로 북한학과 신학, 선교 학을 이수하고 북한에 대한 깊은 조예와  소명감및 헌신이 있는 사람이 선교사로 봉사한다.
  북한선교사는 자신의 남한식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삶의 방식을 벗어버리고 오직 복음으로 옷입고 잃어진 영혼을 안타까이 여기는 예수 님의 마음으로 겸손히 섬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초기의 북한선교사는  중국, 연변, 러시아, 사할린, 베트남, 몽골리아, 중앙아시아등 북한인 들이 적대감을 덜 갖고 있는 지역에서 사역한 한인선교사, 그 지역출신 한인사역자및 귀순자들이 담당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된다.  직접 남한에서 간 선교사는 또다른 "제국주의의 앞잡이"로 인식될 수 있고, 또 그렇게 인식될 수 있는 언행에서 스스로 자유롭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남한의 선교사는 초기에는 조심스럽게 이들의 활동을 통합조정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러시아과 중국의 선교경험에서 배운 것처럼 특히 무분별한 선심선교는 삼가야 할 것이다. 상기한 범주 속에서 인재를 선발하여 신학적으로, 선교학적으로, 지역학적으로 훈련하는 역할은 한국교회의 책임이다.
  
(3) 집단생활공동체 및 상부상조집단으로서의 교회

   북한주민들이 집단생활에 익숙해져있으므로  별안간 개인주의적인 형식을 도입할 것이 아니라 활과 생산과 예배를 같이 하는 집단생활의 형태에서 점진적으로 변화를 도모하도록 하며, 그들이 익숙한 방식에 의해 진행하도록 한다.
   교회는 예배장소를 제공할 뿐 아니라 지역공동체로서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소외된자들을 영접하며 주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교회건물을 활용하여 다음과 같은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다. 
  
    -의식주 지원: 공동식사
    - 의료봉사
    - 탁아소, 공부방
    - 아동교육
    - 노인, 여성, 장애자 복지
    - 정치재사회화: 민주화
    - 문화센터: 영화, 연극, 미술, 음악
    - 리크리에이션: 스포츠등
    - 정보센터: 컴퓨터, 인터넷등

4. 교회와 통일문화 조성
 
   통독 5주년에 실시한 구동독인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제도적 장벽은 사라졌지만 의식 속의 장벽은 높아만 간다고 응답한 사람이 67%에 달한다.  동독인 들은 아직 통독의 새로운 사오 항에 적응하지 못하고 서독지역 주민들에 대해 심리적 열등감과 상대적 박탈 감을 느끼고 있다.  서독인 들은 세금부담의 가중, 동독이주민으로 인한 주택문제, 범죄문제등으로 불만이고, 동독주민들은 실업문제, 물가문제등으로 인해 심리적 갈등이 증폭되어 동서독인간에 사회 심리적 일체감이 쉽사리 형성되지 않는 형상을 보이고 있다. 
   통일이 이루어지는 경우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많은 문제가 예상되는데 이러한 혼란을 극복하고 선진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통일문화조성을 위한 교회의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의 실천이 필요하다.

(1) 사회의 윤리성, 도덕성 회복
   북한에서 발간되는 소설, 문헌, 그리고 귀순자의 증언들을 통해서 북한에 절도와 뇌물행위등이 성행하고 있음을 볼 수있다.  공산주의는 윤리를 지배계층이 자신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보며, 공산주의 윤리는 혁명에 유리한 것은 선이고 불리한 것은 악이라는 식의 다른 윤리개념을 갖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교회는 성령의 역사 하심으로 복음을 전파하여 죄인이 변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함으로 하나님 앞에서의 도덕심과 윤리성을 회복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2) 투쟁대신 사랑과 평화, 화해, 공존의 사상 전파
   한국사회의 특징은 투쟁사회 (contentious society) 로 정의되기도 한다.  통일원이 분석한 북한 초등 학교 자료에 의하면 인민 국어 교과서 4개 학년의 총 161개 교과서 중 혁명의식이나 적개심의 고취와 관련되는 내용의 교과가 전체에서 13%를 차지하고 있었다. 
북한사회는 특히 그 동안 계급적 "원수"에 대한 철저한 증오와 타협 없는 투쟁을 미덕으로 강조해 왔고, "병영사회"라는 개념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그들은 미워하고 증오하고 투쟁하도록 훈련되었다.  남한 역시 공산주의자를 미워하는 반공, 승공의 군사적 문화가 확산되어 왔다.  교회는 자신을 십자가 에 못박는 자들을 저주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축복하시며 원수를 사랑하고 가르치신 예수의 사랑을 전파하여, 사랑과 평화, 화해와 공존의 삶의 방식을 전파해야 할 것이다. 

(3)통일이후 이념적 혼란및 주체사상의 잔존에 대한 대책
   착취계급에 대한 적대적 투쟁은 공산주의의 주요한 부분이다.  남북한 통일 이후 북한지역의 노동자들이 이 이데올로기를 남한지역의 자본가 계급에 대항하여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  교회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명확한 신학적 입장을 확립할 필요성이 있다.  통일이후 바람직한 정치체제의 모색에 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통일 이후 노동자계급 이데올로기의 잔존이 통일체제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남한 지역의 노동자 복지를 향상하고, 바람직한 노사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또한 자본가와 노동자가 상호호혜의 관계에 있으며, 이것이 착취와 부당한 과대이윤이라는 결과로
가지 않도록 노력해 야 한다. 
   이념적 혼란에 대해 교회는 분명히 주민들에게 주체사상을 성경에 비추어 설명하고 명확한 대안 이념을 제시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다시 한번, 이것은 평신도 전문인의 역할이다.

(4) 골고루 잘사는 사회가 되기 위한 사랑의 실천

   a.  난민문제
   독일의 경우 인구의 8%가 서독으로 이동했는데, 북한의 경우 최소한 약 2백만의 인구가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주민 대상의 선교프로그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난민대상 선교, 난민정책결정과정에의 참여 .
   b. 빈민선교정책, 빈부격차해소책
     통일후 북한의 배급제가 철폐되면서 북한주민의 최저생활 유지가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이것은 비정부차원에서의 교회의 역할을 필요로 한다.  빈민에 대한 직업알선, 직업상담, 자격취득훈련, 직업훈련, 고용창출, 특히 여성노동자의 실업문제가 심각함에 따른 여성직종의 창출 및 여성직업훈련등의 문제에 대해 교회가 "공동 노동 집단"으로서 고통받는 주민들과 함께 호흡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c. 실업자복지정책
   통일후 대량실업사태가 예상됨에 따라    실업자복지, 직업훈련 및 알선등이 필요하다.
   이러한 정책들은 상당부문 정부차원에서 수행될 것이지만 그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는 교회와 같은 비정부기구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d. 노인문제에 대한 심각한 접근
      북한의 구체제하에서 사회화되었고, 충성했으며, 지도적 위치를 점하고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서 보람있는 역할이 주어져야 한다.
   e. 청소년문제:  통일이후 청소년의 자살, 정신장애, 폭력, 범죄가 증가할 것으로 보이며 교회의 청소년 사역이 중요해질 것이다.
   f.  적대계층과 장애자 복지 대책
  
(5)여성문제
    1)여성의 평등한 참여
   남북한 인구의 반을 차지하는 여성은 통일과정에 있어서 그리고 교회의 참여와 기여에 있어서 중요한 참여자이자 고려대상이 되어야 한다.  북한의 평등 사상가운데 사회의 모든 공적 영역에 참여해온 북한 여성들에게 있어서 남한 교회에서의 여성의 위치는 이해하기 어려운 차별로 비칠 것이다.  북한교회에서는 여성의 동반자적 역할을 인정해야 할 것이며 여성목사안수등 성서에서의 여성의 위치에 대해 남한에서보다 더   심각한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신학적 답변이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2)여성복지에의 기여   
   통일 이후 북한교회의 역할 중 중요한 것은 탁아소로서 교회를 지역사회에 개방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여성의 종속이 임금노동에 대한 가사노동의 종속이라고 보고 여성해방을 임금노동에의 참여를 통해 이루며 탁아와 가사노동을 사회화한다는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의 결과로 북한여성은 모두 노동을 하며, 아이들은 모두 탁아소에서 자란다.  통일이후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실업을 경험할 것이며, 최저생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주민이 될 것이고 이들이 비공식 저임금 노동에 흡수되는 과정에 방치되는 아이들의 탁아문제가 심각하게 대두할 것이다. 
   북한교회 성장의 주요세력은 여성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들을 위한 효율적 선교를 위해서도 교회는 주중에 지역탁아소로 교회를 개방하고, 통일한국의 미래를 담당할 아이들의 재사회화를 담당해야 한다.  이를 위한 자원봉사자와 탁아모의 훈련 및 보상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3)가정사역과 여성사회교육
   북한의 하위문화가운데 가장 이질화된 것은 아마도 여성문화일 것이다.
주체체제 속에서 파괴되고 약화된 가정의 의미를 회복하고 하나님 안에서의 여성의 의미를 발견하며 진정한 여성의 자유를 발견하기 위한 가정사역과 여성사회교육이 제공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북한여성전문사역자의  사역을 위해 인재를 훈련해야 한다.

VI. 결론

   본고에서 제기된 한국의 통일을 위한 교회의 역할에 대한 의견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지금 당장 통일이 되어도 교회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2. 한국의 교회는 통일에 대비하여 민족의 비극에 눈물흘리고 통일을 염원하며 하나님의 뜻에 맞는 통일이 이루어지도록 적극 동참하는  민족교회가 되어야 한다.
3. 지금은 신학, 선교학과 일반학문의  활발한 대화를 통해 교회 안의 다양한 시각을 종합하고, 통일을 대비한 구체적 정책을 수립하며 교회간 협력의 제도화를 앞당기고 실질적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전문적 복음사역자와 평신도를 집중훈련 양성할 교회의 적극적 행동과 실천의 시기이다.
4. 알곡을 뿌리고 가라지를 뿌리지 않도록 건강한 씨앗을 준비하는 일이 최우선이다.
5. 통일에 대한 교회의 역할을 논의하는데 있어서 극단적인 이원론과 상황화신학의 오류를 경계해야 하며, 교회의 영역과 통일의 영역에 대한 창조적 통합적 사고가 요청된다. 남북한의 분단은 가시적 분단뿐 아니라 불가시적 영적분단을 포함하며, 통일은 영적분단의 극복이 수반될 때만 온전할 수 있다.
6.   분단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 그리고 죄성의 결과라면, 진정한 통일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인한 죄사함과 구원, 하나님과의 화해와 믿는 자의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것은 영적 투쟁에서의 승리,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의미한다.
7. 교회재건과 선교사파견만이 선교전략이 아니라는 북한선교의 전환적 사고가 필요하다. 
선교에의 장애의 제거와 옥토의 조성이 선교전략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8. 교회는 각 분야의 평신도들의  통일환경 조성노력을  지원한다.
9. 경제협력, 근대화과정 전반,  정보화, 세계화는 선교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
10. 종교중립체제의 구축, 정치권력의 세속화전략, 종교자유의 보장 및 인권사상의 확립등은 체제의 종교에 대한 적대성을 약화시킴으로써 선교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
11. 교회는 통일의 전과정과 전분야에 걸쳐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지도록 개인적으로 또 조직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12. 범한국교회 통일준비 통합위원회와 통일기금 설립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
13. 북한에 설립되는 교회는 전통문화에 입각한 민족교회양식을 지향하고, 북한주민이 주체적인 주인이 되도록 하며 과거 생활방식의 연장으로서 집단생활공동체 및 상부상조집단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지역사회의 삶의 질의 향상을 위해 교회를 개방하고 통일문화 형성을 위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14. 골고루 잘사는 사회를 위해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15. 북한의 여성은 선교의 주요대상으로서 교회에 여성의 평등한 참여가 요청될 것이며 사회주의문화권에의 가정사역과 여성사역에 대한 전문적 준비가  필요하다.
   이러한 모든 것에 앞서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남한 및 남한교회의 반성과 회개, 기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북한주민을 불쌍히 여기고 잃어진 영혼을 찾기 위해 눈물로 기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한국의 체제적 우월감을 가지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자로서 그들을 만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반성과 회개가 앞서야 할 것이다.  한국병이라고 불리는 한국자본주의의 문제들,
빈익빈 부익부, 급속한 경제성장 속에 교회에도 깊이 침투한 물신주의, 세속적 성공주의, 사치와 이기심, 한탕주의등 우리사회의 뿌리 깊은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회개가 있어야 할 것이다.  교회는 믿음을 실천하지 못하고 세상과 영합하여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사회에 개혁을 가져오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한다.  한국교회에 깊숙이 침투한 황금의 우상을 제해야 한다.  민주화시대에 교회안에 팽배한 권위주의를 회개하고, 진정한 평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실천으로 보여주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IMF로 인한 민족적 어려움 속에서 교회는 근면, 검소, 절약하여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관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청교도 윤리를 실천해야 하겠고, 특히 있는 자들이 솔선하여 검소함으로 모범을 보여야 하겠다.
   무엇보다 통일의 주인은 하나님임을 고백하고, 통일을 위해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을 때,  영적분단은 극복되고 하나님의 나라는 3.8선을 넘어 확산되어 갈 것을 믿는다.
                               


Professor of Politics, L.A. Institute of Interntional Stud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