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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정치학 I

동아시아의 종교와 정치


책을 펴내면서
   이책은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지역학의 개론으로서 쓰여졌다.  또한 신학교에서의 정치학, 지역학, 선교학 교재로서, 신학과 정치학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한편 사회과학의 언어와 분석방법에 입각하여 있으므로 일반 비교정치학도들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기독교 선교  100년이 넘는 20세기 말, 한국은 놀라운 교회 성장을 이룩하였고 천만 기독교인을 자랑하며  전세계에 선교사를 보내는 민족으로 부상하였다.  21세기는 아세아태평양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문민정부의 비젼처럼 한국이 "통일된 세계 중심국가"가 될 적에, 아시아 선교와 나아가 세계 선교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21세기는 전문화의 시대이다.  세상의 정부는 군사안보외교경제교류 목적을 위해 다른 나라를 연구하는 지역학에 엄청난 돈과 인력을 투자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선교에 있어서도 보다 전문적인 지역학 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보다 효율적인 선교를 위해서는 무엇을 전해야 하는가 하는 신학과, 어떻게 전해야 하는가 하는 선교학과, 누구에게 전하는가 하는 지역학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선교하고자 하는 대상국가의 정치경제사회문화에 대한 지역학의 연구기반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선교의 밑바탕이 되는 지역학의 학문적 기반은 너무나 취약하다.  기존의 지역학은 세상 정부의 군사안보외교 경제교류목적을 위해 주로 정치경제외교면에서 수행되어서, 상당히 제한된 시각에 입각해 있으므로 선교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모든 것이 분화되고 전문화된 시대에, 신학과 사회과학 사이에는 깊은 골이 있어 접목이 상당히 어렵다. 서구의 사회과학에 익숙한 사람은 정치경제사회문화 현실을 기독교적 시각으로 바라보기가 힘들어 진다.  한편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사회과학이 설명하는 정치현실은 흡족하지 못하다.  신학생과 일반기독교인을 위해, 기독교 정치학, 기독교 경제학, 기독교 문화학이 필요하다.

   굳이 선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해도, 1990년대에 이르러 일반 정치학에서도 종교의 문제는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그 한예로 중국의 경우,  1995년  강택민등 권력후계자들은 등소평의 개방개혁정책이 중국의 전통적 미풍양속을 깨뜨렸다고 비난하면서, 유교로의 회귀를 주장했던 것이다.  이것은 불과 30년전, 문혁기간에 모택동이 유교를 중국공산주의의 적으로 규정하고 타파하려 했던 것을 상기시킨다.  중국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교와의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본민족정신의 근간이 되고 있는 신도는 천황과 자민당의 정통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급속한 경제성장을 지향하는 말레이지아는 이슬람의 문화전통 위에 그들이 원하는 비젼 2020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인가.
   아시아 곳곳에 눈을 돌릴때 우리는 종교와 정치의 밀접한 관계를 발견한다.
   20세기말 탈냉전 신국제질서에 있어서 종교와 정치의 관계는 그 어느때보다도 중요하게 나타나고 있다.  소련의 붕괴와 동구의 다원화 에 있어서 러시아 정교와 카톨릭, 기독교의 저항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이 밝혀지고 있다.  동서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종식되면서, 종교와 인종은 분규의 주요 원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93년 8월 사무엘 헌팅톤은 무척 논란의 대상이 된 "문명충돌론"에서, 앞으로의 국제갈등은 문명충돌의 성격을 띌것이며, 기독교문명권과 이슬람문명권의 충돌이 필연적이라고 발표하기도 하였다.
    사실 종교와 정치는 제정일치시대부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근대화와 함께 권력의 세속화가 시작되었으나, 많은 비서구국가에서는 아직도 완전한 세속화가 진행된 것이 아니며 종교 없이 정치를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아시아 지역은 다른 대륙에 비해 종교성이 풍부한 곳이다.  세계의 주요 종교들 - 기독교, 불교, 유대교, 이슬람교, 유교, 힌두교 - 가 모두 이 지역에서 유래했다.  아시아의 전통사회는 지극히 종교적이었다.  이 지역의 삶의 형태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측면에서 그들의 종교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본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아시아지역에서  중동과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제외한 극동아와 동남아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정치와 종교의 관계를 서베이하고 있다.  주제가 광범위한 만큼, 깊이 파들어 가는 세밀화가 되지 못하고, 문제에의 접근을 위해 전체적인 윤곽을 잡는 개괄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앞으로 각 지역, 각 종교에 대한, 또 각 주제에 대한 보다 세밀한 연구가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이 나오기 까지 이해하고 도와준 사랑하는 남편 박정근 집사, 두 아들 은우와 인우, 살림을 도와주신 어머니, 백재철 조교, 조언을 아끼지 않은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의 한철하 총장님, 정규남부총장님, 전호진 교수, 아세아학과의 우심화, 권형기 교수, 할렐루야 교회의 김상복 목사님, 서울대학교의 박찬욱   , 최정운교수와 경희대학교의 권만학교수, 연세대학교의 함재봉교수, 의 조언과 격려에 마음 깊이에서 감사를 드린다.  또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양서출판지원에 감사드리며 출판을 맡아주신
에 감사드린다.


제 1장 서론
제 1절.  선교를 위한 지역학의 의미
1. 선교의 대위임령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후 부활하여 승천하기 전에 제자들에게 땅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대위임령을 남겼으며,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될 때 재림하리라는 약속을 남겼다.  유럽이 복음화되고 기독교문화가 정착된 후 16세기에 이르러 배와 화약의 발명은 복음이 비서구지역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길을 열어 주었다.
   21세기를 바라보는 지금은 바로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 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시기이다.  18세기 이래 산업혁명, 과학기술혁명, 교통통신의 발전, 세계화의 진척, 문맹율의 감소로 인해 이제는 거의 누구나 성경을 읽고 복음을 이해할 수 있으며 선교를 포함한 국제적인 교류가 용이한 시대가 되었다.
   한편 소련의 붕괴이후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감소되면서 오히려 종교와 인종분규가 빈번해지고 있으며, 각종교에 근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선교에 새로운 장애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장애를 이해하고 극복하여 선교의 풍성한 수학을 거두기 위해서는  선교를 위한 지역학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여기서 선교란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도하기 위하여 복음을 들고 문화의 경계를 넘는 것이며 또한 사람들을 권하여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게 하여 교회의 책임적인 일원이 되게 하여, 성령이 인도하시는대로 전도화 사회정의를 위한 일을 하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Arthur F. Glasser and Donald A. McGavran, Contemporary Theologie of Mission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3), p.26.
   선교는 우선 복음이 무엇인가, 무엇을 가서 전할 것인가의 이해가 분명해야 한다.
   기독교 종교의 중심진리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참되심과 그의 공의로우심과 영광을 견지하는 일이요, "그의 보내신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온세계에 이루어 나가는 일로서, 이것이 성경이 중심적으로 가르치는 유일의 진리 내용이다.
한철하,"ACTS 신학건설의 과제와 그 방법론"  <아신 10> (1994),pp.14-36.
   "기독교 종교의 이 중심진리는 한마디로 말해서 복음신앙으로 말미암아 구원얻는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진리는 종교개혁자들이 일치하여 주장한 이신득의 (justificatio sola fide)의 진리요 , 어거스틴이 Pelagius를 반대하여 세웠던 sola gratia의 진리요, 사도 바울이 먼저 "사람이 의롭다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롬 3:28)고 선언한 진리"이다.(31)
    기독교의 중심진리는 세가지 중요한 요소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창조자되시고 구원자되신 하나님께서 모든 일의 중심이 되신다는 진리, 둘째는 그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께서 구속의 성업을 성취하셨다는 진리, 셋째는 교회의 사역을 통하여 말씀으로 죄인을 부르시고 죄 사함 주시어 새 사람이 되게 하시고, 이 세상 사는 동안 복된 소망 가운데서 선한일에 힘쓰는 친백성이 되게 하시는 진리이다.
한철하, 위의 논문.

2.아시아 복음화와 한국의 역할
   아시아는 전세계인구의 4/5가 집중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3%만이 기독교인이다.  55% 인구가 공산주의 영향 하에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16세기와 19세기 말에 걸쳐 서구 제국에 의해 아시아 복음화의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불행하게도 제국주의의 모습으로 나아갔으며, 아시아의 민족주의적인 저항에 부딪쳤고, 복음화에 실패하고 말았다.
   제국주의란 한 나라의 다른 나라에 대한 지배를 의미한다.  무력점령이 수반될 대 식민주의라 하며 때로는 경제적 문화적 제국주의를 논하기도 한다.  19세기 서구 각국은 자신들이 제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Kipling의 White Man's Burden이라는 시를 보면, 백인들이 미개인들에게 문명을 전파할 책임을 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제국주의란 개념이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은 근대국가가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의 충돌에 의한 제 1,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고 철저하게 파괴된 이후였다.
   역사상 두가지 큰 제국주의의 물결이 있었다.  제 1차 제국주의는 16세기, 화약과 조선기술이 발달하면서, 서구가 비서구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 때이다.  스페인, 포르투갈, 네델란드, 영국, 프랑스는 3G, 즉 왕의 영광 (Glory),황금 (Gold), 하나님 (God)을 추구하면서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특히 중남미 지역을 정복했다.  <세계선교역사참고>
   제 2차 제국주의는 19세기 중엽을 전후한 때에 시작되었다.  스탠리, 리빙스턴등 선교사와 탐험가들이 진출해 있던 아프리카에 상인과 경찰과 헌병이 따라 들어가면서 제국간의 경쟁이 치열해 졌고, 20년 남짓한 기간에 아프리카는 완전히 분할되었다.<정치학사전참고 - 제국주의>  아시아에서 중국은 열강의 경쟁 가운데 분할되는 운명을 간신히 모면하였고, 영국은 버어마를, 프랑스는 인도차이나를 지배했다.
   놀라운 것은 제국주의의 진행과정에서 이를 도덕적으로 비판하거나 선교를 도모하고자 하는 교회의 열의는 부족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우선 선교신학이 잘 정립되어 있지 않아서 땅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는 대위임령에 대한 각성이 잘이루어지지못했던 점을 들 수 있다.  영국이 인도를 16세기 이래 식민지화해서 지배했지만, 선교의 노력이 조금이라도 있었던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루어진것이다.  William Carey의 인도선교 노력에 있어서 당시 영국의 복음주의신학자들은 "하나님이 인도를 선교하시려 한다면 우리의 노력이 없이도 이루실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으니, 그 선교에 대한 열정을 짐작할만하다.
   또한 서구가 아시아를 만났을때 그것은 기독교문명권으로서 복음을 전파하려는 열정으로 겸손하고 섬기는 자세로 나아간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문명에 대한 우월감, 제국에 대한 자만심, 타문화권에 대한 민족적 경멸감으로 나아갔으며, 선교사가 도착하기전 벌써 상인들과 군인들과 경찰이 도착하여 제국주의적 지배를 확립하였던 것이다.
   한마디로 아시아지역에서 서구의 복음화는 실패했다.  제국주의의 역사는 권력과 부를 위한 세속적 욕망의 충돌로 점철되었다.  그러기에 허버트 버터필드가, "1914년 전쟁은 그 자체가 유럽에 대한 심판이요, 당시 모든 우리 문명에 대한 심판이었다"고 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허버트 버터필드, {크리스천과 역사해석} 김상신 역(대한기독교출판사, 1982),p.148.
   물론 서구의 역할이 전혀 무용했던 것은 아니였다.  그들은 근대화를 전파하였고, 과학기술 통신 교통의 발전은 땅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는 데 훨씬 용이한 환경을 조성하였다.  서구에 의해 파급된 근대화는 전통종교의 세속화를 가져왔다.  민신과 전통종교를 타파한 공산주의조차도 복음화를 위해 이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다가 오는 21세기 아시아 복음화의 주체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기독교 문화국가들이 될 것이다.
   21세기는 아시아태평양시대가 되리라는 전망이다.  역사의 중심은 유럽에서 영국으로, 그리고 미국으로, 즉 대서양시대에서 태평양시대로 옮겨져 왔으며 이제는 서태평양시대의 개막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渡邊利夫 {서태평양시대가 오고 있다}
{성장아시아 정체아시아}  백길호역 (한국경제평론사, 1990)
   역사의 중심은 일본, 중국,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폴등 소위 신흥중공업국가의 역동적 경제가 위치하 고 있는 서태평양이 되리라는 전망이다.
   또한 한국이 만약 통일을 이룰 수 있다면, 이지역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다.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자원과 인력, 세계 제 4,5위의 군사력이 합쳐질때 그 잠재력은 엄청나다.  한국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통합을 이루어 낸 국가로서, 선진도덕국가로서 발전의 모델을 제시하는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역에서 가장 역동적인 교회성장을 이룬 것은 한국, 중국, 그리고 인도네시아이다.  역사는, 아시아 복음화에서 한국이 선도적 역할을 담당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선교를 위한 지역학이 발전해야 한다.

3.선교를 위한 지역학의 기본전제와 방법론
   선교를 위한 지역학은 기존의 지역학과 그 성격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기존의 지역학은 대부분 군사외교안보경제활동등 국가이익에 필요한 학문으로서 서구에서 배운 사회과학적 전제와 방법론에 입각해 있다.  사회과학은 경헙적으로 증명될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하나님의 존재를 덮어두고, 현상에 내재하는 진리를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방법에 의해 규명해 가고자 한다.  그러나 사회과학은 그 자체가 과학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전제에 서있는 한계가 있다.  즉 세계가 물질계와 자연현상으로 존재하며 우리가 그 세계를 경험적으로 인식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될 수 없는 전제의 하나이다. 그러나 해바라기의 움직임을 아무리 객관적이고 실증적으로 연구한다해도 태양을 배제한체로 연구한다면 진리에 도달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필자는 비교정치학자로 훈련받고 신학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기존의 비교정치학이 이 지역의 정치와 종교의 관계에 대해 상당히 취약함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때문이다.
   첫째로, 비교정치학이 냉전시대 강대국의 이해를 위해 군사안보외교의 목적에서 수행되었기 때문에, 연구대상지역의 내면세계, 영성이 정치와 어떤관계를 가지는가에는 무관심하였다.  외국을 세력균형의 상대, 자국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잇는 잠재적 적국으로 보고 그들간의 관계에서 보다 국익을 도모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지역학이 수행되었다.  또 아시아는 강대국의 지배의 대상, 객체로서 연구되었다.
   둘째로, 과거 지역학의 서구중심적 편견이다.  서구의 영향을 받은 비교정치학이 이미 서구에서 진행된 정치의 종교로부터의 분리, 즉 세속화를 전제로, 비서구지역에서의 연구에 있어서도 마치 정치가 이미 종교에서 분리되었고 분리될 수 있는 영역인것처럼 다루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서구지역에서는 아직 세속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곳이 많다.  그 결과는 아시아의 정치현실에 대한 가장 중요한 설명이 결여되게 된 것이다.
   일례로 비교정치학 분야의 정치문화의 연구를 보자.  Almond의 신민문화론은 참여적 정치문화가 발전된 정치문화라는 서구의 척도로 타국 정치를 재고 있을뿐 진정한 정치문화의 이해에 못미치고 있다.  태국에서의 국왕의 정통성을 뒷받침하고 있는 불교정치문화의 특성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그러한 이론이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중국공산주의가 왜 유교로 회귀하려 하는지, 말레이지아의 발전으로의 노력과 이슬람의 역할을, 그러한 이론이 얻허게 설명할 수  ㅆ는가.  서구의 비교정치학은 정당이 몇인지, 선거가 어떻게 치루어지는지, 이익집단의 역할은 무엇인지 관심을 갖지만, 아시아 지역의  권력과 정통성과 지배와 분배과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본적인 종교와 문화에 대해서 이해가 전무하거나 극히 초보적이다.
   셋째로, 행태주의와 사회과학의 선호는 마치 정치에서 종교를 배제하는 것이 과학적인듯 여기는 결과를 가져왔고, 종교가 의도적으로 무시되었다는 사실이다.  "기독교정치학"은 주관적이고 비과학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네번째로, 한편 종교가 사회과학의 연구대상이 되기에는 주관성과 초월성이 강하기 때문이기도 한다.  사회과학자들은 영적 문제에 현저한 무력감을 느낀다.  종교라는 주제 자체가 난해하다.
   다섯번째로, 서구학문의 지나친 분업현상이다.  정치학과 신학, 종교학의 간격을 좁히기에는 양 분야가 너무나 전문화 분화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현대의 사회과학은 현실을 기독교 시각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신자에게는 갈급함을 더해줄 뿐이며, 때로는 그 자체로서 무신론을 전파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한 사회의 정치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내면세계, 영성과의 관계가 탐구되어야 하는 것이다.  본서는 선교를 위한 지역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 즉 가시적인 정치현상이 불가시적인 영성과 어떠한 관계를 갖고있는지를 기독교의 시각에서 사회과학의 언어와 방법론을 바탕으로 접근하였다.  정치적 현상 이면에 있는 종교의 영성과 현실과의 관계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선교를 위한 지역학은 다음과 같은 기본전제에 입각한다.
첫째, 창조주되시고 구원주되신 하나님이 역사현실의 중심이 되시며, 둘째 모든 정치경제사회분화 현실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복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으로서 하나님의 구속과 심판에 비추어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철하, "ACTS의 신학적 토대" 1989.1
Han Chul Ha, "The Theological Tasks of ACTS" Asian Journal of Theological Studies (1989).

  등소평 사후 중국이 왜 유교로 회귀하려고 하는가.  사회주의 시장경제와 유교의 상호관계는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일본의 신보수주의의 방향은 무엇인가. 말레이지아의 비젼 2020가 이슬람을 바탕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모든 구체적 상황들이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에 비추어져 기독교적인 해석이 내려질수 있다.    각 역사적 단위 (historical unit)의 목표는 복음화라는 말로 설명되어져야 한다.
    선교를 위한 지역학은 정치현실 속에 하나님의 권능과 구원사역을 발견하며, 복음에 의해서밖에 구원될 수 밖에 없는 인간사회의 좌절과 희망을 서술하고 믿음에 이르는 길을 분석한다.  정치현실을 복음화에 비추어 평가하며, 선교전략을 모색한다.
   즉 선교를 위한 지역학은 신학에 뿌리박고, 현실연구를 통해 선교학으로 연결되는 접촉점을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을 도표로 표시하면 <도 1>과 같다.


           복음주의신학    지역학     선교학

   이러한 신본주의적 전제에 입각할 때 지역학의 연구는 연구문제의 선택, 중요도,과제를 다루는 시각에 있어서 일반 사회과학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사회과학의 언어와 개념은 큰 도움이 된다.  선한자와 악한자에게 골고루 햇빛을 비추시며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의 일반은총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의 잔재로서 이성과 양심이 있다.  사회과학분야에서 발전된 인간의 이성에 의한 지식의 축적은 선교를 위한 지역학의 발전에 유용한 수단을 제공한다.
   그리스도는 사회과학을 초월하며 그 객관성마저도 상대화하지만, 또한 사회과학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진리로 인도한다.


제 2절  동아시아의 종교와 정치: 개념 정의및 문제의 제기
1.동아시아지역의 개관
    아시아는 종교성이 강한 대륙이다.  아시아라는 말은 시리아 어의 "동쪽"이라는 어원에서 나온 말로서, 창세기의 에덴 동산이 있었다고 생각되어 지는 지점의 동쪽에 위치한 지역이다.
{동아대백과 사전} 참조
     워낙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있는지역이기 때문에 한마디로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이 지역이 다른 대륙에 비해 종교성이 풍부한 곳이라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계의 주요종교들이 모두 이 지역에서 유래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북아프리카와 남미에 있어서도 종교와 정치의 관계는 아시아 못지 않게 중요하다.
   창세기 9장에 보면 세상이 악하여 하나님이 사람지은 것을 후회하시고 홍수로 세상을 멸망시키실때, 노아라는 의인과 그의 가족만이 방주 속에 살아 남게 되었다.  그에게는 함과 셈과 야벳이라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노아가 술취하여 잠들었을때 함은 이를 바깥의 두형제에게 고하였고, 두 형은 아버지의 수치를 덮어 주었다.  노아는 함의 아들 가나안에 대하여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들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고 저주하였고,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하였다.   많은 구약학자들이, 셈이 후손이 아시아민족이며 "셈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말처럼 아시아는 가장 종교성이 강한 대륙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에 대한 해석은 신학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아시아의 종교성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중국처럼 무신론인 공산주의를 오랫동안 실험해 온 나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학자들은 중국이 아직도 종교적인 문화권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한다.  모택동 사후 강택민등의 후계자들은 등소평의 개방개혁이 가져온 퇴폐와 혼란을 비난하면서 유교를 부흥시킬 것을 주장했다.
길균강좌
     아시아 지역은 편의상 극동아, 동남아, 서남아, 중동, 중앙아시아의 지역으로 나누어 진다.  본서에서는 극동아와 동남아를 포함한 광범위한 의미의 동아시아지역에 있어서의 종교와 정치의 관계를 고찰하고자 하는 것이다.

    <도 1  >은 가장 다수가 믿는 종교를 통해 본 이지역의 종교분포를 나타낸다.
<도 1> 아시아지역의 종교분포
<표1>은 구체적인 종교분포와 GNP, 정치체제유형의 분류이다.

<표 1>동아시아의 종교, GNP, 정치체제 유형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주요종교
국가     종교분포                                    GNP*    정치체제
       기독 불교 유교 이슬람 힌두 신도 무/기타
      (개신)(중국종교)**{신흥종교}<샤마니즘/애니미즘>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기독교
한국    35.3  27.7 1.2  0.06   -    -    20.0        8,550    민주주의
       (27.1)         {5.7}     <10>
필리핀  90    -    -   8.0     -    -     1.3        1,010    민주주의
       (7.5)                    <0.7>
러시아  56.3   0.6     8.7    0.47  -    32.7        2,100    민주주의
       (0.7)                    <0.8>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불교
라오스   1.53 58.7      1                  5.1         325    사회주의
        (0.72)(0.7)               <33>
미얀마   6.5  87.8      3.8    0.5   -     0.3         890    군부독재
        (5.2)                     <1.1>
태국     1    93.4      4                            2,315
        (0.43)(1.6)
베트남   9.8  52        0.2               29.8         220    사회주의
        (0.8)      {5.2}          <3>
캄보디아 0.38 87    -                      7           215
        (0.10)                    <2.7>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유교/중국종교/무종교
중국     6.1   3       15.4     -    -    59.1         435    사회주의
        (5.1)(27)                 <2.4>
싱가폴  14     -       15.4   3.3    -    14.2      22,520    권위주의
        (8)  (52.4)
대만     5              0.4     -     -   24.2      11,236    민주주의
        (3.1)(70.4)
홍콩    14.1            1       -     -   15.2      21,558    민주주의
        (8.5)(66) {3.6}
북한    0.6-2  1.7       -     -     -    68           919    사회주의
        (0.4) <29.5>***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슬람교
브루나이 8    -    -   71      -    -     6.5       18,500    절대군주
        (3.8)(9)                 <5.5>
인도네  12.5  1    -   87     1.9   -     -            780    일당군민  시아    (9.3)                    <1>
말레이   8.6   7       55    6      -     3          3,530    근본주의
  지아  (5)  (18)                <2.4>                        회교정당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신도****
일본     2.5  58        0.2          80   12        38,750    민주주의
        (1.13)    {24}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자료: Asia Week, June 16, 1995; 종교분포는 Patrick Johnstone, Operation World (Carlisle, U.K.:  OM Publishing, 1994).
**중국민속종교/불교: 중국종교는 불교, 도교, 유교 그리고 민속종교의 혼합
***한국종교: 샤머니즘과 유교의 혼합
****일본의 경우는 독특하다.  84%에 달하는 일본인들이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이들 때부분은 일본전통종교의 관습을 따른다.  여기 나타나는 비율은 지침에 불과하다.  신도는 80%가 믿으나 3%만 신자라고 주장한다.많은 사람이 불교와 신도의 관습을 함께 따른다.
58%가 불교라고 답하지만 20%만 이 종교의 관습을 실행한다.  신흥종교는 대부분 불교와 신도의 분파로서 뉴에이지 세계관과 혼합된다. 해마다 100개 신흥종교가 형성된다.

   <표 1>은 이 지역의 종교, GNP, 정치체제의 분표를 요약한 것이다.
국민 전체에 대한 비율에 있어서 개신교도의 비율이 제일높은 것은 한국(27.1%)이다. 그 다음은 인도네시아(9.3%), 홍콩(8.5%), 싱가폴(8%), 필리핀(7.5%)의 순서이다.  그러나 절대적인 교인 수에 있어서는 최근 교회가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5.1%)이 6천-8천만, 인도네시아(9.3%)가 천 칠백만으로 한국의 천만 신도에 비해 많다.  러시아의 기독교(개신교 0.7%)는 러시아정교가 대다수이다.
   한편 이 지역의 최빈곤국은 사회주의 국가들인데, 이들은 대부분 불교문화권이다.
   유교문화권의 국가들은 중국과 북한의 사회주의국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였다.  사회주의 국가중에서도 유교문화권의 국가들은 불교문화권에 비해 경제성장률이 높은 편이다.  신도를 국가종교로 하였으며 유교의 영향을 강력히 받은 일본은 이 지역 최대의 경제대국이다.  유교문화권인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폴은 80년대에 "아시아의 네마리 용"인 신흥중공업국으로 급부상하였다.  그것은 다소 권위주의적인 정치문화가 유지되면서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공산주의의 실험하에 경제개발이 지체되었던 중국도 등소평의 개방개혁과 함께 연평균 경제성장률 13.75%를
기록하고 있다.
   이슬람문화권에서는 서구식의 자유민주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경제발전 수준은 다앙하다.  브루나이의 높은 GNP는 석유수출에 힘입은 것이다. 동남아의 새로운 신흥중공업국인 말레이지아는 이슬람근본주의를 유지하면서 비젼 2020의 수출지향적 경제발전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역시 이슬람이 강하지만 보다 개방적인 인도네시아 역시 이슬람의 강력한 영향력 하에 근대화의 길을 가고 있다.

2.종교와 정치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며, 또한 종교적 동물이기도 하다.  폴틸리히가 "종교는 문화의 내용이고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다"라고 하였던 것처럼, 모든 인간은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지 그의 종교를 갖고 있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종교는   "신이나 또는 어떤 초월적인 절대자를 인정하여 일정한 양식 아래 그것을 믿고 숭배ㄱ하고 신앙하는 것에 의해 마음의 안락과 행복을 얻으려고 하는 정신문화의 한체계"로 정의된다.
신기철 신용철 편저 {새우리말 큰사전} 삼성출판사, 1989.
   애니미즘, 자연숭배, 토테미즘따위의 원시적 종교로부터 주물숭배, 다신교같은 저급종교를 거쳐 오늘랄의 세계적 종교 곧 불교, 기도교, 회교에 이르기까지 문화단계의 차이, 인종등에 따라 다양함.
종교를 정의하는데 인본주의적인 시각과, 신본주의적인 시각의 차이가 있다.

   종교는 외형적인 형태로 기본적인 요소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첫째, 초경험적, 초자연적인 신, 절대자의 존재
둘째, 신화, 숭배의 일정한 의식
셋째, 신앙공동체.


   본서에서는 아시아 각 지역 전통문화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쳤던 유교, 불교, 신도,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를 다룬다.  지면관계상  힌두교가 다루어지지 않았다.
   미국인 통계전문가 데이빗 발레트씨가 1995년 7월 발표한 집계결과는 전세계 인구 58억명 가운데 기독교인은 19억명, 이슬람은 10억 6천만명, 힌두교가 7억 7천만명, 불교도가 3억 4천 1백만명, 신흥종교 추종자가 1억 2천 8백만명 순으로 조사되었다.  그 밖에 애니미즘, 시크교, 유대교 순으로 나타났으며 무신론자는 11억 8천만명이다.  기독교인중 캐톨릭이 10억 5천만명, 개신교는 3억 5천 4백 70만명, 정교회인은 1억 8천 9백 60만명, 성공회인은 5천 7백 40만명이다.

 


    동아시아를 문명권으로 분류하는 것은 유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1993년 7월 Foreign Affairs 에 발표되어 논란의 대상이 된 Samuel P. Huntington의 문명충돌론은 미래의 세계분쟁의 주된 요인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종교를 바탕으로 형성되는 문명이라고 주장하면서, 세계를 "'문명권"으로 구분하였다.  물론 권력이나 경제적 이해보다 문명이 중요한 갈등요인이 될 것인가하는 것은 논란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의 비서구사회에서의 종교의 역할에 대한 논의는, 그동안 비교정치학분야에서 간과되어 온 사실상 막중하게 중요한 정치적 변수에 주목을 집중시킨 점에서 파라다임 전환적인 중요성을 가진다고 보여진다.
Samuel P. Huntington, "Clash of Civilizations" Foreign Affairs (1993).
   유교문화권; 한국, 중국, 홍콩, 대만, 싱가폴
   불교문화권: 인도차이나 반도의 태국, 미얀마, 캄푸챠, 라오스, 베트남
   기독교 문화권: 필리핀, 러시아, 한국의 일부
   이슬람문화권: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
   신도문화권: 일본


죠쉬 맥도웰은 종교를 "인간들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절대적인 존재와 더불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인간경험의 영역"이라고 하여 그러한 절대성에 대한 인간의 반응으로서 종교를 정의하였다.
  죠쉬 맥도웰/ 돈 스튜어트.  <이방종교>이 호열 역 (기독지혜사, 1987), p.10
   종교는 신에대한 교리, 이론, 사고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단순한 철학만일수도 없다.  초기 종교사학자들이 시사했던 것처럼 인간의 비논리적이고 반지성적인 ㅌ측면에서 우러나오는 것도 아니다.
   기독교의 입장에서 종교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비록 아담의 타락이후 인간이 죄성의 노예가 되어 심히 부패하고 타락되어 있기는 하지만, 인간에게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신앙심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종교는 인간의 문화에 있어서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것은 포이에르바하와 같은 무신론자들이 주장했듯이 인간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창조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기에 인간에게 신앙심이 있는 것이고, 또 믿음이란 인간의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타종교, 즉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혐오는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는 제일계명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말라"는 제 2계명에
명확히 나타나 있다.

   정치는 공동체의  정치권력을 둘러싼 현상, 보다 정확히 말해서 "모든 사회구성원을 규제하는 권위적 정책결정및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개인과 집단의 상호작용, 갈등, 경쟁, 협력 현상"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범준 신승권, <정치학> (박영사, 1988), p.12.

    종교와 정치의 관계

종교를 역사관과 속세관에 따라 분류
종교를 분해: 종교적 요소, 민주적 요소, 비민주적 요소
종교는 정치문화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정치적 권위의 정통성을 뒷받침한다.
저항민족주의의 기본세력이다.

종교와

 


 대부분의 아시아지역의 역사현실에서 권위적 정책결정이란 소수의 지배자 엘리뜨, 특히 종교엘리뜨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정치란 보다 약육강식의 동물적 질서에 가까운 특징을 띄고 있었다.  즉 강자의 약자에 대한 지배, 기득권자의 계층형성및 특권보호등이다.  절대군주의 전제정치가
일반적이었으며 정치문화는 대중이 정치에서 소외된  향리형 또는 신민형의 특성을 띄고 있었다.
Gabriel Almond and Verba, Civic Culture
   근대화와 더불어 민주주의, 사회주의, 평등과 자유의 이념이 도입되었으며 이에 대해 전통종교는 거부, 수용, 적응, 전적인 투항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정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어떠한 정치가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는 것인가.   구약에는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의 역사가 나타난다.  이들을 통해 우리는 정치적 권위가 특히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것임을 발견한다.
   아브라함은 가부장적 지도자이면서 제사장이기도 하였고 하나님께서 세상에 세우고자 하시는 의로운 질서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것을 몸소 실천하기 시작하였다.  모세는 하나님의 율법을 선포하고 이스라엘 사회가 구현해야 할 의로운 질서를 제시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정착한 후 악을 행하여 적들에게 약탈을 당했을때 "여호와께서 사사를 세우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내셨다" (삿 2:16)  사사기에 이르러 부모의 권위, 제사장의 권위, 정치적 권위가 점차 구별된다.
   사무엘시대에 이르러 정치적 권위는 독립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왕을 주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요구에 의해 세우신 것이었다.  그들이 왕을 원한 이유는 첫째  사무엘의 아들들이 정의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이었으며 (삼상 8:3) 또 하나는 열방처럼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그들이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라"라고 하시면서  사무엘로 하여금 왕으로 말미암아 생길 비참한 결과를 경고하도록 한다. (8:11-18) 그것은 권력의 남용에 대한 경고였다.  그래도 사람들은 "우리도 열방과 같이 되어 우리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라고 왕을 요구한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고 말씀하셨다.   즉 이스라엘이 왕을 원한 이유는 잘못된 이유, 주변의 열방과의 전쟁이었으나, 하나님은 공동체의 방어와 회복과 정의의 수단으로 왕을 임명하셨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왕이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아보았노라"고 말씀하신다.
H.J. Boeker, Law and the Administration of Justice in the Old Testament and Near East trans. J. Moiser (London: S.P.C.K., 1981).
폴마샬, 한화룡 역 <기독교 세계관과 정치> (IVP, 1989).
   그 후 제사장 사무엘은 왕의 권한과 의무에 대해 말하고 기록하였으며 왕은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자가 되었다.   왕의 권력의 남용은 선지자들의 견제의 대상이 되었다.
    이처럼 정치적 권위는 공동체를 보호하고 의인과 악인을 공정하게 판단하고 보상하는 권위로서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귄세는 하나님의 정하신바라고 하였다. (롬 13:1-4)  관원들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라고 하였다.  국가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정의를 유지하기 위해 세우신 것이다.
   그리하여 칼바르트는 기독교인이 정치에 진출하여 국가가 기독교정신에 맞게 발전하도록 하는 것이 교회의 정치적 역할이라고 보았다.
Karl Barth, Community, State and Church - Three Essays (Gloucester, Mass Peter Smith, 1968), pp.187-88.

 

10)Reinhold Niebuhr, Moral Man and Immoral Society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60), 이병섭 역,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서울: 현대사상사, 1972).
(3)종교와 정치의 관계
   종교가 영적, 초월적, 초국가적인데 반해서, 정치는 세속적 차원이다.  종교와 정치의 관계에 접근하는 방법은 세속적 차원에서 정치가 어떻게 종교를 이용하였는지 정치학적인 시각과 개념을 도입하여 분석하는 방법이 한가지 있겠고, 또 한 가지는 영적 차원에서 가시적 정치현실 이면의 영적 의미를 분석하는 방법이 있다.
George Moyser는 아시아의 종교가 정책결정과정, 민족구가, 정치체제, 정당, 이익집단, 대중, 정치갈등, 정치문화에 미친 영향을 정치학의 입장에서 보았다.
Goege Moyser, ed. Politics and Religion in the Modern World (London and New York: Routledge, 1991), pp.3-8.
   종교와 정치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변천을 겪어 왔으며, 특히 근대화는 정치권력의 세속화라는 독특한 결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종교와 정치의 관계를 논의하는데 있어서는 근대화의 맥락에서 분석이 중요하다.
첫째, 전통사회에서 종교와 정치의 관계 패턴이다.  종교는 어떻게 정치적 권력의 정통성기반으로서 역할했는가?  종교는 정치문화의 형성에 어떠한 역할을 미쳤는가?  정치는 종교를 어떻게 이용하는가?
둘째, 근대화의 충격에 대한 전통사회의 대응에 있어서 종교의 역할을 민족주의의 맥락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아시아 지역에 있어서 대부분의 국가는 서구의 충격, 특히 제국주의적 지배를 통해 근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전통사회의  대응은 서구문화에의 동화, 선별적 수용, 전적 거부로 나타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통종교의 역할은 무엇이며, 각 국에 있어서의 유사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민족주의에 있어서  전통종교의 역할은 무엇인가?
셋째, 독립이후 민족통합과 발전을 지향하는 과정에 있어서 종교의 역할이다.  발전론의 맥락에서, 자유민주주의 , 시장경제, 또는 사회주의, 고유의 발전모델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종교의 역할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민족통합, 정체성 확립, 리더쉽의 효율성과 정통성, 사회정의와 분배, 시민의 참여에 있어서 종교의 역할은 무엇인가.

Bardwell L. Smith ed. Religion and Legitimation of Power in Thailand, Laos, and Burma (Pensilvania: South and Southeast Studies by Anima, 1978).
E.J. Brill, Religion and Legitimation of Power in South Asia  (Leiden, 1978)


제 3절 .이론적 틀
 1.전통사회의 정치와 종교 관계유형
   정치와 종교는 모두 인간사회에 보편적인 현상이며, 대부분의 전통사회에서 정치와 종교는 구조적으로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또한 대다수의 전통사회에 나타나는 현상은 정치지도자가 신적인 존재로서 신격화되거나, 제정일치로서 제사장의 역할을 행한다는 사실이다.  정치지도자의 권력은 신비한 초월성, 범인이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신성성과 의 관계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다.
   그 유형을 구분해 보면  신격화, 제정일치, 국교의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번째로 지도자가 신성을 지닌 존재로 숭배의 대상이 되는 신격화 유형이다.   구약에서 이집트의 왕 바로는 성육한 신 (the god incarnate) 로 간주되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고대로부터 느부갓네살왕이 자신의 우상을 세우고 절하기를 강요했듯이, 역사상 수많은 정치적 지도자가 자신을 신격화한 기록이 있다.  알렉산더 대제와 시저를 비롯하여 근세의 김일성에 이르기까지, 신격화의 예는 많이 찾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신성과 인성의 구분이 확실치 않거나 연결선상에 있는 애니미즘, 샤마니즘, 다신론, 범신론등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첫번째로 제정일치 유형은 이슬람, 힌두, 유교, 신도문화에서 발견된다. 여기서는 정치적 통치자가 종교적 제사장의 역할까지도 함께 담당한다.  인도의 캐스트 제도에서 제사장계급인 브라만은 또한 통치계급이다.  이슬람의 칼리프는 제정일치적 지도자이다.  아직도 일본의 천황은 신도의 수장이며, 영국의 왕은 성공회 교회의 수장이다.  구약에서도 사무엘시대에 이르러 왕을 세우기 까지 지도자의 권위는 모두 제정일치적이었다.  그들은 제사를 지냈고, 신과 소통하였으며, 정치적으로 다스렸다.  중국의 유교체제에서
역시 천자는 천 (天)에 제사지내는 직분을 독점적으로 담당하는 제사장이었다.
줄리아 칭, <중국의 유교와 기독교>
  제정일치 유형에서는 정치구조와 종교구조가 중첩되며 종교구조가 따로 분리되어 발전하지 못한다.
   두번째의 국교유형에서는 정치지도자와 종교지도자가 분리되어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데  이것은 유대교, 기독교와 불교문화에서 발견된다. 기독교에서는 구약의 사울왕으로부터 종교적 기능과 분리되어 정의를 행하며 통치하는 정치적 권력의 전통이 존재했다.  이스라엘의 왕은 평범한 인간으로서, 세속적인 기능만을 갖는다.
Henri Frankfort, Kingship and the Gods (Chicagp & Lond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8), pp.337-42.
  예언자와 선지자는 남용되는 정치권력에 대한 견제역할을 수행했다.  한편 종교개혁이후에는 중세 로마교황의 지배적인  종교적 권위에 대해 독립을 희구하는 신생 민족국가의 절대군주들에 의해 권력의 세속화가 신속히 이루어 졌다.  불교는 호국종교의 성격을 띈 경우가 많다.  여기서는 종교조직이 정교하게 발전하는 경향이 있다.
D.E.Smith (1970), Religion and Political Development (Boston, MA: Little, Brown). 그는 제정일치와 국교유형의 두가지를 논했다.


한편 정치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는 허무주의, 속세지향, 그리고 사회참여의 세가지 유형을 구분할 수 있다.
   허무주의적인 힌두교, 불교에 있어서 인간의 고통의 근원은 업보이며, 끝없는 윤회를 탈피하는 길은 업보에서 해방되는 것이요, 그러기 위해서는 될 수 있으면 세속에서의 탈피가 이루어져야 한다.  정치는 엄밀히 말해서 이러한 속세의 행위이다.  이들은 속세에 참여하는 것을 기피하며 현실세계에 대해 허무주의적이다.  따라서 힌두교와 불교에는 역사관이나 발전의 개념, 사회윤리가 부재하다.  이들에게 있어서 역사란 무한하고 순환적이며 흥망승쇠를 거듭하고 구태여 도덕적 의미를 갖지 않는 과정이다.
   이에 비해 유교는 훨씬 현세지향적이다.  유교는 내세에 대해 불가지론적인 태도를 취하며, 현세에서 어떻게 조화로운 삶을 지향하는가에 관심이 깊고, 명확한 정치철학을 가지고 있다.
   사회참여 유형에서는  내세를 지향하면서도 현실의 참여에도  비중을 둔다.   창조주가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을 창조한후 땅에 번성하여 충만하고 다스리라는 문화위임령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물질세계를 경시하고 관조적이고 명상적인 알라에 바쳐진 중교적인 삶을 중시하는 차이가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은 또한 모두  분명한 역사관과 사회윤리를 가지고 있는 종교이다.  세상은 창조주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순환하는 세속사와 평행하여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왕국이 확장되는 구속사가 전개되고 있다.  역사의 종말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면서 이루어질 것이다.

<종교체제의 분석>

+------------+---------------------------+---------------------------+
|     역사관 |       비역사적 |         역사적 |
| +-----------+---------------+-------------+-------------+
| 구조\정치관|  허무주의 |  현세지향적 |  내세지향적 |  사회참여 |
+------------+-----------+---------------+-------------+-------------+
|제정일치 |  힌두 |  유교 |   이슬람 | |
| | | | | |
| 국교 |  불교 |  신도 | |   기독교 | | | | | | |
| 신격화 | | 다신론,무신론 | | |
+------------+-----------+---------------+ ------------+-------------+

 이렇게 분류했을때, 다음과 같은 관계를 추정할 수 있다.
(1)제정일치구조보다 국교 구조에서 독립된 종교체제가 발달하기 때문에,
종교체제는 보다 일관성있고 신속하게 근대화의 충격에 대응한다.
 근대화과정에서 종교구조는 독자적으로 정부의 세속화 노력을 저지하고, 이익집단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대중의 여론을 조성하며 나름대로의 사회윤리를 창출한다.  그러나 제정일치 체제는 교회조직이 발달해 있지 않기 때문에, 종교의 이익단체로서의 응집력이 약하고  따라서 조직되지 않은 평신도들이 산발적으로 정부의 세속화를 저지하고 종교적 이익집단을 조성하며 정치세력화를 담당하고 사회윤리를 창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일례로 버어마, 실론, 베트남등에서 불문의 승려들이 서구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민족주의 세력을 보다 체계적으로 담당했던 것이다.
Donald Eugene Smith, Religion and Political Modernization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1974), p.7.

(2) 국교체제에서는 정부권력에 큰 변동이 있어도 종교가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제정일치적 사회에서는 세속화 과정에 종교가 더욱 취약하고, 종교에 대한 근본적인 재해석및 종교개혁의 필요성이 대두한다.  그러나 이러한 재해석을 담당할 조직적 기반은 취약하다.
(3)사회변화의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창출하는데 있어서 사회참여적, 또는 현세지향적 종교체제가 허무주의적 종교체제보다 유리하다.  특히 일직선상으로 발전하는 종말론적인 목적을 가진 역사에 대한 관점은, 민주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등 세속 이데올로기와의 결합을 용이하게 한다.
이에 비해 사회윤리가 부재하다시피한 종교는 사회발전을 담당할 추진력이 없다.
(4)신격화체제는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몰락과 함께 붕괴하며 변화에 취약하다.
(pp.6-7)

2.서구제국주의의 충격과 아시아민족주의에 있어서 전통종교의 역할
   아시아에 있어서 전통적인 종교와 정치의 관계에 변화를 가져 온 가장 큰 요소는 제국주의의 형태로 나타난 서구의 충격이었다.   기독교문화권인 서구가 처음 비서구권가 만난 것은 불행하게도 제국주의와 무력지배와 전쟁의 형태를 통해서였다.  근대의 우상인 국가의 무력에 의존한 제국주의야 말로 서구에 의한 아시아복음화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가 되었다.  이에 대한 저항민족주의는 의례히 전통종교와 강력히 결합하여 복음화에의 강력한 장벽을 형성했다.
   서구의 충격은 전통종교 엘리뜨의 권력에 도전이 되고, 전통종교는 저항민족주의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종교는 聖의 세계, 민족주의는 俗의 세계에 속하는 것으로서, 그 관계는 가변적이며 영속적인 결합이 계속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2)마르크스레닌의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이론의 오류
   한편 제국주의에 대한 가장 강렬한 비판은 마르크스레닌에 의한 것이었으며, 그러기에 많은 아시아의 민족주의는 공산주의와 손을 잡는 길을 택하기도 했다.  그들의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이론에 의하면 고도로 발전한 단계에서의 자본주의는 독점자본주의의 형태를 띄게 되며, 자본주의의 내부적 구조적 모순에 의해  즉 저임금에 의한 노동자의 구매력 감소로 인해 이윤하락을 경험하게 되고 잉여상품에 대한 출구를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식민지에서 찾게 된다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가 몰락하지 않는 것은 제국주의를 통해 통로를 찾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레닌은 약소국의 민족주의에서 세계 공산주의 혁명의 가능성을 보았으며, 1920년 제 12차 코민테른의 "약소국의 민족주의에 대한 테제"에서, 아시아의 민족주의자들과 통일전선을 형성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게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모택동, 호지명등 공산주의지도자에 대한 소련의 후견이 시작된다.
   마르크스레니니즘의 다른 측면과 마찬 가지로 이 역시 무척 왜곡되고 편협한 시각이다.  제국주의란 국가간의 힘의 불균형에서 발생하는 것으로서, 고대 로마와 중국의 제국주의로부터 시작하여 근대의 베트남의 지역패권주의와 소련의 동유럽에 대한 제국주의에 이르기까지, 강대국이 힘을 남용하고 약소국이 그 대상이 되는 현상이 존재해 왔다.  그것을 유독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으로 설명하는 것은 편협하다.  경험적으로 자본주의이면서 제국주의가 되지 않은 나라도 많고, 자본주의가 아니면서 제국주의가 된 나라도 많은 것이다.  또한 제국주의에서 경제적 요인은 일부이거나, 결과적인 것이었지,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  제국간의 명예와 권력과 국력의 경쟁이라는 정치적 심리적 측면도 독자적 중요성을 가졌다.
   그러기에 슘페터는 제국주의가 합리적 자본주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으로서 인간의 원시적 지배욕, 정복욕이 격세유전된 것이라고 설명한적이 있다.
   서구제국주의가 단순한 경제적 이익을 위해 전개된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그것은 탐험가의 진출, 선교사의 진출에 뒤이어 상인과 경찰과 관리들이 진출하면서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과정이다.  그러나 곳에 따라서는 경제적 착취가 있었으며, 가장 심각한 것은 이들이 우월감으로 나아가 토착인들을 짓밟고 정신적인 외상을 남겼다는 사실이었다.  이에 대해 아시아 각국에서는 강렬한 저항민족주의가 일어난다.

(3)서구 식민정책의 유형
   식민정책은 스페인 포르투갈의 종속정책, 미국, 네델란드, 영국의 자주정책, 프랑스와 일본의 동화정책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중 가장 큰 저항을 유발한 것은 동화정책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종속정책은 필리핀과 남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모든 원주민을 캐톨릭으로 개종시키는 정책을 포함하였다.  필리핀에서는 스페인의 지배에 대한 민족주의가 19세기 말 주로 원주민 캐톨릭 사제에 의해 전개되었으나, 반기독교의 형태를 띄지는 않았다.  필리핀에서는 캐톨릭이 민족주의의 주체가 된다.
박현, 필리핀의 정치문화
반담여한, {아시아의 민족주의와 경제발전}
   한편 인도차이나에서의 프랑스의 동화정책(la politique d'assimilation)은 원주민의 전통과 정서를 무시한 채로 식민지를 본국의 연장으로 보는 선상에서 진행되었으며 프랑스와 동일한 법제도를 실시하였고 자치사상을 허용하지 않았다.  후에는 안남인의 종교, 관습, 전통을 존중하는 "협동정책" (la politique d'association)으로 바뀌게 되지만,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식민정잭은 가장 거센 저항을 받는다.  그 이유는, 프랑스의 식민정책의 악랄함에도 있겠지만, 아프리카의 가봉이나 카메룬등에서 동일한 식민정책이 큰 저항을 받지 않았던 것을 상기할대,  캐톨릭 프랑스에 대한 불교종단과 유교선비들의 조직적 저항이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전술한 유형에서 불교가 국교형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때, 국교형의 종교가 보다 조지적 민족주의세력이 됨을 보여준다.  1975년 베트남이 무력통일될 당시,  인구의 15%가 캐톨릭, 85%가 불교였다.  베트남의 불교는 캐톨릭 프랑스 보다는 민족주의적 공산주의를 선호하며, 월남에서의 반정부투쟁에서 분신자살을 서슴치않은 것은 불교승려들이었다.
     인도네시아에서의 네델란드의 식민정책은 "안녕과 질서" (peace and order)를 내세우며 현지 지도자를 우대하는 간접 통치의 형태를 취했다.  그들은 인도네시아 지역을 연구하였고, 원주민 토후, 토추의 권위를 지지하였으며 원주민의 사정에 정통한 감독관 제도를 택하였다.  감독관은 직접 지배하지 않으며 배후에서 조언자로서 부드럽고 친절하게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원주민의 영혼을 위해 선교할 생각은 거의 하지 않은 듯 하다.
곽수관, {인도네시아의 민족주의}
   영국의 "법과 질서"를 내세운 식민정책 (law and order)은 반영민족주의의 저항을 받았지만, 그 인권사상과 입헌민주주의는 지금도 인도와 말레이지아의 정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영국은 법앞에서의 평등, 인권사상, 민주주의적 관행을 전파했으나 인도의 전통종교에는 간섭하지 않았다.  영국식민지 관리는 토후의 권위를 존중하고 종교와 관습을 존중하였으며 우수한 연구실적을 남겼다.  말레이지아에서는 절대전제국가를 입헌국가로 변모시켰으며 술탄이 근대적 입법행정에 익숙하도록 독려하였고 술탄의 권위를 존중하여 의회의 의장으로서 법령을 공포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근대화와 함께 술탄의 지위는 약화되었으며 영국형 근대자본주의 발전의 토대가 마련되었던 것이다.
   미국의 식민정책은 자치정책이었다.  1898년에서 99년 사이에 미국은 미-스페인 전쟁의 결과로 필리핀, 구암, 푸에르토리코, 하와이, 사모아등을 획득하는데, 이들이 독립자치국가가 될 수 있도록 획기적인 육성정책을 실시하였다.  필리핀에서 미국은 지방자치선거를 도입하고 주지사를 공선하며 교육과 민주주의를 강조하였고 식민지 민족주의에 대한 동정자, 지지자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는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역할에 대해 감상적 제국주의자 (sentimental imperialist)라 칭하기도 했다.
Sentimental Imperialist
그 결과 필리핀에서는 반미 민족주의 감정은 찾아보기 힘들다.

(4)전통종교와 저항민족주의
   민족주의는 민족의 독립, 통일및 발전을 지향하고 추진하는 이데올로기와 운동으로 정의될 수 있다.     족이란 자연적 혈연적 공동성을 바탕으로 복합적이고 문화적 공동성을 공유하며, 일정한 공속적 감정 내지 의식을 갖게 된 가장 넓은 의미의 기초집단이다.  서구에서는 16세기에 비로서 근대민족국가가 수립되었고 양차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민족주의의 발흥을 보았다.
차기벽, {민족주의} (종로서적, 1986)
차기벽, {한국 민족주의의 이념과 실태} (까치, 1986)
백낙청,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창작과 비평사, 1988)
앤더슨저,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 윤형숙역 (나남, 1991)
   아시아 민족주의의 유형은 자생적 민족주의, 저항민족주의, 발전민족주의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자생적 민족주의는 서구제국주의의 충격 이전에 존재했던 고유의 민족의식, 민족감정이다.  중국의 중화사상이 한예이다.  저항민족주의는 식민지 예속 제 민족의 자주독립과 주권적 평등을 요구하는 정치경제문화적 자기 해방운동을 의미한다.  한편 독립 이후 민족주의의 새로운 과제는 국민형성, 국가형성, 정치경제사회발전의 제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다. 즉 발전을 민족국가의 우선적인 목적으로 추구하는 발전민족주의가 있다.
   저항민족주의는 19세기 말 처음으로 조직적 운동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1908년 Kemal Ataturk의 터키 혁명 이후 이슬람 민족주의가 구체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다.  1911년 손일선의 신해혁명은 한민족주의로 이어졌고, 1918년 발표된 미국 윌슨 대통령의 14개 조항은 민족자결권의 개념을 포함하였으며 한국의 31운동, 중국의 54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던 것이다.
    아시아 각국에서 저항민족주의는 전통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발전한다.  아시아뿐 아니라 서구에 있어서도 종교는 민족의 일부이며, 민족의 역사이고, 집단적 일체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민족은 종종 자신의 정체성과 비젼을 종교의 수단을 통해  표현해 왔다.
F.R.von de Mehden, Religion and Nationalism in Southeast Asia (Madison: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1963);
S. Mews ed., Religion and National Identity (Oxford: Blackwell, 1982);  P.Ramet ed., Religion and Nationalism in Soviet and East European Politics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1989);
D.Chidester, Patterns of Power: Religion and Politics in American Culture (Englewood Cliffs, New Jersey: Prentice Hall, 1988);
D. Jenkins,  The British: Their Identity and Their Religion (London: SCM Press, 1975).
   일본에서 명치유신이후 국가정체성의 확립은 천황을 수장으로 하는 국가신도가 사무라이들에 의해 고무됨으로써 이루어 졌다.  인도차이나의 베트남과 미얀마에서는 불교의 승가 (Sangha)가 조직적 저항민족주의 세력이 된다.  제국주의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태국에서도 불교가 민족정신의 지주로 강화되었다.  한편 이슬람이 주된 종교인 말레이지아와 인도네시아에서는 이슬람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나긴 하지만 조직적이 아니며, 민족주의 근대엘리뜨가 민족주의를 주도하게 된다.
   아시아 민족주의의 특징은 불교, 유교등 무신론 또는 속세지향적 종교체제에서 민족주의가 공산주의와 결합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힌두교와 같은 다신론 체제, 기독교와 이슬람등 유일신 체제에서는 공산주의가 정착하지 못한다.
- 이슬람은  반서구 저항민족주의의 형성및 발전에 강력한 역할을 수행하지만 독립후 민족분열의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좋은 예이며, 인도네시아에서도 분리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 인도의 간디는 힌두교의 정신에 입각하여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경우 집단으로서의 힌두교보다는 평신도 개인의 카리스마적 운동이 민족주의의 주체가되었다.
- 필리핀의 캐톨릭, 31운동에서의 한국의 기독교는 민족주의적 성격을 띈다.
- 종교와 민족주의의 갈등의 경우에는 민족국가 수립 초기 단계에는 종교가 우세하며, 세속화와 근대국가 성립이 진척된 단계에서는 민족주의가 우세할 수 있다.
- 전통종교는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고의로 진흥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발전과의 갈등 속에 재해석의 위기를 맞으며 세속화되어 간다.
(5)아시아 공산체제의 특성
  동아시아 공산체제는 신유교적 요소를 혼합하여 독특한 성격을 띄게 된다.
(5)아시아 복음화에의 함의

   이에 대한 아시아의 민족주의적 저항은 기독교를 서구 제국주의와 동일시하였으며, 전통종교와 깊이 결합한 각국의 민족주의는 복음의 전파에 가장 두터운 장벽으로 작용하였다.
   이제 아시아 복음화를 나아가는 민족은 다음과 같은점을 유의해야 한다.
첫째, 기독교를 서구 제국주의로부터 분리하여 각 민족을 위한 종교로 정착시켜야 한다.  물론 그 복음의 진리의 절대성은 불변하며 상황화될 수 없다.  그러나 그 형식은 얼마든지 전통문화와 결합할 수 있으며 해야 한다.  즉 교회건축양식, 찬송가, 교회에서 예배방식, 각 지역사회에서의 조직방식등은 민족정서에 맞는 방향으로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문화선교사역자가 양성되어야 한다.
둘째, 이미 선교지에 세워진 자국민에 의한 교회에 의해 복음화가 이루어지도록 지원하며, 자국민 지도자를 양성지원해야 한다.
셋째, 선교사는 타민족의 민족주의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 겸손하고 섬기는 자세로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 "이방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 모두 하나"이기 때문이다(갈 3:28)  선교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자신의 민족주의를 초월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와 언어와 종족의 장벽에 상관없이 그리스도 안에 한 형제자매로 여기며 잃어진 영혼을 구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넷째, 각국 민족주의의 진정한 주체가 되어야 한다.  복음이 전파되는 지역의 민족적 자긍심을 존중하고 민족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종교가 되어야 한다.  또한 "우상숭배"라는 요소를 조심스럽게 배제하면서, 민족의 전통문화중 긍정적 요소를 발굴하여 살리고 발전시켜 새로운 토착화 기독교문화를 발전시키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다섯째, 타민족의 종교와 민족주의의 분리가 필요하다.

3.근대화와 정치권력의 세속화유형
   서구의 충격과 함께 아시아의 대부분의 전통사회는 근대화에 휩쓸리게 된다.  그와 함께 종교와 정치에 일어난 현상은 세속화라는 개념에 축약할  수 있다.  그러나 각국가의 세속화의 정도와 유형은 다양하다.
    정치가 종교에서 분리되는 권위의 세속화 과정은 서구 근대화 과정의 확연한 특징이었다.  여기서 근대화 (Modernization)란 전통에서 근대로의  이행과정이다.  역사적으로 16세기의 종교개혁이후 서구에서 시작되어 특히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 (1760)과 프랑스 정치혁명 (1789-1794) 이후 전 세
계에 파급된 과정이다.  그것은 정치, 경제, 사회등 모든 분야에서 서로 영  향을 주고 받으며 밀착하여 일어나는 포괄적인 사회변동과정이다.  아시아  지역의 관점에서, 근대화란 한 사회의 발전수준과 다른 사회의 생활영역에서 이미 성취된 진보적이고 근대적 형태 간의 갶을 메우는 과정으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신명순, <제3세계정치론>
   이러한 근대화는 정치적으로 권위의 합리화, 세속화, 구조의 분화, 대중참여의 증대, 목표달성 능력의 증대를 가져왔던 것이다.
(3)세속화
   근대화에 따른 정치권력의 세속화의 정도와 유형은 사회에 따라 다양하다. 아시아의 많은 사회에서 특히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여전히 정치와 종교는 밀착되어 있다.
   세속화의 종류에 따라 세가지의 정치체제 유형을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국교 또는 신앙고백 공동체 (confessional polity)로서, 종교가 지배적인 사회이다.  근대화가 진전되고 세속화가 이루어져 과거의 제정일치적 형태는 사라지고 국교적 형태는 약화되었지만, 아직 정치지도자는 종교적 단어를 사용하여 통치의 정통성을 확보하며, 한 종교를 공식적으로 후원한다.  아시아의 대부분의 국가가 이 범주에 속한다.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지아, 중동, 파키스탄, 방글라데쉬, 천황이 신도의 수장인  일본,  불교를 국교로 하는 태국,미얀마, 캐톨릭이 지배적인 필리핀등이 여기 속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기존의 정치엘리뜨는 자신의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타종교를 제한하고자 노력한다.
이 유형은 메드허스트에 의해 제시되었다.  K.Medhurst (1981), "Religion and Politics: A typology", Scottish Journal of Religous Studies vol.29 no.1.
   두번째는 "종교적 중립정치체제"로서, 세속화가 보다 진척된 경우이다. 종교가 정통성의 기반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  종교집단은 다원주의 사회에서 권력획득을 위해 경쟁하는 수많은 사회집단의 하나, 압력단체로서 간주된다. 한국과 대만의 예를 들 수 있다.  기독교문화권에서의 세속화는 다양한 종교분파가 생김에 따라 종교와 정치의 분리가 이루어 졌던 것이다.
   세번째는 "반종교적 정치체제"이다.  공산주의가 그 좋은 예로서, 정치가 종교를 제거하고 말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인류역사상 종교를 제거하려는 모든 노력은 실패한 것 같다.  "지상에서 종교가 사라진 유일한 나라"라고 주장하던 북한에도 김일성을 신격화하고 숭배하는 새로운 종교가 나타나고 있다.

 한가지 문제점은, 근대화와 함께 이러한 세속화가 계속될 것인지, 혹은 종교의 부흥이 있을 것인지 하는 점이다.  근대화이론의 관점은,   서구에서 일어난 과정이 아시아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되리라고 가정하고 있다. 정치권력의 종교로부터의  세속화를 향한 일직선상의 정치발전과정을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신명순, <제3세계정치론>

   그러나 과연 근대화는 종교와 신비와 초월성을 일상으로부터 제거시키는데 성공할 것인가.  최근 일본의 옴진리교 사건뿐 아니라 미국의 사교집단의 자살사건등, 후기 근대화 사회에 나타나는 신흥종교의 발흥등은 세속화 이론의 근본적인 전제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Hadden and Shupe는 세속화의 순환이론을 제시한다.  즉 세속화는 순환하는 것으로서, 세속화의 과정은 그 안에 종교부흥의 씨앗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결국 삶의 의미에 대한 세속화된 과학적 답변에 만족하지 못하고 종교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다.  후기 산업사회, 하이 테크사회, 정보사회에서, 인간의 메마른 영혼은 더욱 초월자의 은총을 갈구할 것이다.
J.K.Hadden and A. Shupe (1986).  Prophetic Religius and Politics: Religion and the Political Order  (New York: Paragon House).
   아시아 각국에 있어서 세속화의 방향성에 대해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기는 이르다.  어쨌든 세속화는 근대화가 수반한 주요한 추세이며, 종교와 정치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개념임에 틀림없다.
(5)아세아복음화에의 함의
   근대화와 세속화가 아세아복음화에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근대화는 그 많은 인본주의적이고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문화로부터 소용돌이쳐 나왔으며 전세계에 파급되어 복음전파에 용이한 토양을 마련하는 과정이었다.
   첫째로, 과학과 교통통신기술의 발전은 "땅끝까지 가서 내증인이 되라"는 대위임령을 용이하게 했다. 산업혁명, 도시화, 대중교육, 대중매체등은 모든 사람이 복음을 듣고 읽을수 있는 기회를 앞당겼다.
  둘째로, 근대화는 많은 기독교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과학기술,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질병으로부터 해방되었으며, 산업혁명의 파급은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을 가져왔다.  민주주의의 발전은 불평등으로부터의 부분적인 해방을 가져다 주었다. 근대화의 발전개념 자체가 기독교적이다.  기독교는 종교개혁이후 그리이스의 순환사관으로부터 탈출하여, 발전이 가능하며 새로운 것이 과거의 것보다 낫다는 새로운 발전개념을 도입했던 것이다.  그것은 타종교의 윤회설, 허무주의, 역사관의 결핍등과 대조된다.
   물론 근대화 자체가 기독교적인 것은 아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단절되어 불완전한 인간의 죄성에 의해, 민주주의나 자본주의나 기독교의 뿌리에서 나온 다른 모든 현상처럼, 근대화는 부정적 요소를 포함한다.  빈곤으로부터의 해방 이면에는 물질주의라는 맘몬숭배가 있다.  개인의 소외, 공동체와 가족의 파괴, 정신병, 환경문제,인구문제등 역시 근대화의 부정적 측면이다.  평등과 자유 이데올로기의 이면에는 권위의 붕괴, 퇴폐향락, 방종, 성의 상품화같은 문제들이 있다.
   셋째로, 근대화는 타 종교문화권의 세속화를 가져옴으로써 보다 복음전파가 용이한 토양을 마련한다.  Gunnar Myrdal은 아시아의 전통종교가 사회적 침체의 원인이며 사회발전에 기여하지 못했다고 통렬히 지적한 바 있다.   근대화는 비서구지역에서 인간을 전통종교와 미신으로부터 해방하는 과정이었다.
   아세아복음화에  필요한 환경은 타종교 신앙고백 공동체나 반종교적 정치체제가   종교적 중립정치체제로 변화해 가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세속화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근대화와 세속화는 그 자체가 광의의 선교전략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이슬람과 같은 신앙고백 공동체, 공산체제와 같은 반종교적 정치체제에 대해서 세계화와 국제화, 개방개혁및 경제발전은 강력한 선교전략이다.
4.발전목표의 수행에 있어서  종교의 역할
   2차 대전이후 독립되어 민족건설과 국가건설을 추진하는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관심은 발전이라는 개념으로 집약할 수 있다.  근대화가 서구에서 형성되어 세계에 파급된 역사적 과정이라면, 발전이란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보다 각국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정의될 수 있는 목표와 이를 향한 과정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자본주의이건 사회주의이건 독자적 발전모델이건 각국은 보다 나은 상태로의 사회변동을 향하여 노력하고 있다.  발전이란 보다 나은 상태를 상정하고 이를 향해 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사회공동체가 광범위하게 동의하는 비젼이 있고, 이것이 가시적으로 성취되고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며, 사회변동에 따르는 긍정적인 효과가 부정적인 효과를 능가할때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어지는 것이다.
   각국은 나름대로의 발전목표를 도입하고 시장경제를 실시하기도 하고 사회주의시장경제니 이슬람자본주의니 교도민주주의니 다양한 형태로 노력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모델을 도입한 나라는  한국처럼 제2공화국의 무질서, 419와 같은 학생혁명등 정치폭력, 이에 이은 516의 군사구테타와 관료적 권위주의를 경험하기도 했다.  즉 자유민주주의의 토대 - 교육, 경제발전, 언론의 자유, 중산층의 형성등 -가 없는 가운데 이를 발전 모델로 추구한 경우는 오히려 남미와 같은 혼란과 쿠테타의 악순환을 가져오기도 했던 것이다.
S.P. Huntington, Political Order in Changing Societies
   한편 마르크시즘에서 민족의 앞날을 본 나라들, 중국, 북한, 베트남, 캄푸차, 라오스등은 그러나 하향성 평등과 빈곤의 악순환, 일당독재의 권력남용을 경험했으며 구소련의 붕괴 이후 캄푸차는 민주화되고 라오스, 베트남은 개방개혁을 이루었으며 중국은 등소평 사후 유교에 입각한 사회주의 시장경제발전을 꾀하고 있고, 북한은 주체의 고립된 왕국을 고수하고 있다.
   불교의 나라 태국, 이슬람이 지배적인 인도네시아, 말레이지아 역시 제 2의 아시아 신흥중공업국으로 부상하기 위해 수출지향형 공업화를 추구하고 있으나 과연 전통종교와 발전의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많은 논란이 있다. 제3세계, 특히 인도의 많은 지식인들은 환경파괴를 가져온 서구의 과학기술에 의한 발전모델을 거부하고, 인간의 안전을 보호하는 고유의 발전모델을 주장하기도 한다.  어쨌든 그들 역시 나름대로의 발전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란등 근본주의 이슬람국가들 역시 서구모델을 거부하며, 이슬람에 입각한 발전모델을 추구한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야기된다.  즉, 전통종교의 바탕 위에 서구적 발전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어느만큼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서구에서는 기독교 문화의 바탕에서 근대화, 민주발전과 경제발전이 이루어 졌으나,  아시아에서 타 전통종교의 바탕 위에 추진되는 민주발전과 경제발전이 가능한 것인지, 가능하다면 어떠한 형태로 발전할 것인지 하는 것이다.  공산주의가 과연 아시아의 종교성을 말살할 것인가 혹은 중국의 강택민이 시도하는 것처럼 유교에 바탕한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어떻게 기능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다.
   일견 다음과 같은 가설이 가능하다.
첫째, 기독교문화와 민주주의, 시장경제발전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
둘째, 유교문화권이 비교적 시장경제발전에 성공하는 경향이 있다.
셋째, 유교문화와 권위주의적 정치문화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
넷째, 불교문화권은 공산주의와 친화력이 있으며 경제발전이 수준이 낮다.
다섯째, 이슬람의 가치체계와 민주주의및 시장경제발전 사이에는 갈등이
      있다.
<발전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복음주의의 시각>
   왜 타종교문화권에서는 기독교문화권에 있었던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왜 권력의 남용에 대한 제한과, 부의 축적으로 인한 경제발전, 과학기술의 발전은 서구에서만 이루어 질 수 있었던 것인가.  막스베버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쓴 이래, 사회의 기본적인 가치체계와 발전의 관계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있어 왔다.
   기독교는 순환하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 전진하는  하나님의 발전적이고 일직선상의 구속사관에 입각하고 있다.   인간의 역사에 창조주 하나님이 개입하시며, 하나님의 왕국이 확장되고 있으며,  그 완성이 되는 종말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역사는 흥망성쇠를 되풀이 하며 종말이 올수록 더욱 전쟁과 난리의 소문이 있지만, 믿는자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성장하는 것이다.
김기홍, {천국의 기둥}, {역사와  }
   신자가 겪는 성화의 과정은 발전론적이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궁극적 목적을 향해, 불완전하고 타락한 인간의 영혼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형상을 회복해 간다.  무신론적인  진화론, 사회적 다윈주의, 마르크시즘까지도 모두 일직선상의 진보사관을 내포하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왕국이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것이 발전이다.  나자신이 죽고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이 삶으로서 이루어지는 것이 발전이다.  악의 세력과 어둠의 세력에 대해 빛의 세력이 승리하는 것이 발전이다.
   타종교는 이에 비해 보다 과거지향적이거나, 정적이거나, 순환론적이다.  비역사적 종교에는 인간의 역사가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기본적으로 결핍되어 있다.  허무주의적인 종교는 속세적인 발전을 위한 인간의 노력 자체가 인간의 고통을 가져오는 업을 쌓는 것이라고 본다.
   발전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발전이 의미있는 것이며, 발전이 가능하다고 믿는 정신적인 태도가 중요하다.  모든 것을 팔자소관, 운명, 전생의 죄 탓으로 돌리는 정신상태로는 현세에서의 발전을 가져 올 수 없다.
더욱 근본적으로 얘기해서, 예수그리스도에 의한 구원 없이는 진정한 발전이란 불가능하다.  인간의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역사는 악순환을 계속할 뿐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진정한 발전은 그것이 어떤 모델이건 간에 복음화의 바탕에서만 진정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제 3장 기독교와 정치

제 1절 기독교와 서구 자유민주주의의 기원
(1)제 학설
   경험상 기독교가 가장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영국, 미국등 서구국가들은 기독교문화권이다.  또한 기독교와 민주주의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많은 연구가 있다.  그러나 그 정확한 관계는 가장 복잡한 문제의 하나이며 아직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치학자 H.B. Mayo는 "기독교와 민주주의의 밀접한 관계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현재의 목적을 위해서는 그 병존가능성을 가정하고 시작하는 것이 충분하다"라고 한바 있다.   .B.Mayo, An Introduction to Democratic Theor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60), p.306.
  혹자는 기독교가 민주주의의 필수조건이라고 본다.  토마스만  (1875-1955)은 민주주의는 불가피하지만, 민주주의가 기독교를 용납할때만 그 한도 내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바 있다.   론 우리가 민주주의에서 사랑하는 것들, 자유, 평등, 박애의 이상들은 기독교의 뿌리에서 출발해 나간 것이다.  따라서 그 뿌리를 제거하고 민주주의의 외형만을 시도할때 성공할 수 없으리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기독교가 없이도 상당 정도의 민주주의가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허버트 버터필드, <크리스챤과 역사해석> 김상신 역 (대한기독교출판사, 1982),ㅔ.133 참조.
항목 "민주주의" <그리스도교 대사전>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0).
   한편 기독교가 민주주의를 만들어 내지는 않았지만, 민주주의 정신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트뢸치는 <기독교의 사회적 가르침>에서 캘빈주의가 민주주의 정신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고 자본주의 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았다.
Ernst Troeltsch, Social Teaching of the Christian Churches vol.II, trans. Olive Wyon(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6),
   그는 국민주권이론이 성서에 근거한 것이라고 보고, 캘빈주의가 로크의 자연법사상의 근간이 되는 기독교적자연법 개념을 발전시켰다고 본다.
몰트만역시 현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기독교, 특히 캘빈주의 정신을 영향을 맏았음을 지적하였다.
Juergen Moltmann, Das Experiment Hoffnung und Politik 전경연 역, <희망의 실험과 정치>, 복음주의 신학총서 제 13권 (서울, 종로서적 1985), pp.169-171.
   한편 J.H. Nichols는 유럽의 근대사를 분석하면서, 개신교가 자유민주주의의 성장을 위한 비옥한 토양을 제공한 반면, 캐톨릭은 전제정부를 수호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보았다.
James Hastings Nichols, Democracy and the Churches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대다수의 복음주의적 기독교윤리학자들은 캘빈주의가 자유민주주의의 형성과 발전에 미친 영향을 인정한다.
노재성, <교회.민주주의.윤리 - 깔뱅사상과 근대 자유민주주의의 발전>
(나눔사, 1989)
캘빈은 기독교 강요 제 4권 20장에서 국가에 관해 쓰면서, 국가의 영역에도 하나님의 주권이 철저히 군림해야 한다고 보았다.  야마모도 나고무는 이 강요 4권 20장에 나타난 시민정부론, 국가공직자와 정부형태론, 국
가법론, 국민의 순종과 저항권이 현대에 필요한 "기독교적 민주주의원리"라고 하였다. 그는 자유, 평등, 인권 종중, 법치주의, 삼권분립, 다원주의, 지방자치등 근대적 자유주의 이념을 뒷받침 할만한 정치신학을 전개하였다.
   또한 그는  강요 4권 20장 31절에서 캘빈은 개인적 차원에서는 가능한한 공직자의 권위에 복종해야 하지만 "만일 왕들의 독재적 고집을 제압하기 위해 백성들 가운데 공직자로 선출된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이들이 자신의 의무를 따라 왕들의 횡포와 방자함에 항거해야 한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고 하여 입헌적 저항권을 제창하였다고, 독재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권장하였다.
(H.H. Meeter, The Basic Ideas of Calivinism 박윤선.김진홍 역, 96)
   야마모도 나고무 (山本和), <政治 宗敎> 이준직역, <정치와 종교> (서울: 한국 기독교문화원, 1980), P.342.
Herbert Luthy, From Calvin to Rousseau - Tradition and Modernity in
      Socio-Political Thought from the Reformation to the French
      Revolution
      Trans. by Salvator Attanasio. New York: Basic Books, Inc., 1970
김종일.  "종교개혁과 자유로운 정치의 이상" <기독교사상> 333
     (1986.9),pp.14-35.
William L. Miller.  The Protestant and Politics 김관석 역 <프로테스
     탄트와 정치>,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62.
이장식, "종교와 정치".  기독교사상 편집부편.  <한국의 정치신학>.  기
     독교 사상 300호 기념 논문집 4.  pp.258-271.
한용희, <그리스도교와 정치>. 서울: 크리스챤, 1987.
   이들 이론은 민주주의가 좋은 것이며 기독교가 그 좋은 것의 발전에 이바지 했다는 주장이다.  그 문제점은 민주주의가 수반할 수 있는 혼란, 권위의 붕괴, 부정부패등 인본주의적이며 부정적인 측면은 무시한 채 지나치게 민주주의를 이상화하는 서구적 시각에 입각해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가 기독교 정신에 오히려 적대적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신학자인   Norman de Jong은 민주주의란 죄많은 인간이 법에 순종하기 보다는 법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인본주의적인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에 의하면 민주주의는 타인의 권려과 권위를 무시하면서 자신의 권위와 권력을 주장하려는 시도이며, 하나님의 주권을 부인하면서 인간의 주권을 주장하는 영적태도이다.  사실 프랑스혁명은 초기에 교황에 의해 사탄적인 것으로 파문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Norman De Jong, Christianity and Democracy ( the Craig Press, 1978), p.163.
   물론 이러한 시각에도 치우친 점이 있다.  그는 현대민주주의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하여 그 비 기독교적 요소를 분석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근대사회의  바람직한 정치체제라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며, 그렇게 되는데 하나님의 자녀들의 역할이 컸다는 사실 역시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Richard John Neuhaus, The Bible, Politics, and Democracy (Grand Rapids, Michigan: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87).
(2)기독교의 민주주의적 요소
   결국 기독교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캐기 위해서는 성서와 역사로 돌아가야 한다.  성서에서 우리는 기독교의 정치사상은 반드시 민주주의는 아니었지만, 근대 서구의 독특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로 발전해 나갈 씨앗을 안고 있었던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첫째 섬기는 권위 (servant leadership), 둘째 권위의 근원을 하나님께 순종하는 주권사상,셋째 개인의 가치의 인정, 넷째 인간의 자유와 평등과 정의와 사랑의 이념이다.
12)Reinhold Niebuhr, Christian Realism and Political Problems (London: Faber & Faber Ltd., 1954), 지명관 역, {기독교 현실주의와 정치문제} (서울: 현대사상사, 1973)참조. 니버는 주권사상, 개인의 가치의 인정, 자유의 한계성을 들고 있다.
   첫번째로, 기독교의 섬기는 권위가 민주주의의 씨앗이 되었다.  예수그리스도에 이르러 권위는 "다스리고 지배하는" 권위가 아니라 "섬기고 자신을 희생하며 권면하는" 권위의 특징을 띄게 된다.
어거스틴, <하나님의 도성>
  하나님의 독생자이며 그 자신 하나님과 본체인 예수그리스도는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스스로 종의 모습으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였다. (빌 2:5-8).  권력다툼을 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태 21:25-28)  예수는 또한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가티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였다.  여기서 기독교지도자는 군림하는 권위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인간에 대해 겸손하고 온유하며 권면하고 인도할 것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것이 지도자가 공복(公僕, public servant)로서 국민의 종이라는 개념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강한자가 약한자를 섬긴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기독교권위의 특성이다.
   둘째로,  지도자, 정부, 국가의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난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보다 높은 하나님의 뜻, 정의에 의해 규제받게 된다는 주권사상과 법치주의이다.
    하나님이 모세를 택하신 것은 이스라엘민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 "국민을 위해" 택하신 것이다.  또한 율법에 의해 다스린다는 법치주의 역시 기독교 정치사상의 근간이 된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피치자에 의해 통치자의 권력의 남용이 규제되는 제도적장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라인홀드 니버가 말했듯이 "인간은 민주주의를 필요로 할만큼 악하고, 이를 가능하게 할만큼 선하다"는 기독교의 인간관에 입각한 것이다.
12)Reinhold Niebuhr, Christian Realism and Political Problems (London: Faber & Faber Ltd., 1954), 지명관 역, {기독교 현실주의와 정치문제} (서울: 현대사상사, 1973), p.97.
      셋째로, 인권사상 역시 기독교문화에서 발전되어 나왔다.  갈 3:28은 모든 인간이 "종이나 자유자나 헬라인이나 이방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모두 그리스도 안에 하나"임을 선포하였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 성과 신분과 국적의 차이를 넘어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사신바 된 존엄한 존재들이다.
   넷째로, 평등과 자유, 박애와 정의라고 하는 가치의 보편성이다.
한편, 기독교가 이러한 보편적 가치의 구현과, 지상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추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노력에 의한 지상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믿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죄성의 노예가 되어 있고, 구원이 되었다 해도 완전히 성화되지 않는한   사회는 물론 개인의 문제에 과한 예수의 가르침에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길은 역사안에는 없는 것이다. 라인홀드니버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아가페는 불가능한 가능성 (Impossible Possibility)이다.14)  이것은 인간의 궁극적인 가능인 동시에 불가능이며, 정의인 동시에 정의가 아니다.  정치란 결국, 불가능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슬픈과정인 것이다."
14)Reinhold Niebuhr, Faith and History,(New York: Scribner's Sons, 1952), p.197.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된 각 개인이 세상에서 자기의 소명에 충실할때,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왕국이 확장되어 나가는 것이며, 이것이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민주주의의 긍정적인 측면은, 하나님의 자녀들에 의해 누룩과 같이 번져간 하나님의 나라의 질서이다.  물론 그 형태는 사회에 따라 다양할 수 있으며, 단 한가지의 형태만 있는 것은 아니다.
(3)기독교의 인본주의적 요소
   물론 이러한 주장은 민주주의가 기독교적이라고 주장해서는 안된다는 명확한 한계선 상에서 전개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기독교문화의 뿌리에서 나오기는 했으나, 성장과정에서 수많은 인본주의적 요소로 구성되게 되었고, 결코 기독교의 복음을 대치할 수 있는 절대적 가치는 아니다. 그러기에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교회는 때로는 이 이데올로기에 대항하기도 하고, 정죄하기도 하며, 지지하기도 하는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어떤 체제 하에서건, 하나님의 자녀들은 정치의 영역에도 하나님의 왕국이 확장되도록 누룩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이제 제기되는 질문은 그렇다면 타종교문화권의 바탕에서도 민주주의가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이문제는 다음장들에서 다루고자 한다.

제2절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1)베버와 그에 대한 비판들
   경험적으로 경제발전을 이룬 선진국은 일본과 석유부국을 제외하고는 기독교문화를 바탕으로 발전한 나라들이다.  역사적으로 자유민주주의는 자본주의적 경제제도를 기초로 이루어지는 시민사회의 소산이다.
그렇다면 기독교문화가 자본주의의 발전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타 종교문화는 자본주의의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물론 서구에 경제발전이 이루어 진 배경에는 다른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결정요인이 많았기 때문에, 일견 문화와 발전의 관계를 단정적으로 말한다는 것은 위험하게 보이기도 한다.
   복음주의 기독교의 입장에서 본다면,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늘의 신령한 것과 땅의 기름진 것, 즉 영혼구원의 축복과 물질의 축복까지 함께 누리게 되므로(창 26:12,13; 대상 4:10), 하나님이 그 자녀들에게 물질의 축복을 허락한 것은 땅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도 당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물론, 가난하다고 해서 축복 못받은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의 의와 희락과 평강이기 때문이다.
   막스베버는 그의 유명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캘빈주의가 자본주의 발달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그에 의하면, 프로테스탄트의 세속적 금욕은  재화의 추구를 전통적 윤리의 억압에서 해방시켰고, 이윤추구를 합법화한 반면, 향략과 사치적 소비를 반대하였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상에서 부르심을 받은데로 노력하는 캘빈주의자들이 실천적인 금욕적 행동성으로 세상이라는 삶의 무데에서 적극적으로 살아간 결과가 자본주의로 나타났다.
Max Weber, The Protestant Ethics and the Spirit of Capitalism, tr
ans. T. Parsons
막스베버, 양회수역.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 (을유문화사, 1982)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다는 소명의식을 가진 청교도는 모든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기 때문에,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도 않고, 사치스럽게 살지도 않으며, 게으르지도 않다.  근면, 검소, 철저한 직업의식, 재투자, 그리고 쾌락과 탐욕을 거부하고 계획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삶의 형식이 근대적 자본주의 정신과 부합을 이루는 경제윤리였다.
155-180
   물론 청교도들이 경제발전을 추구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청교도 윤리의 의도되지 않았던, 뜻밖의 결과였다."
   그는 또한 중국과 인도에 대한 종교사회학적 연구에서 왜 다른 세계에서 자본주의발전이 불가능했는지를 밝힌바 있다.
   캐톨릭은 보다 큰 초 세속성, 즉 그 높은 이상을 나타내는 금욕적 특질에서 이세상의 재화에 대한 무관심을 초래했으며, 영리충동을 억제하기 때문에 보다 정적이라는 것이다. 베버, 26-27.
   문제는, 자본주의 발전이 반드시 프로테스탄트 윤리보다는 다른 사회 역사적 요인에 더 힘입은 바 많지 않겠냐는 것이다. R.H. Tawney는 <종교와 자본주의의 발흥>에서 베버를 비판하면서 캘빈주의자들의 직업의식은 종교적 가치관, 신학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당시의 경제적 사회적 압력에 의한 것이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유사한 경제적 사회적 압력 하에서도, 국민이 열심히 일할 의욕이 없으면 발전하지 못한다.  따라서 사회의 윤리, 정신력이  발전에 미치는 영향이 무시되어서는 안된다.
   R.H. Tawney, Religion and the Rise of Capitalism (Middlesex, England: Penguin Books, 1972).
(2)캘빈주의와 근대자본주의의 발흥
   역사를 살펴볼때,  캘빈주의는 확실히 경제발전에 이바지하였다.  16세기의 종교 개혁 이후 루터와 캘빈등 종교 개혁자들은 노동과 직업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소명의식을 성경에서 발견했으며, 이것은 기독교인의 경제활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중세는 물질적인 것을 경시하고 관조적이고 명상적인 삶을 중시했으나, 종 개혁자들은 하나님의 축복으로서의 노동의 의미를 새로발견하였으며, 육체적 노동 또한 정신적 명상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직업에는 귀천이 없으며, 성직자나 노동자나 모두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사람들이며, 자신의 소명에 충성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사상을 발전시켰다.
  ^ 주 준희, "노사분규와 복음주의 시각의 관점" {복음과 신학} (1986)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의 중요한 시발점은 종교개혁이다.  정신적으로 뿐 아니라 사회세력으로서, 근면하게 노동하고 자본을 축적하여 재투자하는 캘빈주의자들은 유럽의 각 곳에서 신흥 브르조아 시민계급을 형성하였으며,  왕권과 손을 잡고 중세봉건제도가 무너지고 민족국가가 수립되며 근대사회를 수립하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청교도정신은 하나님의 축복과 더불어 서구의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끌어 간 동력이었다.
  ^     {구주정치사}
(3)자본주의의 인본주의적 발전
   그러나 자본주의가 기독교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기독교적이라고 말하는 것만큼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캘빈주의에 의해 독려된 경제발전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 이르러 청교도윤리와 결별되며, 손해보다 자기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인정되는 인본주의 적인 자본주의 정신이 확립된다.  자본주의는 어느 사이엔가 캘빈주의 윤리에서 벗어나, 물질주의, 물신숭배,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부정의등 수많은 문제점을 노정하면서 인본주의적으로 치닫게 되었다.
아담스미스, {국부론}
   19세기 초 영국의 자본주의는 확실히 카알 마르크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극악한 모순을 노정하고 있었다.  임산부가 마차를 끌었고 어린아이들이 공장에서 열악한 노동조건하에 일했으며 소수의 부유층은 향락과 낭비를 일삼고 있었다.  그러나 교회는 영적침체에 빠져있었으며, 사회적 불의를 시정하지 못했고, 땅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파하거나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자를 도울 수 있는 신앙과 행동의 일치를 결여하고 있었다.
   {교회사}
   후술하는 바와 같이, 공산주의란 이러한 자본주의 모순을 일깨우기 위한 각성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4)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그러나 웨슬레의 개혁운동, 미국에서는 무디와 에드와드의 대각성운동등 교회의 영적각성, 사회개혁을 바탕으로, 자본주의는 칼 마르크스가 예견하였던 바와 같은 몰락의 길을 가지 않고, 자신을 수정하여 노사화합과 노동자복지의 향상등을 통해 복지국가로 가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물론 복지국가의 이상도, 그 사회가 하나님을 떠나 자신의 욕심을 추구할 때 허물어져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모든 외적인 사회제도나 이데올로기의 발전사를 볼때, 중요한 것은 그 사회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있는 가 하는 것이다.  죄성의 노예인 인간들이 어떠한 이상을 추구하건 그들은 스스로는 그 이상을 이룰 수 없는 존재들이다.  니버는 "정치란 이룰 수 없는 것을 추구하는 슬픈 과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믿음을 가지고, 예수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의로움과 구속함과 거룩함과 지혜를 받아누릴때에,  어떤 사회제도나 이데올로기도 하나님의 왕국을 확장시키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타종교문화권에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갖게 한다.  즉, 타종교문화권의 영적바탕위에 시장경제발전을 추구할때, 다음과 같은 두가지 측면에서 타종교의 역할은 어떠한가 하는 점이다. 첫째, 발전 자체가 가능한 윤리적 기반을 제공하는가. 둘째, 발전이 서구자본주의의 모순과 문제점을 극복하면서 국민의 삶을 개선시키는 윤리적 한계를 제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유교와 이스람 노동 윤리는 경제발전을 촉진시켰다기 보다는 경제발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 결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Syed Farid Alatas, "The Myth of the East Asian Industrial Revolution",
Department of Sociology, 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제 3절 기독교와 공산주의
(1)공산주의의 도전
   신학적으로 서구는 복음이 먼저 전파된 지역이며 하나님의 물질적 정신적 축복으로 창대하게 된 "야벳의 후예"들의 지역이다. 땅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 앞에 경건하고 흠없는 삶을 삶으로서 기독교문화를 창달할 사명을 띄고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말의 유럽의 형편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이데올로기의 우상을 좇으며 자기의 악을 추구하고 있던 모습이다.
   하나님이 공산주의를 허락하신 것은, 자본주의의 병폐로 인해 물질의 우상을 추구하며 사회정의를 멀리하고 이것을 시정하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게으른 종된 교회와 교인에 대한 경고와 각성제로서였을 것이다.  그러기에 혹자는 공산주의를 습한 곳에 번져가는 바이러스에 비유하기도 한다.  자본주의의 병폐가 있는 곳에 급속히 번져가는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기에 하나님은 공산주의를 허락하셨다.  공산주의는 썪어져 가던 자본주의에 대한 각성제 역할을 했다.  케인즈 경제학 이후 자본주의가 자체모순을 수정하여 노동자의 임금을 향상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며 복지국가로 나아간 것은 그러한 도전이 없이는 훨씬 지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인간의 지식과 지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세상의 초등학문이며, 하나님의 절대 진리에 대해 조만간 실패하고 사라져 갈 수 없는 극히 인본주의적 시도였을 뿐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문제를 정확히,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그의 문제는 병세의 진단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죽이는 처방을 했다는 것이다.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에 제 3세계 신학계에는 혁명신학, 해방신학, 민중신학등 공산주의와의 대화내지는 접목을 시도하는 노력들이 있었다.  WCC를 중심으로 하는 Ecumenical Theology의 역사가 그러하다.  우리나라에도 북한을 방문했던 문익환 목사, 김일성대학에서 종교학을 강의하는 홍
, 조동진목사등도 주체사상과 기독교의 접목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동주,             {복음과 신학}
   그러나 물론 복음주의 입장에서 이러한 시도들은 "복음의 진수"- 진리에 서있지 못한 잘못된 입장이 틀림없다. 공산주의는 기독교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독교의 이단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나름대로의 인간론, 원죄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을 가지고 있는 총체적 세계관이다.  진정한 공산주의자라면 결코 기독교인이 될 수 없을 정도로 공산주의는 전적인 헌신을 요구하는 배타적인 이데올로기이다.
크라우스 보크무엘, {마르크스주의의도전과 크리스챤의 응전} 이종윤편역 (정음출판사, 1983)
기타 에쉬나원의 참조서적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하고 유신론을 부인하는 공산주의의 기본전제는 유물론이다. 그들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성을 따라 영혼과 육체로 창조되었음을 부인하고 물질과 노동을 삶을 이끌어가는 본질로 보았다.  인간의 존재가치를 노동자로 축소한 것이다.  영혼은 비과학적인 것으로서 부인되며, 경제적 하부토대의 반영으로서만 이해될 뿐이다.  인간고통의 근원이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 죄성의 노예가 된 것임에도, 마르크스주의는 이를 경제적 문제, 노동분업과 인간소외, 억압과 지배와 계급갈등이라는 피상적이고 부분적인 문제로서 설명한다.  따라서 죄인을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어지는 구원은 유물론자들에게는 허황된 얘기일뿐이다.  그대신 그들은 프롤레타리아 무력혁명에 의해 인간에 의한 유토피아의 건설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물론 그 유토피아는 영생과는 무관하다.  (북한에서는 후술하는 바와 같이 영생까지도 정치체제의 소산으로 귀결하려는 노력이 있지만.)  공산당은 교회와 평행되는 개념으로서, 이러한 세계관을 믿는 자들의 모임이다.
   "인간이 그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을 창조했다"고 주장한 포이에르바하의 영향을 받은 마르크스는 1943년 "신이 주권자인가 아니면 인간이 주권자인가?"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인간은 자신을 속박시키는 주인을 가질 필요가 없으며 신에게서 자유로와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1844년 출판된 {헤겔의 법철학 논고}에서 그는 "종교비판이 모든 비판의 전제"라고 주장하였고, "종교는 인간의 아편"이라는 유명한 말과 함께 종교를 공산주의 혁명의 최대의 적으로 간주했다.  그러기에 공산주의 사회는 종교말살에 우선적인  총력을 기울여 왔다.  마르크스는 종교를 파괴한 후에야 인간은 환상의 태양인 하나님 주위를 맴도는 것을 중지하고 자기 자신 곧 참된 자기 자신의 주위를 선회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기술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사상을 역사적으로 구현시킨 모든 공산주의 사회는 종교를 인민의 적으로 보고 철저히 탄압하였다.  러시아에서, 중공에서, 북한에서, 베트남과 캄푸챠와 라오스 그리고 동유럽과 큐바에서 수많은 순교의 피가 흘려졌다.  그러나 20세기 말을 바라보는 지금, 공산주의는 패망하고 있으며 종교는 오히려 부흥하고 있는 것이다.

(2)공산주의 몰락의 필연성
   1917년, 레닌은 "혁명을 위해서는 '악마와 그의 할머니'하고라도 손을 잡겠다"고 하면서, 러시아 혁명을 성공시켰다.  73년 동안 구소련을 지배했던 공산주의는 그러나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20세기의 희귀한 에피소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는 민주화되고 있고, 동유럽에도 민주화의 바람이 불고 있으며, 동독은 흡수통합되었고, 중국과 인도차이나 공산국가들도 사회주의를 고수하기를 희망하면서  개방개혁의 길을 가고 있다.  20세기 말 뚜렷하게 나타나는 이러한 공산주의의 쇠퇴는 , 2000년전 폭력을 거부하고 자신을 희생하며 비참하게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부활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더욱 확산일로에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진리와 비진리는 역사의 심판을 받기 마련이다.
   공산주의 몰락의 필연성은 처음부터 예견된 것이다.  첫째로 인간에 대한 환상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고통과 문제는 하나님으로 부터 단절되어 타락하였다는 죄성의 문제에서 기인한다.  인간이 구원받는 길은 예수그리스도로 인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는 것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이 "공산주의적으로" 개조될 수 있으며, 탁아소와 유치원부터의 세뇌교육으로 브르조아적인 인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인간이 형성될 수 있다고 믿었다.
   주 준희, "중국청소년의 정치사회화에 관한 연구" {중소연구} (1990)
(1963년 Leonid Ilyichov에 의하면 공산주의 건설자는 풍부한 지성과 도덕적 완전성, 성숙한 미적 감각과 육체적 완전성을 지닌 완전히 발전한 사람이었다.)
즉 자본주의 하의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인간이 사회주의 체계 안에서는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집단주의적인 공산주의 인간으로 개조될 수 있다고 믿었다.  "우리의 과업은 인간 본성의 변화에 있으며, 각개인이 스스로 완전하여 단하나의 전체, 곧 보다 큰 전체의 일부로 변화되는데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인간을 개조할 수 없다.  인간의 한시성, 불완전성, 죄성은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 극복될 수 없다.  구원은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선물로서 주어지는 것이다.  중생이 없이 성화된 삶을 살 수 없다.
   둘째로, 평등이데올로기의 인위성과 전제성이다.  제도적으로 강요된 평등은 하향성 평등, 빈곤의 평등을 가져 왔을뿐이다.  진정한 권위가 붕괴되었고, 인간의 다양성이 억압되고 무시되었으며, 평등을 강요하다보니 더 심각한 종류의 권력집중, 일당독재, 폐쇄사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셋째로, 그럴듯한 일부 보편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수단의 문제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일견 인도주의적이고 평등과 정의와 유토피아의 아름다운 가치를 지향하는 듯하나 이를 이루기 위한 수단은 계급투쟁, 없는자의 증오심, 폭력과 억압이다.
   결국 금세기 공산주의의 실험과 그 실패는, 인간의 구원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은혜에 있을 뿐이며, 인간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진리를 확증하였다고 볼 수 있다.

제 4절 필리핀의 정치와 종교

 


Professor of Politics, L.A. Institute of Interntional Stud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