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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제 4차 세계여성회의에 다녀와서

                 주 준희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교수)

     지난 9월 28일에서 9월 5일까지 우리 연구소 팀은 원불교, 바하이 팀과 함께 33명이 팀을 이루어 북경에서 개최된 제 4차 세계여성회의의 NGO 포럼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라는 구호 아래 펼쳐진 NGO 포럼에는 181개국에서 3만여명이 참석하여 다양한 행사가 벌어졌다.  이것은 정부간회의 대표단 1만명의 3배에 이르는 대규모였다. 
     유엔은 여성의 지위향상이 세계평화에 주요한 과제라는 인식하에서 1975년 세계여성의 해를 공포한 후 75년 멕시코시티, 80년 코펜하겐, 85년 나이로비에 뒤이어 95년 북경에서 제4차회의를 개최한 것이다.  유엔세계여성회의는 그동안 세계각국 여성의 실질적 지위를 향상하는데 많은 공헌을 했다. 일례로 우리나라에 여성개발원이 세워지고 정무제2장관실이 탄생한것도 유엔의 덕을 많이 입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대표들이 정부입장에 구애되어 여성의 권익을 잘 대변할 수 없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비정부기구의 포럼을 통해 여성의 시각을 유엔의 정책결정에 반영하고자 하는 것이 이번 포럼의 목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600 명이 참여했다.  북한에서도 20여명의 대표단이 참석한 것으로 확인되었으나 안타깝게도 남북여성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비행기는 두시간만에 북경에 도착했다.  이렇게 가까운 곳이, 또한 그렇게 먼 곳이구나 하는 감회가 일었다.  조선족 교포인 설화양이 우리의 안내를 맡았다.  눈이 크고 한국 말을 기가 막히게 잘한다.  그리고 아주 아는게 많은 아가씨였다.  "여러 선생님을 거느리게 되어서 매우 기쁩니다." 라고 해서 웃음이 터졌다.
   북경의 화두호텔에  여장을 푼 우리일행은 먼저 "천신만고 끝에" 회의장에 들어갈 수 있는 패스를 얻고, 30일 오후 5시에 북경 국립 올림픽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오프닝에 참석하였다.  이날 개막식에는 첸무화 중국부녀연합회 주석의 환영인사로 시작하여 , 한국을 방문하였던바 있는 몽겔라 여성회의 사무총장, 우리 연구소의 세미나에 주제발표를 하였던 수파트라 마스디트 NGO 포럼의장이 첸무화와 "평화의 횃불"을 밝힘으로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다. 
   오프닝 행사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일고여덟살정도밖에 안돼 보이는 어린 아이들의 마스게임이었다.  붉은 스카프를 매고 달려나와 앙징맞을 정도로 정확하게 춤추며 마스게임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어린 아이들을  어느정도 훈련하면 저렇게 할 수 있는지, 측은한 마음까지 들었다.
   다음날 부터는 북경에서 53km 떨어져 한시간정도 걸리는 화이로우로 장소를 옮겨 매일 오전 9시부터 7시까지 메인빌딩에서의 전체회의, 텐트 촌등에서 펼쳐지는 하루 5백여개의 워크샵, 포럼, 심포지엄, 이벤트등을 선택적으로 참여하느라고 분주했다. 저녁에는 각국여성들의 음악, 연극공연, 비디오 상영, 미술전시회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다.  앰네스티 인터네셔널은 티벳의 민주화시위를 지원하였고, 그린피스등 환경단체들이 핵, 개발과 파괴, 여성과 건강등을 부각시킨 것이 이채로왔다.
   NGO포럼의 첫날 개막식에는 당초 아웅산 수지여사가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었으나 참석하지 못하고 비디오테이프를 보내와 참석자들의 아쉬움을 샀다.  그녀는 "이번기회에 우리 마음 속의 편견과 조급함을 부수고 전세계 인류발전을 위한 장애를 제거하는데 힘을모으자"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번 회의에는 부토총리, 브룬트란트 수상, 퍼스트 레이디 힐러리등 "볼만한 여성"들이 많이 참석하여 그들을 멀리서 보는 것 만으로도 무척 도전이 되었다.
   이번 포럼의 주요 주제는 {정치세력화} 와 {경제세력화}(empowerment)로 집약할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여성의 정치세력화는 가장 큰 여성운동의 과제임을 알 수 있었다.
   9월 1일 우리 연구소는 "동아시아 여성의 정치세력화"라는 핵심적인 주제로 워크샾을 개최하였는데, 세계 각국에서 250여명이 참여하여 이 문제에 대한 높은 관심을 입증하였다. 특히 중국, 일본, 한국의 여성정치가들이 모여 각국의 여성정치참여 현황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진단하며 미래 전략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패널은 또한 아태지역 여성정치센터의 동아시아 지역포름으로서, 여기서 논의된 사항은 아태지역 NGO의 건의에 취합되어 최종적인 행동강령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나는 이 패널의 사회를 맡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일본의 참의원 나까니시 의원은 우아하면서도 실력있는 여성이다.  그는 일본이 경제대국임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남성중심적"인 정치를 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여성의 정치참여가 확대될 때 남성들의 정경유착, 부정부패, 권력투쟁을 종결하고 여성과 약자를 위한 정치, 깨끗하고 도덕적인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국회와 정당이 여성의원을 위한 탁아와 가족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하고, 각정당은 "모든 의석에서 남녀 중 한성이 최소한 40%가 되어야 한다"는 조항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유칭교수 역시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로서 이미 쿼타제를 채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여성은 실질적으로 정치에서 소외되고 있으며 유교전통문화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음을 지적했다.  일본신진당 부총재 유리코 고이케의 발표, 우리나라 김정숙 이사장의 한국여성정치참여에 대한 발표가 있었고, 뒤이어 이연숙 여협회장, 남인숙 효성여대 교수, 중국 참석자의 토론이 있었다.  네델란드와 서독 참석자들의 토의도 유익했다. 
   9월 2-3일 양일간에는 아태여성정치센처의 워크샾이 열렸다.  제 1차 아태여성정치회의는 94년 6월 21-23일간 마닐라에서 개최되었으며 김정숙이사장이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총체적이고 통합적이며 생명을 존중하는 정치"를 여성정치의 이상으로 내세웠다.  행동강령에 포함시키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사항을 주장하기로 의견이 모여 졌다.  즉 최소한 33.3%의 쿼타제, 여성정치가의 훈련을 위한 재정지원 확충, 깨끗한 선거를 위한 선거개혁, 주요한 정치문제에 여성문제를 포함시키는 것등이다.  김정숙이사장이 패널에 대한 보고를 하고, 내가 워크샾의 보고를 맡는등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 결과 아태지역 여성지도자들과의 연대를 형성하게 된 것은 큰 수확이다.
   이번 아태여성정치모임에서 한가지 느낀 것은  쿼타제에 대해 각국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태도의 차이이다.  우리 한국은 "남녀불평등사회"로서, 부진한 여성정치의 물꼬를 트기 위해 쿼타제가 필요함을 주장했다.  그러나 필리핀 같은 "자유경쟁사회"의 경우, 즉 여성에 대한 불평등이 비교적 덜한 문화에서는 쿼타제의 필요성을 별로 못느끼고 여성의 훈련과 재정지원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몽고는 과거 공산정권 하에 쿼타제를 쓰다가 이제는 자유경쟁으로 들어간 말하자면 "후기 쿼타제사회"로서, 쿼타제가 여성의 정치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역기능을 했으며, 쿼타제로 정치에 진출한 여성들이 상징적 존재로서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보고 있었다.  중국은 "쿼타제사회"로서 여성이 21%임을 자랑하지만, 한편 여성대표의 자질향상을 위한 조치가 필요함을 절감하고 있었다.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여성의 정치세력화가 이번 포럼에서 경제문제 다음으로 다루어진 주요 이슈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NGO 위원회가  정신대, 성희롱등의 문제만을 치중해서 다루었으며 언론 역시 그러했다는 점이다.  또한 한국 NGO 위원회의 행사때마다 등장하는 무당과 굿거리는 좀 불편했다.  
   또 북경은 국제회의를 개최하기에 아직 부적격하지 않느냐는 비판의 소리가 높았다.  우선 기습시위를 우려하여 NGO 포럼을 북경에서 너무 멀리 유치한 것이 불만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중국당국은 도시전체에 엄격한 보안을 실시하여 반드시 패스를 착용해야 했다.  준비상황은 한마디로 大亂的인 상황이었다.  영어를 할 수 있는 안내요원이 매우 적었으며 대부분 불친절했다.   아무도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고, 어디에 물어봐도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참석자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는 프로그램이 일찌기 동이 나 사흘동안 프로그램을 받느라고 장사진을 치고 서 있는 대표들이 많았고, 나중에 나타난 버스는 유리창을 통해 한개씩 프로그램을 밖으로 던져주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였다. 또 장애인에 대한 시설이 부족해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우리 일행은 또한 바쁜 틈을 타서 만리장성, 이화원, 자금성, 천안문광장, 천단공원등을 둘러보고, 우리의 선조들을 압도했던 중국문화의 찬란함을 만끽했다.  틈틈히 너무 싼 수공예품을 쇼핑하는 즐거움을 누리기도 했다.  그동안 참석자들끼리 무척 정이들고 친해지게 되었다. 
   일요일 날 나는 개인적으로 중국인 교회와 조선족 교회에서 예배를 보았는데 엄청난 은혜를 받았다. 마지막 날밤 가본 중국의 디스코장에는 젊은 이들이 빽빽히 들어차 마치 혁명을 하듯이 열광적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우리를 다시 공항으로 마중하면서 안내양 설화양은 "선생님들은 제게 힘을 주었어요.  제가 살고 싶은 그런 인생을 여러 선생님들이 살고 계신거에요. 그건 가정과 직장을 조화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멋있게 가꾸어 가는 것입니다.  선생님들의 모습을 오래동안 기억하겠습니다"라고 했고, 우리는 그런 설화양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중국 - 얼핏 스치고 지나온 중국의 인상은, 사회주의체제가 더 이상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급속히 변화하는 사회,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분주히 지나가는, 웃음이 없고  안색이 좋지 않은 사람들의 행렬이었다.


Professor of Politics, L.A. Institute of Interntional Studies